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이종화 기자] 한국섬유산업연합회(섬산련) 제17대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전임 회장단과 현 최병오 회장 측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경세호·노희찬·성기학·이상운 등 전임 회장 4명이 공동 입장문을 내고 추대 절차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최 회장의 연임 시도가 '절차적 정당성' 논란에 휘말렸다.
전임 회장단은 지난 24일 연합회 이사 및 총회 회원들에게 보낸 공동 입장문을 통해 "회장 선출 과정이 그동안 섬산련이 유지해 온 원칙과 절차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추대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한 뒤 회장 선출 절차를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는 8월 18일 임기 만료를 앞둔 섬산련은 최현규 대한니트협동조합연합회장을 위원장으로 방주득 한국섬유수출입협회장, 오병철 정우섬유 회장, 성래은 한국패션협회장, 조정문 전 대구경북섬유산업연합회장 등 5인으로 추대위원회를 구성해 인선 절차에 착수했다. 당시 업계 일각에서는 "5인 추대위가 내부 반대 여론이나 수장의 도덕성 검증을 치열하게 따지기보다 '관례'라는 미명 아래 최 회장의 연임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는 우려가 이미 제기됐다.
실제 연임 확정, 그러나 절차 잡음은 계속
하지만 7월 23일, 섬산련 5인 추대위는 서울 강남구 섬유센터에서 3차 회의를 열고 최병오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최종 추대했다. 추대위는 6월 9일 이사회에서 꾸려진 뒤 7월 3일·8일 두 차례 회의를 거쳐 23일 3차 회의에서 결론을 냈고, 절차가 마무리되면 최 회장은 8월 19일부터 3년의 새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이 결정 과정에서 추대위원 5명 중 2명이 사퇴한 뒤 남은 3명만으로 연임이 사실상 확정된 것처럼 알려졌다는 점이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전임 회장단은 최 회장이 스스로 추대위원을 임의 지명한 뒤 해당 위원들로부터 추대를 받는 방식 자체가 절차상 문제이며, 전임 회장 1명을 추대위원에 포함하던 관례도 무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24일 최 회장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하려 했으나, 그 직전인 23일 이미 3차 회의를 통해 연임이 결정돼버린 셈이다.
최 회장은 왜 그토록 섬산련 연임에 매달릴까
최 회장은 6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3년이라는 임기가 생각보다 너무 짧았다"며 "국방섬유 100% 국산화, K패션 르네상스, 섬유·패션 1인 창업 지원 등을 임기 중 마무리하고 싶은 정책 과제"로 제시했다. 명분은 '업계 대표 리더십의 연속성'이지만, 시장에서는 그룹 재무 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 대외적 위상과 인적 네트워크를 유지하려는 목적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패션그룹형지의 재무 상황은 실제로 심각하다. 패션그룹형지 주식회사(대표이사 최병오)가 2025년 회계연도(제28기)에 매출 1,809억원을 기록하며 전년(1,934억원) 대비 6.4% 감소한 가운데, 당기순손실이 306억 8,700만원으로 불어나 전년 순손실(166억원)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충격적 성적표를 내놨다.
부채비율은 290.7%로 치솟았고, 이익잉여금은 1년 새 346억원에서 39억원으로 급격히 증발했다. 특수관계자에 대한 대여금 잔액이 2,220억원에 달하는 반면 이 중 상당 부분에 대한 대손충당금이 설정되어 있어 계열사 부실이 지주사를 직격하는 구조적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계열사인 형지글로벌, 네오패션형지, 아트몰링도 심각한 적자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패션그룹형지는 국세청과의 세금 전쟁 중이며, 현재 계류 중인 주요 소송도 3건이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법인세 등 부과처분취소 청구 건으로, 소송 금액이 19억 6,700만원에 달한다. 역삼세무서장 외 2명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이 소송은 2026년 1월 15일 1심 패소 후 현재 항소 심리 중이다. 전기(2024년)에도 동일 건이 1심 진행 중이었으며, 패소 이후에도 항소를 이어가고 있어 세무 리스크가 지속되고 있다.
