[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미국 연방법원이 국방부의 앤트로픽(Anthropic) ‘공급망 위험’ 지정과 연방기관 사용 제한 조치를 위법이라고 판단하면서, AI 기업을 겨냥한 정부 권한 행사가 헌법·행정법적 심사를 피할 수 없다는 선례가 나왔다. 같은 주 구글은 AI 검색을 항공권 가격 알림과 호텔 예약으로 확장했고, 오픈AI는 챗GPT의 임시 대화를 사용자가 필요할 때 저장할 수 있도록 바꾸면서 생성형 AI의 무대가 ‘대화’에서 ‘실행과 거래’로 이동하고 있다.
법원, ‘안보’의 이름으로 한 블랙리스트에 제동
axios.com, cnbc.com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의 리타 린(Rita Lin) 판사는 8월 27일(현지시간) 국방부가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supply-chain risk)’으로 지정한 조치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판결의 핵심은 정부가 국가안보 판단에 폭넓은 재량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특정 민간기업에 대한 광범위한 제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설명 가능한 근거, 즉 “articulable basis”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법원은 국방부의 조치가 단순한 조달업체 선정의 자유를 넘었다고 봤다. 정부는 어떤 AI 공급자를 쓸지 선택할 수 있지만, 앤트로픽을 연방정부 거래에서 사실상 배제할 수 있는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낙인찍은 것은 별도의 법적 정당화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린 판사는 "기록상 해당 조치가 앤트로픽을 공개적으로 본보기로 삼으려는 의도와 연결돼 있으며, 광범위한 제재가 불법적이고 근거가 없다(illegal and baseless)”고 판단했다.
이번 분쟁의 배경에는 AI의 군사·정보 활용 범위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앤트로픽은 자사 모델이 대규모 감시와 자율무기 관련 임무에 쓰이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국방부는 회사를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했다. 법원은 앤트로픽의 제품이 국가안보에 실질적 위협을 구성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해당 지정이 수정헌법 제1조가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법한 보복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판결은 앤트로픽의 기업가치나 향후 정부사업 수주 가능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생성형 AI가 국방, 정보, 공공행정의 핵심 인프라로 편입되는 국면에서 정부와 AI 기업의 관계를 규정할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정부가 안보를 이유로 기업을 배제할 수는 있어도, 기업이 정부 정책이나 군사적 활용 방식에 반대 의견을 냈다는 사실 자체를 제재 사유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를 곧바로 ‘정부의 AI 규제가 위축된다’고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법원의 판단은 정부의 모든 조달 제한이나 안보 심사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이 사건에서의 절차와 근거, 그리고 보복성 동기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국방부가 항소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명령이 기존의 임시 정지를 영구화했지만, 정부가 항소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구글 AI 검색, 정보 탐색에서 ‘여행 거래’로
법원이 AI 기업의 독립성과 공적 발언권을 둘러싼 경계를 정리하는 동안, 구글은 AI Mode를 검색 보조도구에서 여행 실행 도구로 확장했다. 구글은 8월 27일 AI Mode에서 항공권 가격 추적, 항공·호텔 포인트 및 마일리지 가격 조회, 호텔 예약 지원 기능을 내놨다고 밝혔다.
가장 수치가 선명한 기능은 항공권이다. 이용자는 대화창에서 출발지, 도착지, 일정 등을 자연어로 입력해 항공편을 찾고, 가격 변동을 추적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구글은 AI Mode가 300곳 이상의 제휴 항공사와 여행 사이트에서 최신 운임 정보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가격 추적 기능은 180개국·지역 이상에서 제공되며, 사용자가 알림 설정을 확정하면 운임 변화가 발생했을 때 이메일로 통지한다.
이는 기존 구글 플라이트(Google Flights)의 요금 알림 기능을 대화형 검색 환경에 이식한 것이다. 차이는 사용자가 여러 필터를 조합하는 대신 “9월 중 서울에서 도쿄로 가는 가장 저렴한 주말 항공권을 찾아보고, 가격이 더 떨어지면 알려줘”처럼 목적 중심의 문장으로 요청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검색 결과를 보는 단계와 가격 감시를 설정하는 단계가 하나의 대화 흐름으로 묶인다.
