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조선 연산군이 만든 '채홍사(採紅使)' 제도는 절대 권력이 개인의 욕망을 국가 시스템으로 전환시킨 대표적 사례다. 이후 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북한의 '기쁨조'와 비교되며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당연히 채홍사는 영화와 드라마 제작자들에게도 매력적인 소재였다. 왕의 광기와 신하의 권력욕, 그리고 강제로 끌려간 여성들의 비극이 응축된 이 역사적 사건은 대표적으로 2015년 영화 '간신'과 2025년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를 통해 대중 앞에 재현됐다.
영화 '간신'…채홍사를 정면으로 조명한 첫 작품
민규동 감독이 연출하고 주지훈, 김강우, 천호진이 출연한 영화 '간신'은 채홍사라는 소재를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상업영화로 평가된다. 영화는 연산군 11년(1505년)을 배경으로, 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조선 팔도에서 미녀 1만명을 강제로 징집한 채홍사 임숭재(주지훈 분)와 그의 아버지 임사홍(천호진 분)의 권모술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실제로 당시 장악원 제조였던 임숭재가 경상도·충청도 채홍준사로, 임사홍이 그 배후 실세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어, 영화는 상당 부분 역사적 사실에 기반했다. 장악원은 조선시대 예조(禮曹) 소속의 정3품 관청으로, 왕실의 제례와 연례 등 국가 공식 행사에서 음악과 춤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다. 제조라는 직책은 '장악원'의 최고 책임자로, 왕실의 각종 의례에 필요한 음악과 무용 전반을 총괄 관장한 고위 겸직 관료다.
영화 속에서 채홍사가 징발한 여인들은 '운평(運平)'으로 불렸으며, 이 중 왕에게 직접 간택돼 최고 등급에 오른 여성들이 '흥청'으로 구분됐다는 실제 조선의 등급 체계가 그대로 재현됐다. 흥미로운 지점은 임숭재가 사대부가의 여식부터 부녀자, 천민까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미녀를 색출했다는 설정인데, 이는 채홍사가 계급을 초월해 왕권 앞에 모든 여성을 동등한 '자원'으로 취급했던 폭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민규동 감독은 이 사건을 "조선시대 미녀 홀로코스트"로 규정하며, "채홍이 단순한 향락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 차원의 인권 유린이었음"을 강조했다.
당시 채록된 실록 원문 "임숭재와 임사홍을 전국 각지에 보내고 채홍사라 칭하여 아름다운 계집을 간택해 오게 하라"(연산군일기 연산 11년 6월 16일)는 영화의 핵심 대사로도 활용됐으며, 이는 영화가 픽션이 아닌 정사에 기반한 작품임을 뒷받침한다. 배우 주지훈은 이 배역을 두고 "왕 전문 배우에서 간신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는데, 그가 그간 드라마 '궁'과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 왕을 연기했던 이력과 대비돼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 '폭군의 셰프'…타임슬립 사극 속 채홍 서사
2025년 방영된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는 현대의 셰프가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하는 허구적 설정이지만, 극 초반 채홍 모티프를 적극 차용해 시청자들의 역사적 관심을 재점화시켰다. 드라마는 1~2회에서 여성들이 강제로 궁으로 끌려가는 장면을 통해 '채홍사'라는 인물을 등장시켰다.
이는 순수 창작물임에도 실제 연산군 시대의 향락 제도를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특히 연산군 10년(1504년) 갑자사화 이후 왕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면서 채홍사 제도가 본격화됐다는 시대적 배경을 상세히 설명했다.
'간신'은 채홍사 임숭재라는 실존 간신을 통해 권력의 사유화와 몰락을 정통 사극의 문법으로 무겁게 다뤘고, '폭군의 셰프'는 채홍이라는 소재를 판타지적 설정 속에 녹여내 오히려 대중이 역사적 사실을 자발적으로 검색하고 재발견하도록 유도하는 새로운 방식의 역사 콘텐츠 소비를 만들어냈다.
채홍사의 탄생과 유래
채홍사는 1504년 갑자사화 이후 연산군이 미녀를 뽑기 위해 전국에 파견한 임시 관원으로, 정식 명칭은 '채홍준사(採紅駿使)'였다. 여기서 '홍(紅)'은 아름다운 여성을, '준(駿)'은 좋은 말을 의미하는데, 이는 연산군이 여색과 명마 모두를 탐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이다.
