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와 함께 추진하는 74억 달러(약 11조원) 규모의 통합제련소 건설 사업 '프로젝트 크루서블(Project Crucible)'의 명칭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MBK파트너스와 영풍 측을 형사 고발하면서, 3년째 이어진 양측의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고발의 핵심, 도메인과 리셉션
고려아연은 5일 한국기업투자홀딩스, 영풍, 윤종하 MBK 부회장, 장세환 영풍문고홀딩스 대표이사 등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 종로경찰서에 고발했다. 고발 근거는 두 가지 구체적 행위다. 먼저 MBK·영풍 측은 지난 6월 27일 '프로젝트 크루서블'과 사업 부지인 테네시주(Tennessee) 이름을 결합한 도메인 'crucibleTN.com'을 등록자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방식으로 확보했다. 이어 7월 초 테네시 주정부 관계자와 지역 인사, 언론인 등에게 프로젝트 명칭을 주최 측 성명보다 더 크게 적은 리셉션 초대장을 배포했고, 회신 연락처 역시 'events@crucibleTN.com'이었다.
실제 행사는 7월 9일 테네시주 내슈빌의 허미티지 호텔(The Hermitage Hotel)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윤종하 MBK 부회장은 MBK의 글로벌 투자 포트폴리오를 소개했고, 장세환 영풍문고홀딩스 대표이사는 영풍 석포제련소의 기술이 프로젝트 크루서블에 적용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려아연은 이러한 행위가 사업 주체를 오인하게 해 실제 자사가 수행 중인 인허가·투자 유치 업무를 방해했다고 주장한다.
74억 달러 프로젝트의 실체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지난해 12월 15일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 및 전략적 투자자들과 함께 공식화한 사업으로, 총 투자 규모는 74억 3200만 달러(약 10조 9000억~11조원)에 달한다. 자금 조달 구조를 보면 사업 운영 주체인 '크루서블 메탈즈'가 최대 46억 9800만 달러(약 6조 9000억원), 미 상무부 보조금이 최대 2억 1000만 달러(약 3000억원), 고려아연 직접 투자가 최대 8600만 달러 수준으로 짜여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고려아연은 미국 합작법인 '크루서블 조인트벤처(JV)'를 대상으로 2조 850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도 결의한 바 있다.
이 제련소는 2027년 착공, 2029년 가동을 목표로 연간 약 110만 톤의 원료를 처리하며 게르마늄·갈륨 등 핵심광물 11종을 포함해 비철금속 13종과 반도체용 황산을 생산할 계획이다. 지난 4월에는 미국 연방정부의 패스트트랙 제도에 편입돼 인허가 절차가 한층 빨라졌고, 같은 달 테네시주 스튜어트 맥워터 부지사가 울산 온산제련소를 방문해 "주에서 발표한 최대 규모의 자본 투자"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가처분 기각 이후 벌어진 반전
MBK·영풍 측은 앞서 고려아연이 프로젝트를 발표한 다음날 곧바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3자 배정 신주 발행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지난해 12월 24일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당시 재판부는 해당 거래를 "미국의 핵심광물 글로벌 공급망 재편, 한미 간 협력 강화, 안정적 글로벌 수요처 확보 등을 목적으로 추진된 거래"로 평가했다. 고려아연 측은 사업을 막으려 했던 세력이 이제 와 사업 주체처럼 행세하는 것을 "양국 정부와 투자자, 주주를 기만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영풍·MBK의 반박과 근본 갈등
영풍·MBK 측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반발했다. 이들은 '프로젝트 크루서블'이 고려아연이 독점적 권리를 가진 등록 상표가 아니며, 최대주주로서 미국 현지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기 위해 주최자를 명확히 밝힌 행사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과거 가처분 신청도 사업 자체를 반대한 게 아니라 편법적 신주 발행을 통한 경영권 방어 시도를 저지하려 한 것이라며, 최윤범 회장이 회사 자산을 사적 방어 수단으로 쓰고 있다고 맞섰다.
이번 사태는 2023년부터 이어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연장선에 있다. 영풍은 2024년 국내 최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에 나섰으며, 이후 최윤범 회장 측과 영풍·MBK 연합 간 지분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11조원 규모의 미국 제련소 사업이 최 회장 측에 강력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장 평가가 나온 만큼, 명칭 사용을 둘러싼 이번 형사 고발전은 실질적으로는 미국 사업의 주도권과 대외 신뢰도를 둘러싼 양측의 또 다른 대리전으로 해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