기업재무분석 전문가는 "패션그룹형지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실상은 계열사 부실 채권을 흡수하는 '구제금융 머신'에 가깝다"며 "특수관계자 대여금 2,220억원 중 절반이 넘는 1,183억원에 이미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할 정도라면, 이 회사의 실질 자본은 공시된 923억원에서 훨씬 아래로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단기차입금 1,404억원에 현금성자산 35억원이라는 유동성 위기는 기본이며, 오너 개인 신용으로 기업 차입금을 떠받치는 구조에 더해, 계열사들에 대한 연대보증 수백억원이 잠재 폭탄으로 도사리고 있다"면서 "306억원의 적자에도 경영진 보상을 35% 올린 것은 주주가 아닌 경영진 중심 지배구조의 전형이며, 이사회의 감독 기능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고 꼬집었다.
형지의 아픈손가락, 송도 글로벌패션복합센터 분양사기 '재조명'
이런 가운데 그룹의 아킬레스건인 인천 송도 글로벌패션복합센터 분양사기 사태도 재부각됐다. 2년째 표류 중인 이 사업은 준공 후 분양 제한 규제를 우회하려던 편법적 임대차 계약 구조가 대행사의 채무불이행으로 이어지면서, 수십 명의 수분양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대규모 재산 피해로 번졌다.
피해자 모임은 지난 5월 18일 형지 송도 사옥 앞에서 도의적 책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인천 화섬 분양사기 피해자 모임 대표는 "형지의 기업 신용을 믿고 계약했던 것이 화근이었다"며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책임 있는 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형지 측은 법적 책임이 없다며 2년째 모호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회장이 다시 연임을 도전하는 것에 대해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결국 송도 사옥 분양사기 피해자들의 원성을 가리고 진실을 호도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섬산련 회원사의 한 패션기업 관계자는 "회장 연임 이슈는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섬유패션업계는 심한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망하기 일보직전인 국내 패션산업을 살리는 데 힘을 쏟아도 부족할 판에 섬산련이 한 특정기업 살리는 데에만 힘을 쏟고 있다"고 일갈했다.
패션그룹형지와 형지글로벌의 소액주주들도 "실적 변동 없는 오너가의 터무니없는 보수 체계 유지, 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기조 패싱은 결과적으로 오너가의 지배력 강화에만 활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섬산련 회장은 국내외를 넘나들며 한국 섬유패션산업의 권익을 대변하고 정부 정책을 조율하는 막중한 자리"라며 "오너 리스크로 K패션 산업계 전체의 신뢰와 통합을 훼손할 자격이 있는지, 연임을 위한 진지한 인식이 대승적 차원에서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결국 이번 섬산련 회장 선출 논란은 단순한 개인 연임 여부를 넘어, 오너 중심 지배구조의 절차적 정당성과 섬유패션업계 전체의 신뢰 회복이라는 더 큰 숙제를 남기고 있다는 평가다.
최병오 회장은 누구인가
1953년 부산 출생인 최병오 회장은 1982년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의류 소상인으로 창업해 크로커다일레이디, 올리비아하슬러 등 17개 브랜드, 2000여개 매장을 운영하는 패션그룹형지를 일으킨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그는 2023년 8월 16일 5인 추대위원회의 6차 회의 끝에 김준 대한방직협회장과의 경합을 뚫고 제16대 섬산련 회장에 만장일치로 추대됐으며, 당시에도 "업계 내외적 위기 상황 타개를 위해 산업을 재편할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추대 배경으로 꼽혔다.
언론사(한국섬유신문)와 언론인(매경,한경) 출신 임원까지 포진
형지그룹은 언론계 인맥을 잇달아 영입하며 미디어 사업까지 확장중이다. 형지그룹은 섬유·패션전문지 한국섬유신문을 인수해 2022년 11월 17일 인천 송도 형지타워에서 '종합언론사 KTN미디어그룹' 출범식을 열었으며, 한국경제신문 기자·논설위원·기획조정실장을 지낸 권영설 형지엘리트 사장을 2025년 8월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또 매일경제신문 유통경제부·중소기업부·문화부 등에서 22년간 근무한 김지미 전 매경 기자를 2023년 6월 마케팅담당 상무로 영입했고, 김 상무는 2025년 7월 전략마케팅본부 전무로 승진해 CMO에서 CSO까지 맡고 있다. 형지그룹 홍보·마케팅 총괄 김지미 전무는 형지그룹의 대외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섬산련과 섬유신문을 통한 미디어 영향력까지 다층적으로 확보했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