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실험 매장 ‘앤돈 마켓’에서 AI 관리자 ‘루나’가 반복 지각한 인간 직원의 해고를 권고했다. 다만 이는 AI가 독자적으로 해고를 집행한 사건이라기보다, 인간이 최종 검토·집행한 AI 보조형 인사결정의 첫 공개 사례에 가깝다. 앤돈 랩스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해당 직원은 총 23회 근무 중 17회 지각했다. 지각 비율은 약 73.9%다.
businessinsider, indiatoday, EU Artificial Intelligence Act, gadgetreview에 따르면, 루나는 근태기록과 내부 규정을 다시 검토한 뒤 ‘고용 관계를 종료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권고했고, 회사의 인간 직원들이 이를 검토한 후 최종 해고를 실행했다.
AI가 내린 결론보다 중요한 것
이번 사건의 핵심은 “AI가 사람을 해고했다”는 자극적 표현보다, AI가 사람의 생계와 직결된 결정을 판단·추천하는 단계까지 들어왔다는 데 있다.
루나는 근태 규정을 스스로 마련했지만, 실제로는 직원의 반복 지각을 수개월간 제대로 추적하지 못했다. 앤돈 랩스가 기존 규정을 다시 찾아 해당 직원의 적합성을 평가하라고 지시한 뒤에야 해고 권고가 나왔다. 즉 AI가 근태 데이터를 기계적으로 분석해 즉시 문제를 잡아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재지시를 받아 뒤늦게 판단한 셈이다.
이는 AI 관리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기록과 규정만 놓고 보면 23회 중 17회의 지각은 명백히 높은 수준의 근태 불량이다. 반면 해고 판단에는 지각 사유, 건강·돌봄·장애 여부, 관리자의 사전 경고와 개선 기회, 근무환경, 차별 가능성, 대체조치의 적절성까지 함께 검토돼야 한다. 숫자가 해고 사유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어도, 해고의 정당성을 자동으로 완성하지는 않는다.
“17번 지각”도 AI에는 불완전한 데이터
앤돈 마켓은 AI 에이전트가 예산 10만달러와 인터넷 연결, 법인카드를 기반으로 상품 선정, 계약직 채용, 구인공고 작성, 면접, 채용, 매장 운영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실험이다. 매장은 실제로 매출을 내고 있으나 아직 수익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고 당시 루나는 앤트로픽의 ‘클로드 오퍼스 4.8’을 기반으로 운용됐다. 앤돈 랩스가 당시 상황을 7개 AI 모델에 재실행한 결과, 4개 모델은 루나처럼 일관되게 고용 종료를 권고했다. 특히 성능이 높은 모델일수록 해고 권고로 수렴했고, 상대적으로 성능이 낮은 모델은 더 주저하는 반응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AI의 판단이 객관적 진실이라는 뜻이 아니다. 동일한 규정, 동일한 근태기록, 동일한 프롬프트라는 제한된 조건에서 나온 모델 간 비교 결과일 뿐이다. 모델들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해서 입력 데이터가 완전하고, 정책이 공정하며, 개인별 정상참작 사유가 충분히 반영됐다는 사실까지 보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번 실험은 AI가 장기적 맥락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아직 취약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루나는 17회의 지각이 누적되는 동안 선제적으로 정책을 적용하지 못했고, 인간이 문제를 재지정한 뒤에야 ‘해고’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AI가 더 냉정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계속 추적해야 하는지와 언제 예외를 검토해야 하는지에 대한 책임 구조가 아직 불완전하다는 의미다.
세계 규제의 답은 ‘사람이 책임져라’
해외 규제기관은 채용·평가·승진·해고에 사용되는 AI를 일반 자동화가 아니라 권리 침해 위험이 큰 고위험 영역으로 분류하는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 AI법은 채용, 근로조건 관련 의사결정, 승진, 해고, 업무배정, 근로자 감시·평가에 쓰이는 AI를 고위험 AI로 본다. 이 경우 사업자는 충분한 권한과 훈련을 갖춘 사람에게 실질적인 감독을 맡겨야 하며, AI의 결과를 이해·감시하고 필요하면 무시하거나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고용차별 규제 관점도 동일한 원칙을 향한다. 미국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의 고용선발 지침은 AI를 포함한 선발도구가 특정 보호집단에 불리한 결과를 내는지 점검하도록 본다. 실무상 널리 쓰이는 ‘4/5 규칙’은 한 집단의 선발률이 비교집단 선발률의 80% 미만이면 불리한 영향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기준이다. 예를 들어 A집단의 통과율이 30%, B집단이 60%라면 비율은 50%로, 80% 기준을 크게 밑돈다.
AI가 근태 자료를 토대로 해고 후보를 추려낼 때도 구조는 같다. 특정 성별, 연령, 장애, 육아·돌봄 책임, 특정 근무지나 직무군에 불리한 데이터 편향이 누적될 경우, “규정을 똑같이 적용했다”는 설명만으로 차별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 기업이 점검할 네 가지
한국에서도 AI 인사관리의 쟁점은 채용을 넘어 근태관리, 성과평가, 배치, 징계와 해고로 넓어질 가능성이 크다. OECD는 자동화된 의사결정과 알고리즘 관리가 채용·평가·승진·해고처럼 중대한 결정에 영향을 줄 경우 근로자에게 위협이 될 수 있으며, 인간의 개입·설명·이의제기·검증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AI 기본법의 영문 법령 정보는 고영향 AI에 대해 결과 도출의 주요 기준·원칙에 관한 명확하고 의미 있는 설명, 그리고 인간 관리·감독 조치를 요구한다. 기업이 AI를 ‘인사 보조도구’로 도입하려면 최소한 다음 네 가지를 갖춰야 한다.
▲AI는 해고를 자동 집행하지 않고, 추천·경보 단계에 머물러야 한다. ▲최종 검토자는 AI의 결론뿐 아니라 원자료, 근태기준, 예외사유, 경고·교육 이력, 소명 내용을 독립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직원에게 AI 사용 사실과 평가기준, 인간 검토자, 이의제기 절차를 사전에 알려야 한다. ▲성별·연령·고용형태·장애 여부·직군별로 AI 권고 결과의 편차를 정기적으로 감사하고 기록을 보존해야 한다.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바꾸는 취업규칙 개정에는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도 중요하다. AI 도입이 단순한 프로그램 설치를 넘어 감시 강화, 성과 기준 변경, 징계 기준의 실질적 강화로 이어진다면, 한국 노동법상 절차 문제로 번질 수 있다.
AI 상사의 기준은 속도가 아니다
앤돈 마켓 사례는 AI가 인간 관리자보다 더 공정하거나 더 잔인하다는 증거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만든 규정과 기록을 AI가 다시 읽고 결론을 추천했으며, 인간이 마지막 책임을 진 사례다.
진짜 시험대는 AI가 해고 권고를 얼마나 빨리 내리느냐가 아니다. 기업이 그 권고를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을 누구에게 주는지, 직원이 자신의 데이터와 판단 근거를 확인하고 반박할 수 있는지, 그리고 AI가 놓친 개인적 사정을 누가 책임 있게 보완하는지에 달려 있다. AI가 상사가 되는 시대의 공정성은 알고리즘의 냉정함이 아니라, 인간의 감독과 설명책임의 밀도에서 결정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