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아마존이 희귀·절판 도서를 대량 매입한 뒤 제본을 절단해 페이지 단위로 스캔하고, 원본을 사실상 폐기하는 방식으로 AI 학습용 텍스트를 확보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디지털화 논란을 넘어, AI 기업의 데이터 조달 방식이 저작권을 넘어 보존·유통·문화유산의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기술매체 404 Media는 희귀 도서 약 1,000권이 든 화물 중 한 권에 애플 AirTag를 숨겨 운송 경로를 추적한 결과, 화물이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아마존 물류시설 LAS8에 도착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8월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취재에 따르면 LAS8 내부의 ‘VGT3’ 운영조직은 대량 입고된 종이책의 책등을 절단하고 페이지를 고속 스캔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404 Media가 확인한 직원 증언에 따르면, 이 공정은 제본을 훼손해 종이책 원본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든다.
‘1,000권 추적’이 포착한 VGT3
gadgetreview, techcrunch, the-decoder의 후속보도의 핵심은 AI 학습용 도서 매입이 단순한 업계 추정이 아니라, 실제 물류 흐름으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추적 장치가 든 도서 화물은 캘리포니아에서 위스콘신과 콜로라도를 거쳐 라스베이거스의 LAS8로 이동했다. 이들 매체들은 LAS8 안에서 책의 제본을 자르고 스캔하는 조직이 VGT3라는 코드로 운영되며, 출입구에는 책을 든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로고가 붙어 있다고 전했다.
아마존은 책 구매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아마존 대변인은 404 Media에 “고객이 사용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개선하기 위해 상업적 유통 경로를 통해 도서를 구매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매입 물량, 시설 수, 희귀본 여부를 판별하는 내부 기준, 스캔 이후 원본의 처리 방식 등 핵심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아마존이 희귀 도서를 전부 의도적으로 파기하고 있다’는 식의 포괄적 단정은 아직 이르다. 이번 조사는 약 1,000권 단위의 한 화물을 추적해 특정 시설과 공정을 확인한 것이다. 따라서 보도에서 확인된 사실은 적어도 하나의 아마존 시설에서 대량 종이책을 절단·스캔하는 공정이 운영되고 있다는 데까지다. 전체 매입 규모와 희귀본 비중, 파기 물량은 아마존의 추가 설명이나 후속 취재가 필요하다.
왜 인터넷이 아닌 종이책인가
생성형 AI 경쟁이 격화될수록 ‘인터넷에 없는 문장’의 가치가 커진다. 이미 대형언어모델(LLM)은 공개 웹 문서, 온라인 뉴스, 블로그, 논문, 코드 등 방대한 공개 텍스트를 상당 부분 흡수했다. 반면 오래된 절판본, 소규모 출판물, 지역사·산업사 자료, 오래된 전문서적은 온라인에 전문이 공개되지 않았거나 디지털화 자체가 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AI 기업의 입장에서는 중복 가능성이 낮고 희소성이 높은 신규 텍스트 풀이다.
특히 2022년 이전에 출간된 종이책은 생성형 AI가 본격 확산되기 전의 저작물이어서, AI 생성문이 섞였을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점에서 데이터 품질 측면의 매력이 있다. AI가 만들어낸 텍스트를 다시 AI 학습 데이터로 과도하게 재활용할 경우 출력의 다양성과 사실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이른바 ‘모델 붕괴’ 우려도 제기돼 왔다.
중고서점들이 의심하는 대목도 여기다. 이들이 받는 주문은 가격 민감도가 낮고, 도서관의 장서 구축이나 수집가의 취향과 달리 서로 연관성이 희박한 제목이 한꺼번에 포함되는 패턴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는 특정 분야의 희귀본을 수집하는 행위라기보다 ISBN 단위로 최대한 넓은 텍스트 코퍼스를 확보하려는 데이터 조달 방식에 가깝다. 다만 아마존이 ISBN 전수 확보 전략을 채택했다는 사실은 현재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법원은 ‘구매 후 파기’를 어떻게 봤나
아마존 사례는 앤트로픽(Anthropic)의 이른바 ‘프로젝트 파나마(Project Panama)’와 닮았다. 앤트로픽은 수백만 권의 실물 도서를 사들여 제본을 절단하고 스캔한 뒤 원본을 폐기해 내부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은 저작권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중요한 쟁점이 됐다.