1505년 6월 이계동을 전라도, 임숭재를 경상도·충청도 채홍준사로 임명한 것이 최초 기록이며, 이후 채청여사·채홍준체찰사·채홍준종사관·채홍준순찰사 등 세부 직책으로 전국에 확산됐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성과 보상 체계다. 미녀를 많이 바친 채홍사에게는 작위와 토지, 노비까지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어, 오늘날 기업의 성과급 인센티브 시스템과 유사한 구조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방 곳곳에서 채홍사들의 횡포가 극심했고, 양가의 미혼 처녀들조차 강제 징발을 피하지 못했다.
숫자로 본 채홍사의 규모와 폐지 계기
역사 기록에 따르면 당시 채홍사에 의해 징발된 처녀의 수는 거의 1만명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뽑혀온 여성들은 나이와 용모에 따라 등급이 나뉘었고, 최상위 등급인 '흥청(興淸)'은 왕이 직접 간택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국가 주도 '캐스팅 시스템'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오늘날 흔히 쓰이는 '흥청망청'이라는 표현이 바로 이 흥청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언어사적 이면이다.
가장 채홍사 활동이 왕성했던, 즉 가장 '밝혔던' 왕은 두말할 것 없이 연산군이다. 이 제도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연산군 이전이나 이후 어느 왕대에도 등장하지 않는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인 관직이었으며, 폭정과 황음이 극에 달했던 1504~1506년에 한정 운영됐다.
역사학자들도 이제도를 권력 사유화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채홍사로 망한 연산이라 표현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면서 채홍사 역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나라의 유사 제도…후궁 선발 시스템의 세계사
채홍사와 유사한 국가 주도 여성 징발·선발 제도는 동아시아 곳곳에서 확인된다.
중국 명나라는 후궁 선발을 위해 '해선(海選)'부터 '흠정(欽定)'까지 8단계에 걸친 정교한 심사 절차를 운영했으며, 전국에서 5000명의 후보를 모아 최종 3명으로 줄이는 방식이었다.
청나라는 3년마다 '선수녀(選秀女)' 제도를 시행했는데, 대상은 만주족 팔기 출신 소녀로 한정했으며 자태, 목소리, 피부, 체취까지 세밀하게 심사했다는 점에서 채홍사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관료화된 시스템이었다. 당 현종 시기 후궁 규모는 무려 4만명에 달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어, 규모 면에서는 조선의 채홍사를 압도한다.
이러한 사례들을 종합하면 채홍사는 동아시아 전통 왕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국가 권력의 여성 징발' 현상의 한 갈래이며, 다만 조선의 경우 제도화 기간이 극히 짧고 즉흥적·폭력적 성격이 두드러졌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현대판 채홍사' 북한 김정은 시대 기쁨조
북한의 '기쁨조'는 1970년대 김정일의 지시로 만들어진 조직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기쁨조는 세부적으로 만족조(성적 만족을 담당), 행복조(안마 등 신체 서비스), 가무조(춤·노래 담당)로 나뉜다는 것이 탈북 방송인 김정원씨와 전 조선중앙TV 기자 장해성씨의 증언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위키백과는 "기쁨조라는 실체와 용어가 북한 내부에서 실제로 존재하는지 공식적으로 증명된 바 없으며, 일부 언론인과 탈북자의 주장에 근거한다"고 명시해 신뢰도에 대한 유보적 입장도 병존한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북한 노동당 중앙당 5과가 각 도별로 신체조건과 외모를 기준으로 여성을 선발하는 실무를 담당하며, 선발된 여성들은 애초 기대와 달리 강제노동과 성 착취를 당한다는 인신매매적 성격이 지적된다.
탈북자 한모씨의 증언에 따르면 "키는 최소 160cm 이상에 피부와 치아는 하얗고, 계란형 얼굴에 옅은 쌍꺼풀까지 있어야 합격할 만큼 기준이 높은데, 출신 성분까지 좋아야 선발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왜 권력은 몸을 욕망하는가
채홍사와 기쁨조는 시대와 체제를 초월해 '절대 권력이 타자의 신체를 자원화하는 방식'을 상징한다. 연산군의 채홍사가 개인의 광기와 폭정이 낳은 일시적 일탈이었다면, 북한의 기쁨조는 국가기구가 반세기 넘게 체계적으로 운영해온 제도라는 점에서 권력의 '제도화된 사유화'가 얼마나 지속가능한 형태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흥청망청이라는 일상어 속에 새겨진 채홍사의 기억은, 권력이 통제받지 않을 때 국가 시스템 전체가 개인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역사적 경고를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