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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건축

[공간사회학] '한강변 권력의 최후' 한명회 ‘압구정’의 첫 주소는 여의도?…부관참시 522년, 갈매기는 어디서 권력이 되었나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서울에서 가장 비싼 주거지의 상징이 된 압구정동은 한명회(1415~1487)의 정자 이름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오늘의 동호대교 남단에 자리했던 그 정자는 처음부터 강남에 있지 않았다.

 

조선 전기 기록과 서울역사박물관의 여의도 조사에 따르면, 한명회의 첫 압구정은 마포 서쪽·양화진 북쪽의 ‘화도(火島)’, 곧 지금의 여의도 일대에 있었다. 이후 1476년 한명회는 정자를 동호(東湖)가 내려다보이는 강남 언덕으로 옮겼다.

 

한명회가 왜 여의도에서 동호로 정자를 옮겼는지를 직접 밝힌 동시대 기록은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동호 남쪽 언덕은 한강 물길과 저자도, 도성 주변 산세를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풍광과 접근성, 그리고 당대 권문세가의 한강변 별서 문화가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이동의 경로는 단순한 별장 이전이 아니다. 여의도에서 동호로, 조선의 권력 중심 가까이에서 한강 동부의 명승으로, 그리고 ‘갈매기와 친한다’는 은거의 언어에서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권력의 무대로 옮겨간 이야기다. 압구정은 자연 속에 숨으려 했던 정자가 아니라, 한명회가 자신의 퇴장과 영향력을 동시에 연출한 정치적 공간에 가까웠다.

 

“여의도에 솟은 언덕”이라는 원사료


압구정의 여의도 기원은 최근의 흥미 위주 설화가 아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20년 발간한 『여의도, 방송과 금융의 중심지』 조사와 후속 전시를 통해 “현재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었던 것으로 잘 알려진 압구정은 처음에는 여의도에 있었다”고 정리했다. 박물관은 김수온의 「압구정기」와 서거정의 「압구정부」를 여의도 시기 압구정을 보여 주는 핵심 기록으로 제시한다.

 

특히 김수온의 「압구정기」는 위치를 꽤 구체적으로 적는다. 왕도에서 남쪽으로 약 5리, 양화진 북쪽과 마포 서쪽에 “언덕 하나가 우뚝 솟아” 있고 강물이 둘러싼 곳, 세상에서 화도라 부르던 자리라는 것이다. 화도는 잉화도·여화도 등으로도 불렸고, 오늘날 여의도에 비정된다. 정자는 원래 황폐한 목초지와 방목지였던 이 언덕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

 

이 기록을 따르면 첫 압구정의 정확한 필지는 현재의 행정지도로 특정하기 어렵다. 여의도는 한강의 퇴적과 제방·매립·도시개발을 거치며 지형이 크게 달라졌고, 1968년 윤중제 공사 이후 현대적 섬의 윤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63빌딩 자리"라는 가설은 충분히 흥미롭지만, 현존 문헌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첫 정자가 마포의 서쪽, 양화진의 북쪽, 한강에 둘러싸인 화도 언덕에 있었다는 점은 사료가 가리키는 가장 신뢰도 높은 좌표다.

 

여의도는 오늘날 국회·한국거래소·방송국·63빌딩의 섬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가축을 기르던 섬으로도 기록된다. 한명회의 첫 압구정은 지금의 정치·금융·방송 중심지에 들어서기 훨씬 전, 국가의 주변부이자 강변의 비생산적 여백으로 취급되던 모래섬·목장 지대에 세워졌던 셈이다.

 

 

1476년, ‘은거’가 동호의 권력 무대로


한명회가 압구정을 여의도에서 두모포 건너 강남 언덕, 즉 동호 조망권으로 옮긴 시점은 1476년(성종 7)으로 정리된다. 이곳은 오늘날 동호대교 인근, 현대아파트 단지 72·74동 일대이며, 현재는 정자 자체가 사라지고 표석만 남아 있다.

 

동호의 새 압구정은 풍광만을 위한 선택으로 보기 어렵다. 높은 언덕에서 저자도와 한강을 내려다보고, 강 건너 뚝섬과 살곶이벌, 멀리 삼각산까지 조망할 수 있는 장소였다. 겸재 정선의 「압구정도」가 전하는 것도 바로 이 지형이다. 높은 언덕 위에 난간을 두른 비교적 큰 정자, 한강과 산세를 배경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건축물이다.

 

압구정이라는 이름도 흥미롭다. ‘친할 압(狎)’과 ‘갈매기 구(鷗)’를 써서, 벼슬을 버리고 강촌에 묻혀 갈매기와 친하게 지낸다는 뜻이다. 명나라 한림학사 예겸이 한명회의 요청을 받고 이름과 기문을 지어줬다는 전승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름의 윤리와 정자의 실제 기능은 서로 충돌했다.