미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의 윌리엄 알섭 판사는 2025년 6월 판결에서, 합법적으로 구매한 실물책을 스캔하고 원본을 폐기해 내부용 디지털 대체본을 만든 행위는 해당 기록상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원본이 파기되고 디지털본이 외부에 판매·배포되지 않아 시장에 유통되는 복제본 수가 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했다. 반면 앤트로픽이 해적판 라이브러리에서 별도로 확보한 수백만 권의 도서 문제는 합법적 구매·스캔 공정과 구분해 판단했다.
이 판결은 ‘책을 샀다면 AI 학습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포괄적 면허가 아니다. 공정이용 판단은 이용 목적의 변형성, 원저작물의 성격, 이용량, 잠재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개별 사안별로 검토한다. 더구나 저작권 침해 여부와 희귀본 보존의 적절성은 별개의 문제다. 법적으로 복제 수가 늘지 않았더라도, 유일본 또는 소수 현존본이 훼손되면 공공의 문화적·학술적 접근 가능성은 영구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
데이터 확보 비용은 작지만, 파장은 크다
아마존의 전체 AI 투자 흐름에서 보면 종이책 매입·스캔비는 상대적으로 작은 비용 항목일 가능성이 높다. 아마존은 2025년 AWS 매출 1,287억달러, AWS 영업이익 456억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해 전체 설비투자는 1,318억달러로 전년 830억달러보다 약 58.8% 늘었고, 회사는 증가분이 주로 AI 투자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2026년 설비투자 규모는 약 2,000억달러로 제시했다.
그러나 데이터는 AI 산업에서 컴퓨팅 인프라와 나란히 핵심 투입요소다. 아마존은 2025년 전체 매출 7,169억달러, 영업이익 800억달러를 기록했고, AWS 매출은 전년 대비 20% 성장했다. AWS가 제공하는 AI 학습·추론 인프라와 자체 모델·AI 서비스의 확대를 감안하면,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텍스트 데이터 조달 체계가 모델 경쟁력 및 사업 전략과 연결되는지에 대한 검증 필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소유권’과 ‘보존 책임’의 충돌
이번 사안의 본질은 AI 기업이 책을 ‘읽을거리’나 ‘문화재’가 아니라, 기계학습용 데이터 단위로 취급한다는 데 있다. 구매자가 물리적 사본을 처분할 재산권을 가질 수는 있지만, 희귀·절판 도서 시장은 일반 소비재 시장과 다르다. 한 권의 폐기가 재판매 가능한 재고를 하나 줄이는 수준을 넘어, 특정 판본·번역본·지역 출판물·한정본의 보존 가능성을 되돌릴 수 없게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논의는 ‘스캔이 합법인가’에만 머물러서는 부족하다. 희귀본·절판본의 파괴적 스캔 여부를 공개하는 투명성 기준, 도서관·아카이브 우선 매각 또는 보존본 확보 절차, AI 학습용 데이터의 출처 및 권리 처리 공개, 원본 파기 전 공공 디지털 아카이브 기증 가능성 등이 정책·시장 차원의 의제가 될 수 있다.
아마존 사례는 AI가 학습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가져가느냐뿐 아니라, 그 데이터를 얻기 위해 사회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묻는다. 희귀 도서 한 권의 시장가격은 데이터센터 투자액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 번 절단된 책은 다시 책이 될 수 없고, 그 손실은 AI 모델의 성능표나 기업 실적표에 잡히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