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기후변화로 유럽·아시아·아메리카 대륙이 동시에 40도를 넘나드는 '지구 열대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에어컨 보급률이 낮은 국가들이 영화관·도서관을 시민 피난처로 개방하는 등 이색적인 폭염 대응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로마發 '기후 쉼터', 유럽 전역으로 확산
이탈리아 로마시는 7월 23일부터 8월 4일까지 시내 영화관 11곳과 공공도서관 11곳을 '기후 쉼터'로 지정, 에어컨이 설치된 공간에서 이탈리아 영화 10편을 무료 상영하고 도서관 이용객에게는 식수를 제공한다.
로베르토 구알티에리 로마시장은 "모든 사람이 집에 에어컨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니다"라며 시민들이 시원한 공간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통계청에 따르면 로마의 평균기온은 1980년대 이후 3도 상승해 다른 유럽 수도(평균 약 2도 상승)보다 기온 상승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로마의 이런 조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가 이미 3년 전부터 운영해온 '기후 피난처' 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르셀로나는 박물관·도서관 등을 기후 피난처로 활용해 처음 70곳으로 시작했으나 올해는 227곳까지 확대했으며, 시의회 기후변화 담당자는 "이 피난처는 주로 에너지 빈곤으로 고통받는 가정을 위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에어컨 불모지'의 민낯
유럽이 이런 임시방편적 대책에 의존하는 근본적 배경에는 압도적으로 낮은 에어컨 보급률이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 가구의 에어컨 보급률은 약 20~23%에 불과해, 90%를 넘는 일본·미국의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국가별로 보면 이탈리아 56%, 스페인 41%, 프랑스 25%인 반면 영국은 5%, 독일은 3%까지 떨어지는 등 국가 간 격차도 매우 크다.
유럽에서 에어컨이 좀처럼 확산되지 못한 이유로는 비싼 전기요금, 문화재 보호법에 따른 건물 외관 규제, 복잡한 설치 절차, 그리고 냉방기기를 '기후위기의 적'으로 보는 친환경 정책적 정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흐름 속에 삼성전자·LG전자는 올 상반기 남유럽을 중심으로 에어컨 매출이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유럽을 새로운 격전지로 삼고 있다.
노동 현장 폭염 대책도 각양각색
시민 피난처 조성 외에도 각국은 근로자 보호를 위한 강제적 조치를 확대하고 있다. 그리스는 기온이 40도를 넘을 경우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야외 육체노동과 배달 서비스를 강제 중단시키고 있으며, 다른 고용주들에게는 재택근무를 옵션으로 제공하도록 지시했다. 일본 정부는 열사병 보호 조치를 의무화하는 노동 안전 규정을 발표, 고용주에게 통풍이 잘되는 작업복과 그늘막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기온이 35도를 넘으면 하루 180위안(약 3만4400원)의 '폭염 수당'을 법적으로 지급하도록 하고 있고, 인도는 공공장소 냉수기 3000개 설치와 지붕 달린 버스 정류장 조성 등을 골자로 한 폭염 대책을 선제적으로 발표했다.
미국은 주(州)별로 대응이 갈리는데, 워싱턴주는 화씨 80도(섭씨 약 26.7도)를 넘으면 유급 휴식을 보장하는 '버디 시스템'을 시행 중이며, 뉴욕시는 2025년까지 모든 신축 건물에 냉방 시설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도시 설계 차원의 장기 대응책
단기 피난처를 넘어 도시 인프라 차원의 근본적 대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UN 산하 싱크탱크는 도시 표면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지붕과 도로에 태양열을 반사하는 '쿨루프' 소재를 적용하고 녹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은 2018년 재난안전법을 개정해 폭염을 법정 재난으로 규정, 기온이 경계 기준을 넘으면 정부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해 피서센터 개설과 취약계층 방문 관리를 의무화하는 체계를 갖췄다.
이 밖에 프랑스는 4단계 폭염경보 발령 시 의료·복지 기관이 독거노인에게 매일 안부 전화를 걸도록 하고, 네덜란드는 공공보건연구원이 주도하는 '전국 열건강 계획'으로 취약계층에게 식수를 배달하며, 일본은 열중증 경보 발령 시 학교 체육관을 피서소로 개방하는 등 국가별로 특화된 대응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기후분야 관계자는 "폭염이 일회성 기상 현상이 아닌 상시적 재난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세계 각국의 정부 대응도 임시방편의 '피난처 제공'에서 법제화된 재난관리 체계로 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도 독거노인, 쪽방촌, 에어컨없는 가구 등 폭염과 에너지빈곤 위기에 처한 국민을 생각하는 정책시행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