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SK하이닉스의 2026년 임금·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이 25표 차로 부결됐다. 표면적으로는 초박빙 투표지만, 본질은 AI 호황으로 급증한 성과를 어떤 방식으로 배분할 것인가를 둘러싼 ‘현금 보상 대 장기 주주가치 보상’의 충돌이다.
SK하이닉스 전임직 노조 조합원 투표에서 반대는 7535표(50.08%), 찬성은 7510표(49.92%)로 집계됐다. 전체 선거인 1만6038명 중 1만5045명이 투표해 투표율은 93.81%에 달했다. 0.16%포인트, 25표 차이로 부결됐다는 점은 노사 모두 큰 틀의 성과보상 확대에는 공감하지만, 지급 수단을 둘러싼 신뢰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6.3% 임금 인상에도 막힌 이유
이번 잠정합의안에는 임금 6.3% 인상과 함께 초과이익분배금(PS)의 40%를 현금, 60%를 자사주로 지급하는 방안이 담겼다. 자사주 보상분 60% 가운데 40%는 수령 다음 날부터 매도할 수 있도록 하고, 나머지 20%는 1년과 2년 뒤 각각 10%씩 나눠 지급하는 구조였다. 특히 2026년도분 PS에 한해서는 당해 매도가 가능한 주식 지급분 40%를 현금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 내년 초 지급되는 성과급은 최대 80%까지 현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럼에도 부결된 것은 조합원들이 단순한 유동성 보완책보다 ‘확정된 현금 보상’을 더 중시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회사가 자사주 매도 허용과 현금 선택권을 일부 열어뒀지만, 성과급 재원 중 60%를 주식에 연동하는 원칙 자체가 조합원들에게는 주가 변동 위험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인식됐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주가가 단기간에 크게 움직이는 국면에서는 자사주 보상이 장기 인센티브가 아니라 사실상 시장 위험을 떠안는 보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로이터는 SK하이닉스 주가가 AI 기대감으로 6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AI 투자 과열 우려가 불거지며 하락 압력을 받았다고 전했다. 주가 변동성이 높을수록 동일한 액면의 주식 보상도 노동자 체감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재협상 핵심은 ‘60%’ 아닌 선택권
재협상의 첫 번째 쟁점은 PS 중 현금 비중을 얼마나 늘릴지다.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자사주 60%·현금 40% 구조를 현금 우위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이를테면 현금 60%·자사주 40% 또는 현금 70%·자사주 30%와 같이, 당장 활용 가능한 보상의 비중을 높이는 방식이 거론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비율 조정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이번 표결은 주식 보상 자체에 대한 반감과 함께 ‘보상 선택권’에 대한 요구가 드러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총 PS 재원을 유지하면서도 조합원 개인이 현금·주식 수령 비중을 선택하게 한다면, 단기 현금 수요가 큰 구성원과 장기 보유를 원하는 구성원을 동시에 포괄할 수 있다.
재협상의 가능한 조합은 ▲PS 기본 지급은 현금 중심으로 바꾸되, 희망자에게 자사주 전환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식 ▲자사주 수령분에 대해 일정 기간의 주가 하락 보전 장치를 명문화하는 방식 ▲이연 지급분 20%를 축소하거나, 이연분도 현금과 주식 중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방식 ▲자사주 보상 참여자에게 추가 매칭 보상 또는 할인 매입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 ▲주식 보상 체계를 일괄 도입하기보다 일정 기간 시범 운영한 뒤 확대 여부를 재논의하는 방식 등이다.
핵심은 회사가 주식 보상이라는 방향성만 관철하려 하기보다, 구성원이 자신의 소득·자산 상황에 맞춰 보상 수단을 고를 수 있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산업계에 남긴 경고
SK하이닉스 사태는 국내 대기업이 주식 보상을 확대할 때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가 됐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도 올해 노조와 성과급 제도에 합의하면서 반도체 부문 연간 영업이익의 10.5%를 특별성과급 재원으로 배정하기로 했다. 다만 삼성전자의 주식 보상은 상당 물량의 즉시 매도를 제한하는 구조여서, 현금 선호와 장기 보상 사이의 설계 문제가 계속 남아 있다.
주식 보상제는 임원이나 핵심 연구개발 인력에게는 장기 인센티브로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임금·성과급 의존도가 높은 다수 생산직과 사무직 구성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할 경우, 주가 변동 위험과 생활자금 수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향후 국내 산업계의 성과보상 제도는 ‘현금 성과급을 자사주로 대체하는 방식’보다 ‘기본 현금 보상을 보장한 뒤 주식 보상을 추가 선택지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성과 공유의 목적이 기업가치 제고라면, 그 전제는 구성원이 보상 구조를 신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빠른 타결 가능성, 그러나 설계는 달라져야
이번 부결은 협상 결렬보다 재설계 요구에 가깝다. 표차가 25표에 불과하고 투표 참여율도 93.81%에 이른 만큼, 재협상안이 현금 비중 확대 또는 실질적 선택권 보장을 담는다면 2차 투표 통과 가능성은 적지 않다. SK하이닉스도 2023년과 2024년에 잠정합의안 부결 뒤 재협상을 거쳐 최종 타결한 전례가 있다.
다만 회사가 자사주 지급 비율을 소폭 조정하는 데 그치거나 이연 지급 구조를 유지한다면 재차 반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번 표결은 25표 차 부결이지만, 기업이 노동자에게 던진 질문은 더 크다. AI 호황의 성과를 구성원과 나눌 때, 회사는 현금흐름 안정과 주주가치 제고 중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재협상 결과는 SK하이닉스의 임단협을 넘어 국내 대기업 성과보상 제도의 기준점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