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휴머노이드 로봇의 상용화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되고 해당 분야에서 미중 간 패권 다툼이 심화되는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와 로보틱스 계열사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워싱턴에서의 로비 지출을 크게 늘리고 있다.
미국 내 로비 지출을 빠르게 늘린 것은 단순한 대관 활동 확대가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의 상용화·안보·조달 규칙이 확정되기 전에 미국 시장의 제도적 기준을 선점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중국 업체의 제품 확산과 자본시장 부상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제조 역량, 미국 현지 생산,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술력을 결합해 ‘미국형 로봇 공급망’의 한 축으로 자리 잡으려 하고 있다.
로비 지출, 자동차에서 로보틱스로
미국 로비공개법(LDA) 공시를 토대로 한 보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2026년 상반기 미국 로비 지출은 128만 달러로, 1년 전 같은 기간의 74만 달러보다 약 73% 증가했다. 같은 기간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지출도 36만 달러에서 51만 달러로 약 42% 늘었다. 두 회사의 상반기 로비 지출을 합하면 179만 달러로, 현대차그룹이 로봇을 자동차 산업의 부수 사업이 아니라 미국 내 정책 대응이 필요한 핵심 신사업으로 격상했음을 보여준다.
현대차그룹의 기존 워싱턴 로비 의제는 관세, 전기차 세액공제, 자율주행, 친환경차 규제 등 자동차 사업과 밀접한 사안에 집중됐다. 그러나 올해부터 ‘로보틱스 개발을 위한 국가 프레임워크’가 주요 의제로 포함됐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연방 상·하원뿐 아니라 국방부, 상무부, 국무부, 교통부, 연방통신위원회(FCC)를 상대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이는 로봇 산업에서 규제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공장 자동화를 넘어 물류, 공공 인프라, 국방, 치안, 통신, 의료·돌봄 등으로 적용처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제품 안전성, 원격 통신, 데이터 처리, 사이버보안, 수입 제한, 정부조달 기준이 시장 진입 자체를 좌우할 수 있다.
로비의 목적도 규제를 완화하는 데만 있지 않다. 미국 정부가 어떤 로봇을 ‘신뢰 가능한 공급자’로 인정하고, 어디까지를 국가안보 위험으로 규정할지를 설계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데 있다.
‘국가 로봇 전략’ 입법에 직접 개입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주목하는 입법 과제는 국가 로보틱스 위원회법(H.R. 7334), 미국 안보 로보틱스법, 휴머노이드 로봇법, 2027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의 무인 지상 시스템 조항 등이다. 특히 H.R. 7334는 미국 로봇산업의 경쟁력, 공급망, 연구개발, 제조 기반, 인력, 안보 활용 등을 검토할 국가 로보틱스 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다. 법안은 2026년 2월 하원에 발의됐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이 법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다. 브렌던 슐먼 보스턴다이내믹스 정책·정부관계 담당 부사장은 상원에서 국가 로보틱스 위원회를 “국가 로보틱스 전략을 만드는 핵심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법안 추진에는 카네기멜런대, ARM 인스티튜트, 화낙아메리카, 애질리티로보틱스, 보스턴다이내믹스, 미국자동화협회(A3) 등이 지지 의사를 보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제이슨 피오릴로 최고법무책임자(CLO)는 6월 30일 미 하원 에너지·상업위원회 산하 상업·제조·무역 소위원회 청문회에서 국가 로보틱스 전략 수립을 촉구했다. 그는 의회에 ▲국가 로보틱스 위원회법 통과 ▲정부의 첨단 이동형 로봇 조기 도입 ▲미국 내 로봇 제조·도입을 유도하는 세제 지원 ▲안전·시험·상업 배치 기준을 아우르는 연방 차원의 통일된 위험기반 규제체계 ▲핵심 부품의 미국 또는 우방국 공급망 구축 등을 제안했다.
여기서 핵심은 ‘연방 차원의 통일 기준’이다. 주마다 서로 다른 규제가 생기면 로봇 기업은 제품 인증과 실증, 상업 배치에서 비용과 시간을 더 부담해야 한다. 반대로 연방 차원의 공통 기준이 도입될 경우, 미국에 생산·연구·정책 거점을 둔 기업은 전국 단위 확장에 유리해질 수 있다.
