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미국 기업들이 인공지능(AI)에 대한 '무한 투자' 신화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투자수익률(ROI)을 따지는 '가성비 AI' 시대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현지시간) 보도한 이 흐름은 AI를 만능 해결사로 떠받들던 관행에서, 특정 업무에 특화된 '일벌'처럼 활용하는 실용주의로 옮겨가는 산업 전반의 지각변동을 보여준다.
왜 양봉업자의 지혜인가
WSJ는 "빅테크기업들이 인공지능(AI)에 맹목적으로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다가, 이제서야 AI를 '사람'이 아닌 '꿀벌'처럼 다루어야 한다는 양봉업자의 이치를 깨달은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즉 양봉업자가 꿀벌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꽃에서 꿀을 모아오는 것뿐이며, 수집된 꿀을 병에 담아 포장하고 고객에게 판매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 직접 해야 할 몫이라는 것이다.
마치 꿀벌이 직접 꿀을 포장해 사람을 만나러 다니고, 사람을 못 만나면 갑자기 컴퓨터를 켜고 온라인 비즈니스까지 하기를 바라는 것은 범용 인공지능(AGI)이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이라는 환상과 다름없다.
꿀벌이 꽃에서 꿀만 모아주어도 엄청나게 고마운 일인 것처럼, 기업들은 토큰을 무한정 써봐야 낭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철저한 '가성비'로 돌아서고 있다는 주장인 셈. 즉, AI는 주니어의 자잘한 업무를 대체하는 정도까지만 쓰여야지, 시니어의 고도의 통찰력까지 대체할 필요는 없다는 설명이다.
AGI 신화의 균열, 수익화로 방향 전환
지난해 하반기부터 실리콘밸리 빅테크들 사이에서 범용인공지능(AGI)을 향한 과열된 마케팅 수사가 눈에 띄게 잦아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AGI는 가까운 미래에 달성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으며, 앤트로픽 부사장 다니엘라 아모데이 역시 "AGI는 과거엔 유용했지만 이제는 낡은 용어"라고 언급했다. 이는 수조 원이 투입된 스케일링 전략이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업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토큰맥싱'에서 '밸류맥싱'으로
초창기 기업들이 직원들의 AI 사용량을 늘리도록 독려하며 사용 순위표까지 공개했던 이른바 '토큰맥싱(Tokenmaxxing)' 열풍은 이제 투자 대비 실질 가치를 극대화하는 '밸류맥싱(Valuemaxxing)'으로 대체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이 AI 예산을 무조건 삭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지출을 최적화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모든 신기술 도입 초기에 나타났던 '거품 뒤 합리화' 과정이 AI 영역에서도 예외 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람보르기니로 우유 사러 가지 않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스페이스X에 60억 달러(600억 달러 규모)로 인수된 AI 코딩 스타트업 커서(Cursor)의 사례가 상징적으로 거론된다. 스페이스X는 지난 6월 앤스피어(커서 모회사)를 전액 주식 교환 방식으로 인수하기로 확정했으며, 이는 벤처 지원 스타트업 인수 사상 최대 규모 거래로 기록됐다.
커서 관계자는 가장 강력하고 값비싼 AI 모델을 평범한 업무에 투입하는 것을 "트랙 경주용 람보르기니를 타고 식료품점에 우유를 사러 가는 것"에 비유하며, 업무 성격에 맞춰 고급 모델과 저비용 모델을 유연하게 전환하는 '모델 혼합'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국산 오픈웨이트 모델의 부상
비용 격차는 기업들의 브랜드 충성도를 흔드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는 자사 'V3' 모델 개발비가 557만 6000달러(약 78억 8000만 원)에 불과하다고 공개해, 앤트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가 언급한 미국 모델 개발비(1억~10억 달러)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중국 문샷AI의 'Kimi K2' 후속 모델은 학습 비용이 460만 달러에 그쳤음에도 전체 AI 모델 성능 순위 2위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저비용 고성능 모델의 부상은 미국 벤처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알리바바나 중국계 오픈웨이트 모델을 실무에 채택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무 현장의 '역할 분담형' AI 운용
업계에서는 가장 발전된 AI 모델로 작업 계획을 수립한 뒤, 실제 실행은 저비용 모델에 맡기고 최종 검토는 다시 고성능 모델이 담당하는 '역할 분담형' 운용 방식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업계 CEO는 "복잡한 작업에는 최첨단 모델을, 단순 업무에는 저렴한 모델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AI 활용이 세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AI 인프라에 대한 수요 자체는 여전히 공급을 웃돌고 있으나, 기업들의 투자 방식이 '무조건적 확대'에서 '가치 중심 최적화'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흐름은 미·중 AI 경쟁 구도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WSJ는 소규모 중국 모델 개발사들이 저비용 기법으로 미국 최상위 모델의 성능을 흡수해가는 데 대해 미국 업계가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만능 천재 AI' 하나에 의존하기보다, 저비용·고효율 모델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실용주의 AI 운용'이 향후 기업 경쟁력을 가르는 새로운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