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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조직론

[사춘기 조직론] "왜 나한테만 더 말해요?" 공평과 공정 사이

[래비코치's EYE] ⑤

 

요즘 중간성과평가 면담 시즌이다. 리더들은 구성원 한 명 한 명과 마주 앉는다. 같은 기간, 같은 조직에서 일했지만 건네지는 말은 제각각이다. 어떤 이에게는 "잘 하고 있어요"가, 어떤 이에게는 "좀 더 분발이 필요해요"가 돌아간다. 그 순간 구성원의 마음속에 어김없이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다.

 

'분명 비슷하게 일했는데, 왜 평가는 다를까.'

 

비슷한 장면은 집에서도 재현된다. 쌍둥이 아이들의 숙제를 함께 들여다보는 날이 있다. 한 아이는 매일 조금씩 꾸준히 채웠고 다른 아이는 며칠을 비워두다 한꺼번에 몰아 썼다. 결과물의 양은 비슷하지만 두 아이에게 같은 말이 돌아가진 않는다. 꾸준한 아이에게는 "잘하고 있어."라고 했고, 몰아서 한 아이에게는 "다음엔 조금 나눠서 해보자"라고 했다.

그러자 부정적 피드백을 받은 아이가 물었다. "왜 나한테만 더 잔소리해요?"

 

음...이건 차별일까? 공정인가.

 

◆ 공평과 공정, 한 글자 차이가 만드는 전혀 다른 세계

 

공평(公平, Equality)이 모두에게 똑같은 크기의 조각을 기계적으로 나누는 것이라면, 공정(公正, Equity)은 저마다의 맥락과 과정을 살피는 정교한 저울질과 같다. 공평은 동일하게 대하는 것이고, 공정은 다르게 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겉으로만 보면 서로 다른 피드백은 차별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차이 안에는 각자의 태도와 과정, 가능성을 살펴본 관찰이 담겨 있다.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할 수 있는데 아직 습관이 안 잡혔잖아. 그래서 한 마디 더 한 거야." 이유를 납득해서일까? 아이는 더 이상 억울해하지 않았다.

공정은 결과의 균형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온 이유를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 조직이 "불공정하다"는 말을 듣는 진짜 이유

 

조직은 어떨까?

최근 기업의 성과급과 평가를 둘러싼 논란을 살펴보면, 표면적으로는 조직이나 개인 간 보상 격차가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성원의 불만을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히 금액이나 점수 차이에만 머물지 않는다.

 

매출이나 이익처럼 수치로 표현하기 쉬운 조직은 상대적으로 성과를 설명하기 쉽다. 반면 지원부서의 기여, 부서 간 갈등을 조정한 노력, 잠재적인 리스크를 사전에 막은 성과는 기존 지표만으로 온전히 포착하기 어렵다. 보이지 않는 헌신이 제도 바깥에 방치된 것이다.

 

성과 면담 시즌마다 터져 나오는 불만의 핵심도 반드시 “왜 내 점수가 이것밖에 되지 않느냐”는 데 있지는 않다.

오히려 ‘지난 반년 동안 내가 현장에서 치열하게 해온 일들이 도대체 어디에 반영된 것인지 모르겠다.’는 억울함에 가깝다. 

코치의 시선에서 보면 구성원이 호소하는 불공정의 본질은 차등 자체보다, 차등이 만들어진 과정이 보이지 않는 데 있다.

 

자신의 노력과 기여는 충분히 관찰되지 않았는데, 결과만 점수로 환산됐다는 불신이다. 구성원을 좌절시키는 것은 차등이라는 결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의 노력이 지워졌다고 느끼는 상실감이다.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리더의 공정이다.

 

사춘기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안다. 시험 점수만으로 아이를 평가하면 반드시 놓치는 것이 생긴다. 오늘 학교에서 혼자 불안을 이겨낸 것, 친구와의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려 애쓴 것. 그런 것들은 성적표에 찍히지 않는다.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부모만이 알아채고 "애썼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 한 마디가 아이와의 단단한 신뢰를 만든다.

 

리더도 다르지 않다. "이번 분기 수치는 아쉽지만, OO님이 A팀과 조율해서 이 리스크를 막은 것을 잘 알고 있어요."라는 말 한마디가 숫자 뒤에 가려진 그의 헌신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가장 강력한 공정의 행위다.

다만, 리더의 정성적인 관찰이 또 다른 '주관적 편애'로 오해받지 않으려면 리더 자신의 철저한 기록과 상시 피드백이라는 제도적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공정은 리더의 좋은 의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거창한 제도 개편 이전에 일상의 세밀한 관찰과 상시 대화 속에서 과정의 가치를 기록하고 포착하려는 리더의 의지... 거기서 진짜 공정은 시작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공정의 진짜 적은 차등이 아니다. 차등 뒤에 숨은 과정의 왜곡과 외면이다.