중국 견제와 공급망 재편
미국의 로봇 정책 논의에는 중국산 하드웨어와 자율기술에 대한 안보 우려가 직접 연결돼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지난 3월 하원 국토안보위원회 청문회에서도 중국 인공지능·로보틱스·자율기술의 국가안보 위험을 주제로 증언했고, 의회에 국가 로보틱스 위원회법 통과와 외국 로봇 시스템에 대한 포괄적 보안 분석을 요구했다.
미국 로봇업계는 보스턴다이내믹스, 앱트로닉, 고스트로보틱스, 포테라, 어플라이드인튜이션, 테라다인, 인트린식 등과 함께 국가 로봇 전략을 요구하는 민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이 요구하는 정책 방향은 연구개발 지원을 넘어 국방·물류·제조 현장의 공공 조달, 핵심 부품 공급망, 중국산 로봇 및 제어시스템의 보안 검증까지 포괄한다. H.R. 7334가 제안한 위원회 역시 총 18명의 전문가로 구성돼 국제 경쟁, 공급망 위험, 제조 경쟁력, 인력 문제, 국가안보 활용을 종합 검토하도록 설계됐다.
중국의 로봇 생태계는 미국 정책권이 긴장하는 배경이다. 중국 휴머노이드·사족보행 로봇 기업 유니트리는 8월 상하이 STAR마켓 기업공개에서 약 9억 달러를 조달했고, 공모가 기준 기업가치는 약 90억 달러로 평가됐다. 소매 청약은 5,000배 이상 초과 청약됐으며, 배정률은 약 0.018%에 그쳤다.
다만 유니트리의 공모가 기준 90억 달러 가치와 상장 직후 주가 급등에 따른 시가총액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상장 첫날 거래 급등 뒤 약 660억 달러 수준의 평가가 거론됐지만, 이는 공모가 기준 기업가치가 아니라 거래 과정에서 형성된 변동성이 큰 시장가격이다. 중국 기업의 자금조달·양산 속도가 빨라지는 동시에, 시장이 휴머노이드 로봇의 실질 수익성과 대량 상용화 능력을 얼마나 선반영하는지도 보여주는 장면이다.
현대차의 실증공장, 정책의 시험대
현대차그룹은 로봇 정책 논의와 별개로 미국 제조 현장에서 상용화 일정을 제시했다. 현대차는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 투입할 계획이며, 초기에는 부품 순서 배열(parts sequencing) 같은 반복 작업을 맡길 예정이다. 이후 안전성과 품질 효과가 검증되면 적용 범위를 넓히고, 2030년부터는 부품 조립과 중량물·반복 작업 등으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연간 3만 대 생산이 가능한 로봇 공장 구축 목표도 제시했다. 따라서 조지아 공장은 단순한 자동차 생산시설이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의 제조현장 검증, 작업자 안전, 생산성, 노사 협의, 데이터·보안 관리 등 상용화의 난제를 실제로 시험하는 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그룹에 중요한 것은 아틀라스의 기술 시연 자체보다 ‘미국에서 생산·배치·검증된 산업용 로봇’이라는 지위를 확보하는 일이다. 향후 미국이 중국산 로봇과 핵심 부품에 대해 수입·조달·통신·보안 규제를 강화한다면, 미국 현지 생산계획과 미국 로비·정책 네트워크를 함께 가진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상대적 우위를 얻을 여지가 있다. 이는 정책 변화의 직접 수혜를 단정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현대차그룹이 미국 현지 제조 투자와 정책 참여를 병행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로비의 본질은 ‘시장 설계권’
현대차그룹과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워싱턴 행보는 로봇 산업이 기술개발 경쟁을 넘어 제도 설계 경쟁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자동차 기업이 전기차 보조금, 배출 규제, 관세를 중심으로 정책 대응을 해왔다면,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은 안전기준·데이터·통신·사이버보안·국방조달·공급망까지 한꺼번에 다뤄야 한다.
결국 현대차그룹이 늘린 로비 비용은 로봇 판매 확대만을 위한 지출이라기보다, 미국 시장에서 ‘누가 신뢰 가능한 로봇 공급자가 될 것인가’를 가르는 새 규칙의 형성 과정에 투자하는 비용에 가깝다. 중국 업체가 제품 출시와 자본조달에서 속도를 내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조지아 생산 거점을 앞세워 기술·생산·정책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로봇 패권 경쟁의 다음 승부처는 성능 시연장이 아니라 의회와 연방기관, 그리고 실제 공장의 생산라인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