 

새 압구정은 은퇴자의 소박한 초가가 아니라 조선과 명나라의 고위 인사가 주목하는 외교·사교의 무대였다. 중국 사신들은 압구정 방문과 연회를 원했고, 한명회는 이를 접대하는 과정에서 국가 시설과 장막까지 요청했다. 한명회가 “신의 정자는 본래 좁다”며 정자 옆 평탄한 터에 큰 장막을 설치해 달라고 청하자, 성종은 제천정에서 연회를 열라고 하며 사실상 거절했다.

 

이 장면은 매우 현대적이다. 개인 소유의 고급 한강 조망 공간이 외빈 접대와 권력 과시의 장소가 되고, 그 행사 비용과 시설 지원을 공적 시스템에 요구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정자는 사유재산이지만, 그 운영은 공적 권위와 자원을 빌려야 완성되는 구조였다.

 

 

갈매기와 권력의 역설


“갈매기와 벗한다”는 말은 동아시아 문학에서 기심(機心), 즉 계산과 권모를 버린 사람만이 자연과 친해질 수 있다는 은거의 상징이다. 김수온의 글에도 한명회는 갈매기를 두고 천지와 강해를 집으로 삼고, 풍월을 생애로 삼는 한가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이상은 한명회의 정치 이력과 너무 선명하게 대비된다.

 

한명회는 1453년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을 도와 정난공신 1등이 됐고, 단종 복위운동을 진압한 뒤 권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두 딸은 예종의 장순왕후와 성종의 공혜왕후가 됐으며, 성종 즉위 뒤에는 원상으로 국정을 결재했다. 그의 정점은 개인적 풍류와 공적 권력이 거의 구분되지 않는 지점이었다.

 

성종 7년 실록에는 한명회가 성종에게 친정을 돌려주는 문제에 개입하고, 조정이 그의 위세를 두려워한다는 취지의 유자광 상소가 남아 있다. 상소는 한명회를 성종의 장인이자 중시되는 신하라고 지목하면서, 그 권세 때문에 조정 인사들이 비판을 피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당시의 한명회가 이미 “자연으로 돌아간 원로”라기보다, 왕권 이양과 조정 권력에 영향력을 행사한 실세였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압구정은 한명회의 겸양이 아니라 자기 이미지 관리의 장치로 읽을 수 있다. 권력자는 종종 “이제 떠나겠다”는 언어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존재감을 극대화한다. 한명회의 경우에도 은거의 이름을 붙인 정자가 조선과 명나라의 시인·사신·관료가 모이는 명소가 되었고, 성종이 직접 시를 내릴 만큼 국가적 이벤트가 됐다. 은퇴는 권력의 반대말이 아니라, 권력을 미학적으로 재포장하는 방식이 될 수 있었다.

 

 

정자가 남긴 것은 동네 이름뿐인가

 

한명회는 1487년 사망한 뒤, 1504년 갑자사화 때 폐비 윤씨의 폐출·사사 과정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부관참시를 당했다. 한때 왕조의 핵심을 움직였던 공신이 죽은 뒤에도 정치적 단죄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1506년 중종반정 뒤에는 연산군 때의 처분이 번복돼 관작과 명예가 회복됐다. 이를 사료에서는 신원으로 표현한다. 한 인물의 사후 평가마저 정권교체에 따라 뒤집힌 셈이다.

 

압구정 역시 같은 운명을 겪었다. 조선 말 박영효의 소유였던 정자는 갑신정변 실패 뒤 훼철된 것으로 전한다. 이후 1970년대 말 영동개발과 현대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정자 터도 사라졌고, 현재는 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의 표석만 남았고, ‘압구정’이라는 이름만이 부동산·소비·한강 조망·재건축의 브랜드로 살아남았다.

 

오늘의 압구정은 조선시대 정자의 물리적 흔적보다 그 이름이 만들어낸 상징자본이 훨씬 큰 곳이다. 2025년 말 기준 부동산R114 집계에서 압구정동 재건축 아파트의 3.3㎡당 평균 매매가격은 1억4068만원으로 제시됐고, 2026년 7월에는 신현대 12차 전용 182㎡가 112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압구정은 이제 ‘갈매기와 친한 정자’가 아니라, 한강 조망과 희소성, 재건축 기대를 화폐로 환산하는 도시의 최상단에 놓여 있다.

 

그런 점에서 한명회의 압구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장소는 여의도에서 동호로, 정자에서 아파트 단지로, 권신의 별서에서 초고가 자산으로 바뀌었지만 구조는 낯설지 않다. 한강의 경관을 선점하고, 그 경관을 지위와 영향력의 언어로 바꾸며, 사적인 소유와 공적인 상징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압구정의 진짜 질문은 “한명회가 왜 여의도에서 동호로 옮겼나”에만 있지 않다. 갈매기와 벗하겠다는 사람이 가장 잘 보이는 언덕을 선택했을 때, 그 풍경은 자연이 아니라 권력이 된다. 여의도의 첫 압구정과 오늘의 압구정동 사이에는 약 550년의 시간이 놓여 있지만, 한강을 바라보는 인간의 욕망은 놀랄 만큼 같은 문법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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