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SK에코플랜트가 100% 자회사 SK에코엔지니어링을 흡수합병하는 것은 단순한 계열사 정리가 아니라, 반도체 FAB와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커지는 초대형 EPC 시장에서 설계·조달·시공의 통합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다만 AI 인프라 사업의 성패는 수주 확대 자체보다 전력·냉각·자금조달 병목을 얼마나 사업 모델 안에 흡수하느냐에 달려 있다.
12월 합병, 엔지니어링 내재화
SK에코플랜트는 8월 27일 이사회를 통해 SK에코엔지니어링을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했다. 합병기일은 12월 1일이며, SK에코플랜트가 지난 2월 재무적투자자(FI) 지분을 인수해 SK에코엔지니어링을 100% 자회사로 편입한 지 약 10개월 만의 후속 조치다. 100% 자회사 합병인 만큼 지분 교환이나 외부 주주 설득보다 조직·인력·프로젝트 운영 체계의 통합이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이번 합병의 직접적 목표는 두 회사에 나뉘어 있던 엔지니어링과 시공, 프로젝트 관리 역량을 한 조직 체계 안에 넣는 것이다. SK에코엔지니어링은 복합화력·열병합·터미널 등 에너지 인프라와 배터리·LiBS·바이오 등 첨단 산업플랜트의 설계·엔지니어링 경험을 축적해 왔다. SK에코플랜트는 이를 자사의 시공·사업관리 역량과 결합해 반도체 생산시설과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설계, 조달, 공정관리, 준공까지 일원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건설·플랜트 EPC에서 설계와 시공의 분리는 공기 지연과 원가 상승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반도체 FAB와 AI 데이터센터는 건축 공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전력 수전설비, 비상발전, 냉각, 통신, 배관, 클린룸, 고압 전력 시스템 등 복잡한 설비가 동시에 맞물린다. 초기 설계 단계에서 시공성과 조달 가능성, 운영비를 함께 검토해야 공사비와 납기를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병의 실질적 효과는 ‘설계 내재화’에 있다.
이미 AI DC 조직부터 통합
이번 합병은 이달 초 단행한 AI 데이터센터 전담 조직 신설의 연장선이다. SK에코플랜트는 8월 13일 사업·기술·설계·조달·시공(EPC) 기능을 한데 묶은 ‘AI 데이터센터 사업단’을 출범시켰다. 사내에 분산된 기능을 사업단 아래 통합해 프로젝트 수행 속도와 표준화 역량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SK그룹은 전국 주요 지역에 총 15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단계적으로 구축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AWS와 SK그룹이 추진하는 울산 AI 데이터센터 사업에 참여해 데이터센터 건축과 전력·통신·냉각 기반시설 구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번 합병으로 SK에코엔지니어링의 기계·전기·배관 등 플랜트 설계 역량까지 결합하면, AI 데이터센터를 ‘건물을 짓는 사업’이 아니라 전력과 냉각, 설비를 묶어 납품하는 통합 인프라 사업으로 확장할 기반이 마련된다.
이는 SK그룹이 내세운 ‘AI 풀스택’ 전략에서 SK에코플랜트의 역할을 구체화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포함한 반도체 공급망에, SK텔레콤 등이 AI 서비스와 데이터센터 운영에 집중한다면, SK에코플랜트는 반도체 제조공장과 AI 데이터센터를 실제로 구축하는 인프라 EPC 축을 맡는 구조다.
숫자로 확인된 하이테크 전환
실적은 SK에코플랜트가 기존 건설 중심 사업구조에서 반도체·AI 인프라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회사의 올해 2분기 연결 매출은 5조150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8%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5336억원으로 266% 늘었다. 상반기 누적 매출은 10조504억원, 영업이익은 1조4650억원이다.
사업별로 보면 하이테크 부문의 존재감이 커졌다. 반도체 제조시설과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축 등을 담당하는 하이테크 부문은 올해 상반기 매출 3조3069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53.7% 증가했다. 2분기 기준으로는 반도체·AI 시설 구축 중심의 하이테크 부문 매출이 1조832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33%를 차지했다. 반도체 모듈 제조·재활용 사업을 포함한 에셋 라이프사이클 부문 매출은 2조1500억원으로 45% 비중이었다.
다만 연결 호실적을 곧바로 본업 경쟁력의 완전한 회복으로 해석하기는 이르다. SK에코플랜트는 2분기 별도 기준 세전손실 2195억원을 기록했다. 연결 이익 증가는 AI 인프라 프로젝트 확대와 자회사 실적 호조가 함께 반영된 결과다. 합병 뒤 설계와 시공을 통합해 실제 원가 절감과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가 향후 평가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AI 인프라의 진짜 병목
AI 데이터센터 시장의 성장성은 분명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가 2025년 485TWh에서 2030년 950TWh로 약 두 배 증가해 세계 전력수요의 약 3%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AI 특화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는 같은 기간 세 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AI용 서버의 전력 밀도 상승은 EPC 사업자에 새로운 기회를 주는 동시에 기술적 부담도 키운다. IEA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까지 AI 서버의 전력 밀도는 11배 높아졌고, 2027년까지 다시 네 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7년 고성능 AI 데이터센터의 서버 랙 한 대가 순간적으로 최대 65가구 수준의 전력을 요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AI 인프라 수주는 일반 건축 수주와 달리 전력망 접속, 변압기와 전력전자 장비 조달, 냉각 시스템, 에너지저장장치(ESS), 예비전력 설비까지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IEA는 AI 데이터센터 증설 과정에서 전력망 연결, 첨단 칩, 전력장비, 자금조달이 모두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력망 증설 속도가 데이터센터 건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수주를 따내도 착공·준공 지연과 비용 상승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시공사’에서 인프라 솔루션사로
SK에코플랜트의 합병은 결국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건설을 반복 가능한 표준 EPC 모델로 만들려는 시도다. SK에코엔지니어링의 설계 기능을 흡수하면 프로젝트 초기부터 공법, 자재, 전력·냉각 설비, 공정 일정을 동시에 검토할 수 있어 원가와 공기를 보다 정교하게 관리할 여지가 커진다.
관건은 통합 이후다. 설계·시공 조직을 한 지붕 아래 두는 것만으로는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고전력·고밀도 AI 데이터센터에 맞는 냉각과 전력 설계의 표준화, 주요 장비 공급망 확보, 전력계통 연계 역량, 대규모 프로젝트의 리스크 관리까지 갖춰야 ‘AI 인프라 솔루션 공급자’라는 목표가 현실화될 수 있다.
이번 합병은 SK에코플랜트가 친환경·폐기물·전통 건설 중심의 확장 전략에서 한발 더 나아가, 반도체와 AI 인프라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분기점이다. 합병의 성패는 조직 통합 자체보다, 15GW 규모로 예고된 그룹 AI 데이터센터 투자와 외부 하이테크 EPC 수주를 얼마나 안정적인 매출과 이익으로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