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9월 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뉴스스페이스는 일상 속 관계 스트레스가 우리의 마음과 몸에 남기는 흔적을 살펴본다. 직장과 가정, 학교에서 피하기 어려운 갈등과 괴롭힘은 수면·집중력·기분을 흔들고, 때로는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위기 신호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반복되는 모욕과 배제, 권한 남용, 직장 내 괴롭힘이 실제로 스트레스 반응과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또 위기 신호가 나타났을 때 개인과 조직이 어떤 도움과 보호의 통로를 찾아야 하는지를 과학적 근거와 함께 짚어본다.
“싫어하는 사람을 3개월 이상 보면 뇌세포 39%가 죽는다.”
SNS를 비롯해 인터넷커뮤니티와 블로그 곳곳에 회자되는 내용이다. 이 주장은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주장은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현재의 인간 대상 뇌과학 연구에는 특정 인물을 3개월간 만났을 때 뇌세포가 정확히 39% 사멸한다는 결과가 없으며, 만성 스트레스의 영향은 개인의 스트레스 강도·통제감·수면·사회적 지지·기존 정신건강 상태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다만 불편한 직장 동료, 가족, 상사처럼 피하기 어려운 사람과 장기간 갈등을 겪는 일이 뇌와 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큰 방향 자체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 문제는 이를 “뇌세포가 죽는다”는 자극적 문장으로 단순화할 때, 관계의 고통을 설명하기보다 새로운 공포를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숫자 39%는 어디서 왔나
블로그와 SNS에서 반복되는 “3개월”, “39%”, “해마 신경세포 파괴”라는 조합은 인간 연구의 표준적 결론으로 보기 어렵다. 만성 스트레스 연구에서 흔히 관찰되는 것은 해마의 부피 변화, 신경세포 가지인 수상돌기의 위축, 시냅스 가소성 저하, 새 신경세포 생성 억제, 기억과 정서 조절 기능의 변화이지, 일상적인 인간관계 스트레스로 특정 비율의 뇌세포 사망을 단정하는 결과가 아니다.
스트레스와 해마를 검토한 학술 리뷰는 장기적 또는 외상성 스트레스가 해마의 신경세포 형태, 신경발생, 시냅스 가소성 및 해마 부피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연구진은 인간의 해마 부피가 작다는 사실만으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일부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연구에서는 작은 해마가 외상 취약성의 선행 요인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즉, 상관관계와 원인을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결론이다.
특히 동물실험에서 관찰되는 구조 변화와 인간의 일상적 관계 갈등을 그대로 등치시키는 것도 위험하다. 환경청 자료에 인용된 신경과학자 브루스 맥이웬의 설명에 따르면 "만성 스트레스는 일부 뇌 영역에서 뉴런의 가지와 연결을 위축시키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뉴런의 죽음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싫은 사람’이 뇌를 흔드는 경로
관계 갈등이 심할 때 우리 뇌는 단순히 “기분이 나쁘다”고만 처리하지 않는다. 위협·공포·정서적 중요성을 빠르게 평가하는 편도체, 사건의 맥락과 기억에 관여하는 해마, 충동을 조절하고 판단하는 전전두피질이 함께 반응한다.
반복되는 모욕, 배제, 감시, 예측 불가능한 공격은 몸의 스트레스 반응 체계인 HPA축(Hypothalamic–Pituitary–Adrenal axis,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 몸이 스트레스를 감지했을 때 작동하는 호르몬 비상대응 시스템으로 뇌와 부신이 연결된 3단계 지휘 체계임)을 자주 가동시키고, 코르티솔 분비와 수면·주의력·기분의 변화를 동반할 수 있다.
직장 내 실제 갈등과 생리 반응의 연결도 보고됐다. 166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2023년 연구에서는 직장 내 갈등의 발생 횟수가 하루 동안의 코르티솔 양상 변화와 연관됐으며, 갈등이 많을수록 특정 코르티솔 지표가 높아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것은 “싫은 사람이 곧바로 뇌세포를 죽인다”는 뜻이 아니라, "반복되는 갈등이 신체의 스트레스 조절 체계에 측정 가능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사회적 긴장과 뇌 구조의 관계도 단선적이지 않다. 건강한 성인 83명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갈등적이고 긴장된 사회관계가 남성 참여자에서 양측 해마 회백질 부피 감소와 연관됐지만, 여성에서는 같은 양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스트레스는 손상인가, 가소성인가
“한 번 손상된 뇌세포는 회복되지 않는다”는 표현도 지나치게 절대적이다. 만성 스트레스가 해마 CA3 부위의 수상돌기 위축과 공간 기억 저하와 관련된다는 연구 축적은 분명하다. 그러나 2017년 연구보고서는 스트레스가 끝난 뒤 회복 기간을 거치면 위축된 수상돌기 구조와 공간 기억 수행이 흔히 개선될 수 있다고 정리했다. 회복이 스트레스 이전 상태로 완전히 되돌아간다는 단순한 뜻은 아니지만, 뇌가 고정된 돌덩이가 아니라 경험에 따라 변화하는 기관이라는 점은 중요하다.