호텔 부문에서는 AI Mode가 여행지·날짜·선호 조건을 바탕으로 사진, 이용자 후기, 가격 등이 포함된 숙소 목록을 제시하고 예약 절차까지 연결한다. 다만 이 기능은 전 세계 동시 서비스가 아니다. 보도에 따르면 호텔 예약은 우선 미국 내 영어 이용자를 대상으로 순차 제공되며,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부킹닷컴, 익스피디아 그룹 등과의 제휴를 기반으로 한다. 항공권 예약까지 AI Mode에서 완결되는 것은 아직 아니며, 항공은 가격 탐색·추적 중심, 호텔은 예약 실행 단계까지 들어간 구조다.
구글의 서비스 확장은 검색시장의 수익 구조 변화와 맞닿아 있다. 기존 검색이 이용자를 외부 여행사·항공사·호텔 사이트로 보내는 ‘트래픽 중개’ 모델에 가까웠다면, AI Mode는 사용자의 의도 파악, 상품 비교, 가격 감시, 예약 연결을 한 화면에서 수행하는 ‘거래 관문’ 모델로 전환하고 있다. 여행 플랫폼과 숙박업체 입장에서는 검색 노출 경쟁뿐 아니라 AI가 어떤 순서와 기준으로 상품을 추천하고 예약 경로를 제시하는지가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 열리는 셈이다.
챗GPT 임시 대화, ‘사라지는 채팅’에서 ‘선택 저장’으로
오픈AI도 사용자의 AI 활용 방식을 바꾸는 업데이트를 내놨다. AI타임스는 오픈AI가 챗GPT의 임시 채팅(Temporary Chat) 기능을 강화해, 대화를 기본적으로 기록에 남기지 않되 사용자가 나중에 필요한 대화만 직접 저장할 수 있게 했다고 8월 28일 보도했다.
임시 채팅은 그동안 채팅 기록에 표시되지 않고, 사용자 메모리와 맞춤 설정을 적용하지 않는 일회성 대화 환경으로 설계됐다. 민감한 초안 검토, 즉흥적인 질문, 업무상 비공개 정보가 포함된 대화처럼 영구적인 대화 이력을 남기고 싶지 않은 상황에 적합한 기능이다. 이번 변화로 이용자는 처음에는 임시 모드에서 부담 없이 대화한 뒤, 결과물이 유용하다고 판단되면 그 대화를 기록으로 옮길 수 있다. 저장하는 순간 해당 대화의 임시 상태는 종료된다.
개인정보 측면에서는 오해할 부분도 있다. ‘임시’라는 표현이 곧 서비스 운영 차원의 즉시 완전 삭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보도에 따르면 오픈AI는 안전 목적상 임시 대화 사본을 최대 30일간 보관할 수 있다. 이용자에게 보이지 않는 기록 관리, 안전성 검토, 데이터 처리 정책은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변화는 프라이버시와 생산성 사이의 절충안으로 읽힌다. 이용자는 대화의 영구 보존 여부를 사전에 이분법적으로 결정하는 대신, 대화의 가치가 확인된 뒤 저장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기자나 연구자라면 민감한 취재 메모·가설·초안 질문은 임시 대화에서 검토하고, 재활용할 만한 분석 틀이나 작업 결과물만 선별 저장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AI 경쟁의 다음 전선은 ‘권한’과 ‘실행’
이번 주의 세 사건은 서로 다른 산업 뉴스처럼 보이지만, AI가 사회의 더 깊은 층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구글의 여행 기능은 AI 에이전트가 실질적인 거래를 대신 처리하기 시작하는 초기 사례로 볼 수 있다. 가격 변동을 감시하고, 조건에 맞는 상품을 좁히고, 예약으로 연결하는 과정은 단순 검색 결과 제공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사용자 신뢰와 책임을 요구한다. 추천 오류, 가격 변동, 예약 취소·환불, 제휴사 우대 노출, 광고와 자연 추천의 구분 등이 앞으로 소비자 보호와 플랫폼 규제의 새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앤트로픽 판결 역시 AI 규제의 공백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모델의 보안성, 데이터 처리, 외국 영향력, 군사 활용 위험을 규제하려면 더 명확한 증거와 절차, 비례성 있는 수단을 갖춰야 한다는 신호에 가깝다. AI 시대의 핵심 경쟁은 성능만이 아니라, 정부는 어느 범위까지 AI 기업을 통제할 수 있는지, 플랫폼은 어디까지 이용자를 대신해 거래할 수 있는지, 이용자는 자신의 대화·결제·선택 데이터를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권한 설계’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