 

[LABi's Question]

이번 면담에서 당신이 숫자로 다 담아내지 못한 구성원의 헌신이 있다면, 그것을 증명할 '당신의 기록과 말'은 준비되어 있나요?나를 알아봐 주었다는 그 감각이 신뢰를 만들고, 그 신뢰가 조직의 다음 성장을 이끌어낼 것입니다.

 

★ 래비(LABi)는 사람과 조직의 성장을 돕는 코치이자 기업의 교육·조직문화를 담당하는 HR 임원이다. 20년의 조직 현장 경험을 '래비eye(코치의 시선)'로, '래비아이(두 아이)'의 일상 관찰을 바탕 삼아 사춘기 가정과 요즘 조직이라는 두 세계를 관통하는 성장의 언어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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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조직론] 승부욕의 방향이 팀의 운명을 가른다

승부욕은 양날의 칼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 칼날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에너지가 향하는 대상이라는 데 있다. 쌍둥이 중 한 아이는 어릴 적부터 이기고 싶은 마음이 유독 강했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나타나는 집중력은 놀랍다. 공부할 때도 스스로 반복하고 잘되지 않아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 아이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 중 하나가 승부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형제와 게임을 할 때는 다른 얼굴이 나온다. 질 것 같으면 갑자기 화를 내거나 재미없다며 그만두려 한다. 함께 노는 즐거움보다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 아이에게 패배는 단순히 기분 나쁜 일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가 침해당하는 느낌처럼 다가간다. 이처럼 승부욕은 아이를 성장시키는 힘이 되지만 주변과의 관계를 흔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 개인에게 승부욕은 성장의 연료다. 기본적으로 이기고 싶다는 마음은 그 자체로 나쁘지 않다. 어제보다 더 잘하고 싶고 뒤처지고 싶지 않으며 쉽게 적당한 선에서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 건강한 긴장감이 사람과 조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적절한 승부욕을 가진 구성원은 스스로 높은 기준을 세우고 부족한 점을

[사춘기 조직론] 뒷담화, 아이도 어른도 삼키지 못한 씁쓸한 뒷맛

쌍둥이를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르는 소리를 듣는다. "엄마, 연우가 나 놀렸어." "아니야, 선우가 먼저 그런 거야." 어느 쪽 말을 들어봐도 억울함투성이다. 며칠 전, 선우가 신나게 연우 흉을 보고 있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연우가 얼마나 얄미웠는지를 한참 늘어놓았다. 실컷 쏟아내고 나니 속이 후련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연우가 선우한테 자기 간식을 슬쩍 나눠주는 걸 봤다. 별일 아닌 장면이었는데, 그 순간 선우의 표정이 시들해졌다. 조금 전까지 흉보던 상대가 아무렇지 않게 잘해주니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 선우가 말했다. "엄마, 나 아까 연우 흉 너무 많이 봤나? 기분이 좀 그래." 나는 되물었다. "흉보고 나니까 속이 시원했어?" 선우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시원했는데, 지금은 그냥... 좀 찜찜해." 아이는 흉을 보는 그 순간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개운하지 않은 뒷맛을 느꼈던 것 같다. ◆ 쿨함이라는 가면 조직도 마찬가지다. 회의가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방금 지나간 상사의 말투나 동료의 태도를 안주 삼는다. 다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웃으면서 시작해 웃으면서 끝낸

[사춘기 조직론] “노크하세요" 닫힌 방문과 팀의 침묵

퇴근 후 집에 오니, 아이 방문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매직으로 또박또박 눌러 쓴 글씨. 그 아래에는 <절대 금지>라고 적힌 그림까지 정성이 가득하다. “노크하세요.” 쌍둥이 중 한 명이 자기 방문에 붙여둔 쪽지였다. 그런데 다른 아이 방에는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방문도 활짝 열려 있다. 같은 집, 같은 엄마, 같은 환경에서 자라는 쌍둥이인데 한 아이는 닫힌 문 앞에 선명한 경계선을 그었고, 다른 아이는 여전히 열려 있는 문으로 아무렇지 않게 나를 맞이한다. 처음에는 솔직히 서운했다. ‘내가 언제 그렇게 함부로 들어갔다고.’ 회사에서는 수백 명의 교육 과정과 조직문화를 설계하며, 리더들에게 심리적 안전감과 자율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구성원의 감정과 행동을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정작 집에서는 아이 방문 앞에 붙은 종이 한 장에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럽다. 강의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말하던 ‘존중’이 아이 방문 앞에 서는 순간 무기력해진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회사 어딘가에도 저런 쪽지가 붙어 있는 건 아닐까. 말 없는 팀원의 등에, 회의실 문 앞에, 혹은 리더가 아무렇지 않게 열고 들어가는 누군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