이 차이는 공포 마케팅과 예방적 건강 정보의 경계다. 관계 스트레스를 과소평가해서도 안 되지만, “이미 뇌가 망가졌다”는 공포는 불안과 무력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 지속적인 관계 스트레스는 수면, 기분, 기억, 집중력, 신체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며, 조기에 부담을 줄이고 지원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현실은 이 문제를 개인의 예민함으로만 돌리기 어렵게 만든다. 2024년 1,000명 직장인 조사에서 최근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30.5%였고, 피해 경험자 가운데 15.6%는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2025년 조사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경험 비율이 35.9%로 집계됐고, 이를 심각한 문제로 본 응답도 54.0%에 달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는 우울·불안으로 매년 전 세계에서 약 120억 노동일이 손실되고, 경제적 비용이 약 1조 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칼 융의 ‘그림자’는 진단 도구가 아니다
SNS 원문은 칼 융의 그림자 개념을 통해 “유독 싫은 사람은 억눌러온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고 해석한다. 이는 관계를 성찰하는 하나의 흥미로운 렌즈가 될 수 있다. 융 심리학에서 그림자는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사회적으로 드러내기 싫어 무의식에 밀어 넣은 성격 특성, 욕구, 감정을 가리키며, 타인에게 이를 투사하는 일이 관계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현대 신경과학처럼 측정과 재현을 통해 검증된 인과 법칙이라기보다 분석심리학의 해석 틀에 가깝다. 따라서 “내가 저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사실 내 문제”라는 식으로 적용하면 위험하다. 상대가 실제로 폭언, 차별, 괴롭힘, 성적 언동, 권한 남용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투사의 문제가 아니라 경계 설정과 제도적 대응이 필요한 현실의 문제일 수 있다.
또한 “의식은 1%, 무의식은 99%”라는 수치 역시 융의 이론을 설명하는 검증된 과학적 비율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인간의 정신 활동을 하나의 정확한 백분율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 숫자는 심리학적 사실이라기보다 대중적 비유에 가깝다.
미움의 철학…타인을 읽되, 자신을 잃지 않는 법
유독 거슬리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 안에서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진다. 하나는 타인의 실제 행동을 읽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 행동이 내 기억·상처·욕망·두려움에 닿을 때 생기는 반응을 읽는 일이다. 융의 그림자 개념이 오늘날에도 문화적으로 살아남는 이유는 바로 이 두 번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무엇을 했나”와 함께 “왜 나는 이 장면에서 유난히 크게 흔들리는가”를 묻게 한다.
그러나 성찰은 인내의 강요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예민한가”를 묻는 일과 “상대의 행동이 부당한가”를 판단하는 일은 동시에 가능하다. 불편한 동료를 보며 자신의 인정 욕구나 경쟁심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그 동료의 모욕과 괴롭힘을 참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관계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
그렇다면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가 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 감정의 강도를 기록한다. 누구를 만났을 때, 어떤 말과 상황에서, 몸과 생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적으면 막연한 미움이 구체적 문제로 바뀐다.
둘째, 상대의 행동과 자신의 해석을 분리한다. “그가 회의에서 내 말을 끊었다”는 사실과 “나를 무시한다”는 해석을 구분해야 대응 방법도 선명해진다. 셋째, 피할 수 없는 관계라면 접촉 시간·채널·업무 범위를 줄이고, 대화와 지시를 기록으로 남긴다.
넷째, 반복적 괴롭힘, 불면, 공황, 우울, 자해 사고가 동반된다면 혼자 ‘그림자 작업’을 하기보다 외부의 정신건강 전문가, 신뢰할 수 있는 주변인, 회사의 공식 고충 절차 등 외부 지원에 연결하는 편이 안전하다.
결국 관계 스트레스의 핵심은 “뇌세포를 지킬 만큼 참아야 한다”는 데 있지 않다. 인간관계가 내 삶의 신경계를 점령하기 전에, 그 관계의 현실을 정확히 보고, 내 감정의 신호를 듣고, 필요한 경계를 세우는 데 있다. 뇌는 공포의 숫자보다 회복의 조건에 더 민감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