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가장 완벽한 아기를 가지세요."
배아 단계에서 당뇨병, 암, 고혈압을 포함해 2000가지가 넘는 미래에 발병할 질병위험은 물론 키와 IQ,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깔, 체질량지수(BMI), 근력 정도까지 점수로 매겨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뉴클리어스 지노믹스가 내세운 광고문구다.
이 기업 뿐만 아니라 오키드헬스와 헤라사이트 역시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검사 비용은 헤라사이트의 경우 최대 5만 달러(약 6,900만원)로 알려졌다.
미국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체외수정(IVF) 배아의 유전체를 분석해 질환 위험은 낮고 키·인지능력 등 특정 형질의 유전적 점수는 높은 배아를 고르는 서비스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그러나 업계의 ‘맞춤형 아기’ 마케팅과 달리, 현재 과학이 보여주는 실제 예측력과 개선 폭은 제한적이며 미국생식의학회(ASRM)는 임상 서비스로 제공할 단계가 아니라고 결론 냈다.
‘건강한 배아’에서 ‘우수한 배아’로
배아 선별은 원래 염색체 수 이상이나 특정 단일유전자 질환의 유전 여부를 확인하는 보조생식 기술로 출발했다. 예컨대 단일유전자 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착상 전 유전검사(PGT-M)는 가족력이 명확한 경우 특정 유전변이의 전달 가능성을 확인하는 데 쓰인다.
새로 커지는 시장은 이 범위를 넘어선다. 당뇨·심혈관질환·암·정신질환 등 수많은 유전자의 미세한 영향을 합산한 ‘다유전자 위험점수(PRS)’로 배아별 위험도를 비교하는 PGT-P, 즉 다유전자 배아 선별이 핵심이다. 기업들은 여기에 신장, 체질량지수(BMI), 기대수명, 인지능력, 외모 관련 형질까지 결합해 배아의 ‘종합 리포트’를 제시한다.
미국의 뉴클리어스 지노믹스는 당뇨병·암·고혈압 등을 포함한 2000개 이상 질환 및 형질을 배아 단계에서 점수화한다고 홍보한다. 오키드헬스는 배아 유전체의 99% 이상을 읽어 염색체 이상, 수백 종의 단일유전자 질환 및 일부 다유전자 질환의 유전적 소인을 하나의 보고서로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오키드의 표준 전장유전체 배아검사 가격은 배아 1개당 2500달러다. 미국에서 IVF 1회 비용 자체가 통상 1만5000~2만달러 수준이라는 보도를 고려하면, 유전 분석은 난자 채취·수정·배양·이식 비용 위에 추가되는 고가 옵션이다.
최고 5만달러, ‘부유층 생식 옵션’
고가 프리미엄 서비스의 상징은 헤라사이트(Herasight)다. 이 회사는 배아의 기대수명·키·IQ와 질환 위험 관련 정보를 분석하는 서비스에 최대 5만달러, 한화 약 6900만원을 청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은 단순한 검사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배아를 여러 개 확보하려면 반복 IVF가 필요할 수 있고, 배아 수가 많을수록 기업이 제시하는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결국 난임 치료에 유전체 분석과 다수 배아 확보 비용까지 더해지면서, 기술의 접근성은 고소득층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IQ·키 예측, 숫자는 있어도 보장은 없다
다유전자 점수는 수백~수천 개 유전변이를 통계적으로 합산해 특정 질환이나 형질의 평균적 경향을 추정한다. 핵심은 이것이 미래 개인의 운명을 판정하는 진단이 아니라, 같은 부모에게서 나온 배아 사이의 상대적 확률을 비교하는 도구라는 점이다.
