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빨래를 뽀송뽀송하게 말려주는 가정용 건조기가 세탁기보다 최대 40배 많은 미세섬유를 대기 중으로 뿜어낸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면서, ‘건조기=미세먼지 제조기’라는 오명이 과학적 근거를 얻고 있다. 단순한 생활 편의 가전을 넘어, 실내외 공기질과 도시 대기환경에 직결되는 환경 변수로 건조기가 재평가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외 건조기 시장에서 오랜 기간 선두를 지켜온 LG전자에게는 이번 논란이 유독 부담스러운 뉴스가 될 전망이다. 시장 1위 브랜드일수록 부정적 이슈의 파급력이 커지는 데다, LG전자는 과거에도 건조기 관련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건조기 1회 가동, 138.6㎎이 의미하는 무게
미국 네바다주 사막연구소(DRI)와 환경단체 ‘리그 투 세이브 레이크 타호’(League to Save Lake Tahoe) 공동 연구팀은 학술지 ‘Environmental Toxicology and Chemistry’에 발표한 논문에서, 일반 가정 6~7곳의 건조기 배기구에 1㎜ 크기 메시 필터를 설치해 3주간(76회 가동 분량) 실제 세탁물을 건조한 뒤 필터에 걸린 물질을 분석했다. 그 결과 1회 건조 시 55~244㎎, 평균 138.6㎎의 미세섬유가 배기구 밖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미국 내 약 8,200만 대의 전기 건조기 사용량에 적용하면 연간 약 3,543톤의 미세섬유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셈이며, 이 중 약 2,728톤은 면·마 등 천연 셀룰로오스 성분, 460톤은 폴리에스터 등 합성 미세플라스틱 성분으로 추산됐다. 흥미로운 점은 면 티셔츠가 폴리에스터보다 최대 22배 더 많은 미세섬유를 배출한다는 사실이다. 통상 ‘합성섬유=미세플라스틱 주범’이라는 통념과 달리, 실제로는 천연섬유인 면이 건조기 미세섬유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역설적 결과다.
세탁기보다 더 위험한 건조기
건조기가 미세섬유 배출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단순 배출량이 아니라 확산 방식에 있다. 홍콩시립대·캐나다 서스캐처원대 공동 연구팀은 가정용 회전식 건조기에 폴리에스터 7㎏, 면직물 6㎏을 넣고 15분간 가동한 결과, 면직물에서 43만 3,128개, 폴리에스터에서 56만 1,810개의 극세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는 세탁기가 배수구로 배출하는 극세사(폴리에스터·면 혼방 세탁 시 13만 7,951개)보다 많은 양으로, 연구팀은 캐나다 평균 가정에서 건조기 1대당 연간 9,000만~1억 2,000만 개의 극세사가 대기로 방출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세탁기 배출물은 하수처리시설을 거치지만, 건조기 배출물은 별도 정화 장치 없이 곧바로 실내외 공기로 방출된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건조기에서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의 평균 입자 크기는 약 300마이크로미터(μm)로 매우 가벼워 공기 중에서 쉽게 퍼져나가 광범위하게 확산된다. 특히 배기구 바람이 부는 방향 쪽에 미세섬유 침적량이 유독 높게 나타났고, 수거된 섬유의 약 60%는 염색된 상태였다는 점도 확인됐다.
5 Gyres 연구소 등이 참여한 후속 실험에서는 시판 중인 보조 필터의 성능도 검증됐다. 배기관 부착형 필터는 배출 입자의 44%를 걸러냈지만, 실내 설치형 필터 두 종은 각각 81%와 70%의 포집률을 보였다. 연구팀은 상업용 건조기를 도시 대기 중 미세섬유의 주요 배출원으로 지목하며, 필터 의무화와 관리 기준 마련을 제안했다.
