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메타의 레이밴 스마트 글라스가 여러 국가와 분야에서 잇따른 제한 조치에 직면하고 있다.
영국 영화관부터 미국 연방 기관, 독일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각 기관들이 개인정보 침해, 저작권 침해, 보안 우려를 이유로 카메라가 내장된 이 웨어러블 기기의 착용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핵심 쟁점은 기기 자체의 촬영 기능보다도, 타인이 촬영 여부를 즉시 인지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일상형 웨어러블 카메라’의 확산이다.
영화관, 불법촬영 방지의 사전 규제
영국 영화관협회(UKCA)는 8월 20일 회원 영화관들이 카메라 내장 스마트 글라스의 착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UKCA는 영국 영화관 운영사의 90% 이상을 대표하는 단체로, 영화관별로 정책의 강도는 다르지만 개인정보 보호와 영화 불법 복제를 공통 이유로 들었다. 다만 협회는 스마트 글라스가 일부 이용자의 접근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하며 일률적 금지보다는 “관련성 있고 비례적인 대응 방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극장 안에서 완성본 영화를 장시간 녹화해 유통하는 전통적 캠코더 불법복제 문제에, 안경 형태의 소형 카메라가 새 변수가 됐다는 의미다. 스마트폰은 꺼내 드는 순간 주변의 인지가 가능하지만, 안경은 착용 상태 자체가 자연스러워 촬영 의도와 지속 시간을 제3자가 판별하기 어렵다. 영화관 입장에서는 상영 중 촬영을 적발한 뒤 대응하는 방식보다, 입장·착석 단계에서 카메라형 웨어러블을 제한하는 방식이 훨씬 비용 효율적일 수 있다.
다만 영국 영화관 업계의 조치는 전국 단일 규제가 아니라 사업자별 자율 정책이다. UKCA도 회원사가 이미 일괄적인 전면 금지를 시행했다고 밝힌 것이 아니라, 다수 사업자가 금지 또는 제한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스마트 글라스 금지’는 법률상 일반 원칙이 아니라, 상영관이라는 저작권 보호 공간에서 형성되는 계약·시설관리 규칙에 가깝다.
법원, 기존 촬영금지 규칙의 적용 확대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법원·재판소를 관할하는 HMCTS는 이달 메타 스마트 글라스의 법정 반입·사용을 금지하는 방침을 확인했다. 법원 건물에 기기를 착용하고 들어오면 입구에서 보관 조치한 뒤 퇴장 때 돌려주는 방식이다. HMCTS는 법원 및 재판소 내 사진·영상 촬영에 이미 명확한 제한이 존재하기 때문에 메타 안경 사용을 허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법원의 대응은 새로운 표현물 규제라기보다 기존의 재판 보안·증인 보호·법정질서 규정을 카메라형 안경에 적용한 사례다. 영국 법원에서는 공식 허가 없이 법정 안에서 촬영·녹음하는 행위가 문제가 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법정모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스마트폰도 녹화 기능을 갖췄지만, 안경은 신체에 밀착된 상태에서 촬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법원이 예외를 두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ICE, “개인 바디캠”으로 본 연방기관
미국 이민세관집행국(ICE)은 8월 18일 전 직원에게 연방 업무공간에서 메타 안경 및 유사 기기 착용을 중단하도록 지시했다. 적용 대상은 현장 법집행 요원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직원이며, ICE는 이 기기를 사실상 개인 소유 바디캠으로 분류했다.
데이비드 벤투렐라 ICE 국장 직무대행은 내부 메모에서 해당 기기가 민감한 정보를 의도치 않게 포착·녹화·전송해 개인정보와 법적 보호를 훼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몰래카메라’ 위험을 넘어, 이민 단속 정보, 민원인·구금자 개인정보, 수사 관련 화면과 대화 등이 비인가 개인 장비를 통해 기록·전송될 수 있다는 공공기관 정보보안 이슈로 확장된 것이다.
특히 개인 장비의 착용은 막으면서도, 기관이 통제하는 기록장비까지 부정한 것은 아니다. 미국 연방기관의 관점에서는 카메라의 존재 자체보다 누가 소유하고, 어떤 보안정책 아래 저장·전송·삭제 권한을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는 향후 공공기관이 스마트 글라스를 전면 금지하기보다 인증된 업무용 장비와 개인용 기기를 구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독일, 판매 단계까지 겨눈 형사 고소
독일 디지털 인권단체 헤이트에이드(HateAid)는 8월 12일 메타와 레이밴·오클리 측, 그리고 피엘만·아폴로옵틱·미스터스펙스·미디어마르크트 등 독일 판매업체들을 상대로 형사 고소를 제기했다. 고소장은 프랑크푸르트의 디지털 범죄 담당 검찰 조직에 접수됐으며, 촬영 사실을 알아채기 어려운 통신기기 판매를 금지하는 독일 법률 위반 가능성을 문제 삼았다.
헤이트에이드는 특히 일반 안경과 외관상 구별이 어려운 스마트 글라스가 비동의 촬영을 일상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독일 내 판매 중단과 ‘안전 설계(Safety by Design)’ 원칙 도입을 요구했다. 예컨대 카메라 장착 여부를 외부인이 쉽게 식별할 수 있는 표시, 임의 훼손이 어려운 촬영 알림 체계, 대시캠·바디캠 수준의 녹화 제한 규칙 등이 요구안에 포함됐다.
다만 이번 사건은 형사 고소가 제기되고 검찰이 접수한 단계다. 실제 위법성 인정, 판매금지 명령, 기업 또는 경영진의 형사책임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독일 사례의 의미는 판매와 유통 단계에서 제조사뿐 아니라 브랜드 소유자와 소매유통망까지 책임 논의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데 있다.
700만대 판매가 만든 규제 공백
규제 압력이 커지는 배경에는 시장 확산 속도가 있다. 에실로룩소티카는 2025년 레이밴·오클리 브랜드를 포함한 메타 협업 AI 글라스를 700만대 이상 판매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3~2024년 두 해 동안 판매된 약 200만대의 3배를 웃도는 규모다. 제품이 얼리어답터 기기를 넘어 대중 소비재로 이동하면서, 영화관·법원·공공기관처럼 기록과 촬영에 민감한 공간부터 대응에 나선 셈이다.
이번 흐름은 스마트 글라스에 대한 ‘전면 퇴출’이라기보다 공간별 위험도에 따른 규칙의 재편으로 볼 수 있다. 영화관은 콘텐츠 저작권, 법원은 재판절차와 증인 보호, ICE는 공무상 민감정보와 개인정보, 독일 시민단체는 일상 공간에서의 비동의 촬영과 데이터 권리를 각각 문제 삼는다. 동일한 기기라도 장소와 사용 주체, 기록되는 정보의 성격에 따라 규제 논리가 달라지는 것이다.
메타와 제조 파트너 에실로룩소티카가 풀어야 할 과제도 명확하다. 촬영 중임을 외부인이 쉽게 알 수 있게 하는 표시등만으로 충분한지, 표시등 훼손을 기술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지, 촬영물의 저장·전송·AI 처리 경로를 이용자와 비착용자 모두에게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할 것인지가 향후 시장 접근성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700만대 이상 판매된 웨어러블 카메라는 더 이상 신기한 기기가 아니라, 공공장소의 촬영 동의와 저작권 보호 규칙을 다시 쓰게 만드는 인프라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