배아 선별의 현실적 효과를 분석한 연구들은 형질 선택에 따른 기대 이득이 작고 불확실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통상적 IVF 상황을 가정해 생존 가능 배아 5개 가운데 하나를 고를 때, 현 기술로 기대되는 평균적 증가 폭은 키 약 2.5cm, IQ 약 2.5점 수준이었다. 배아 10개를 비교해도 약 3cm, IQ 약 3점 정도로 추정됐다. 이는 ‘고지능 아이를 설계한다’는 식의 광고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질병 위험도 마찬가지다. 유럽계 조상을 가진 부부가 배아 10개 중 다유전자 위험점수가 가장 낮은 배아를 선택한다는 시뮬레이션에서는 상대 위험이 15~35%, 중앙값 22% 줄어드는 것으로 계산됐다. 그러나 대상 질환이 드문 경우 절대 위험 감소는 0.5%포인트 미만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위험 20% 감소’라는 표현이 실제로는 100명 중 발생 가능성이 1명 안팎 줄어드는 정도일 수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아이의 실제 키, 학업 성취, 건강, 인지 기능은 유전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자궁 환경, 영양, 교육, 소득, 의료 접근성, 우연한 발달 과정이 함께 작용한다. 다유전자 점수의 예측력도 인구집단과 생활환경에 따라 달라지며, 특히 유럽계 자료 중심의 유전체 연관 연구(GWAS)에 의존해 비유럽계 집단에서 정확도가 낮아지는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돼 왔다.
의학계 “임상 도입 아직 이르다”
ASRM(미국생식의학회, American Society for Reproductive Medicine)은 2025년 말 발표한 윤리·진료위원회 공동 보고서에서 PGT-P가 예측 정확성, 안전성, 임상적 유용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현시점에서 임상 서비스로 제공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연구 목적이라면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감독 아래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ASRM은 특히 키·지능·눈 색깔처럼 비의료적 형질을 위한 배아 선별은 생식의학의 범위에 속하지 않으며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어떤 기술도 건강한 자녀를 보장할 수 없다”는 문구도 포함했다.
기존의 PGT-A, 즉 배아 염색체 수 이상 검사도 모든 IVF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했을 때 출생률을 높인다는 근거는 확립되지 않았다. ASRM은 특히 38세 미만 여성에서 무작위 대조시험 2건이 출생률 개선 효과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염색체 이상 확인보다 훨씬 복잡하고 불확실성이 큰 다유전자 선별이 ‘더 높은 수준의 효용’을 입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질병 예방’의 언어가 가리는 선택의 문제
배아 유전검사의 의학적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 치명적 단일유전자 질환의 높은 유전 가능성이 확인된 가족에게 PGT-M은 중요한 생식 선택지가 될 수 있고, 성인 발병 단일유전자 질환에서도 충분한 유전상담을 전제로 윤리적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
하지만 ‘중증 유전질환 회피’와 ‘IQ·키·외모·성향을 기준으로 더 나은 배아를 고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전자는 질환 유전 가능성이 비교적 뚜렷한 변이를 다루는 반면, 후자는 다수 유전자의 작은 효과와 환경 요인이 뒤섞인 복합 형질을 상업적 순위표로 바꾸는 작업이다.
시장은 이미 후자의 언어를 채택하고 있다. 기업들은 ‘리스크 감소’, ‘가족 맞춤형 우선순위’, ‘가장 건강한 선택’이라는 표현으로 서비스를 포장한다. 그러나 소비자가 받는 것은 확정된 미래가 아니라 제한된 통계 모델에 따른 확률 추정치다. 과학적 검증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가의 배아 점수 서비스가 확산될 경우, 불안은 상품이 되고 부모의 선택은 유전적 우열 경쟁으로 변질될 수 있다.
배아 선별 기술을 둘러싼 진짜 질문은 “더 좋은 배아를 고를 수 있는가”가 아니다. 불완전한 확률 예측에 얼마나 큰 의학적·경제적·윤리적 권한을 부여할 것인가다. 6900만원짜리 배아 분석 시장은 그 질문에 대한 사회적 합의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