한국형 히트펌프 건조기는 ‘예외’일까
주목할 대목은 국내 상황이다. 국내에 보급된 건조기 대다수는 미국식 배기(vented) 방식이 아닌 히트펌프(콘덴싱) 방식으로, 대기 중으로 직접 미세플라스틱을 배출하지 않고 응축수나 필터 폐기물로 처리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다만 이는 방식상의 구조적 차이에 근거한 추정이며, 현재까지 국내에 실제 보급된 건조기 기기를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배출량 측정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한국 건조기는 안전하다”는 확신할 수 없으며, 국내 실측 연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산하 보고서 역시 “미세플라스틱의 발생 원인·경로는 어느 정도 파악됐으나 미세섬유의 발생량·경로에 대한 국내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저감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보푸라기 필터 성능 개선, 배기구 추가 필터 장착, 무환기형(ventless) 건조기 사용, 자연건조 확대 등을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시장 1위의 역설, 이슈가 클수록 타격도 크다
LG전자는 2016~2018년 국내 건조기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며 점유율 65~70%를 기록했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일찌감치 건조기 시장에 진출한 LG전자는 국내 건조기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후 삼성전자의 추격으로 점유율이 50~55% 선까지 조정됐지만, 미국 시장에서도 LG전자는 세탁기·건조기 부문에서 각각 23.4%, 23.2%의 점유율로 1위를 지키고 있다.
최근 미국 시장조사기관 트랙라인 조사에서도 LG전자는 세탁기·건조기를 포함한 주요 가전 6개 품목에서 매출 기준 점유율 22%로 2년 연속 미국 시장 1위를 기록했다. 문제는 시장 지배력이 클수록 ‘건조기=미세먼지 제조기’라는 프레임이 형성될 때 소비자 인식에서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소환되는 브랜드가 바로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라는 점이다. 건조기 자체의 구조적 결함이 아니라 산업 전반의 문제라 해도, 시장 대표주자로서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피하기 어려운 구조다.
2019년 ‘건조기 사태’의 데자뷔
특히 LG전자에게는 이번 미세섬유 논란이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LG전자 건조기는 콘덴서 자동세척 기능 관련 성능 논란으로 소비자들이 한국소비자원에 집단분쟁조정을 제기하는 이른바 ‘LG 건조기 사태’를 겪었다. 당시 사태로 LG전자의 건조기 점유율은 7~9월 40%대까지 급락했고,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같은 해 7월부터 점유율 1위 자리를 가져가 11월에는 65% 수준까지 치고 올라왔다.
LG전자는 이후 문제가 없는 고객들에게까지 신제품 수준으로 성능을 개선해주는 ‘자발적 리콜’을 결정하며 뒤늦게 진화에 나서야 했다. 건조기 관련 이슈 하나가 시장 점유율을 순식간에 20%포인트 이상 흔들 수 있다는 점을 이미 한 차례 경험한 셈이다.
‘친환경 이미지’와의 충돌
LG전자는 최근 세탁기·건조기 세트에서 미국 컨슈머리포트 평가 상위권을 휩쓸며 프리미엄·기술력 이미지를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회사 차원에서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제품별 친환경 인증(EPR) 자료를 통해 건조기의 환경성을 적극 홍보해온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조기가 대기 중 미세섬유·미세플라스틱의 숨은 배출원”이라는 해외 연구 결과가 부각될 경우, 그간 쌓아온 친환경·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업계의 시각이다.
국내 실측 자료 공백, 양날의 검
다만 현재까지 국내에 보급된 히트펌프(콘덴싱) 방식 건조기를 대상으로 한 실제 미세섬유 배출량 측정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LG전자 입장에서 방어 논리와 리스크를 동시에 제공한다.
국내 가전업계 관계자는 "미국식 배기(vented) 건조기와 구조가 다른 만큼 동일한 배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반박이 가능하지만, 반대로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소비자 불안을 키우는 불확실성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면서 "시장 1위 기업이 먼저 나서 국내 실측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 한, 이 논란은 해소되기보다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