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9월 28일은 '세계 정보 접근의 날'이다.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권리뿐 아니라, 시민이 그 정보의 출처와 신뢰도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알 권리’의 원칙을 환기하는 날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 출처로 돌아가는 길이다.
세계 정보 접근의 날을 맞아 과학·의학·기술 뉴스의 신뢰를 떠받치는 작은 숫자, DOI(Digital Object Identifier·디지털 객체 식별자)를 들여다봤다. 특히 생성형 AI가 그럴듯한 허위 인용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에서, 기사 속 논문 한 편의 DOI를 명기하는 일은 독자에게 원문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는 행위다. “이 주장은 어디에서 왔는가”, “연구는 지금도 유효한가”, “철회되거나 수정되지는 않았는가”를 독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비로소 알 권리는 완성된다.
이에 뉴스스페이스는 ‘숫자 하나로 진실을 증명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DOI가 왜 논문 신뢰의 마지막 보루로 불리는지, 그리고 과학기사를 쓰는 언론이 왜 DOI를 출처 표기의 기본값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정리했다.
디지털 객체 식별자(DOI, Digital Object Identifier)는 논문과 데이터, 보고서 등 디지털 콘텐츠에 부여되는 영구적이고 고유한 식별번호다. 마치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처럼 콘텐츠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웹 주소(URL)가 바뀌거나 출판사가 변경돼도 DOI 자체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한번 등록된 콘텐츠는 영원히 추적 가능한 흔적을 남긴다.
DOI란 정확히 무엇인가
DOI는 국제표준화기구(ISO)가 표준화한 핸들 시스템의 구현체로, 접두사(prefix)와 접미사(suffix)가 슬래시(/)로 구분된 문자열 형태를 취한다. 접두사는 한국DOI센터 같은 등록관리기관(RA)이 출판사 단위로 부여하며, 예컨대 10.1038은 네이처, 10.1126은 사이언스, 10.1016은 엘스비어를 식별한다. 접미사는 등록자가 개별 콘텐츠를 구분하기 위해 자유롭게 정하는 문자열로, 이 두 부분이 결합해 지구상에 단 하나뿐인 식별자가 완성된다.
DOI는 미국출판업협동조합이 만들어 국제DOI재단(IDF)이 관리하는 사실상의 국제표준 식별체계이며, 콘텐츠 소유자·제공자 정보와 유통 경로가 자동 추적돼 불법복제 방지 기능도 겸한다. 학술지 논문뿐 아니라 도서, 데이터셋, 학회 발표 논문, 정부 보고서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디지털 지식 생태계 전체의 '신분증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왜 이렇게까지 확산됐나…숫자로 본 DOI의 위상
학술 출판 생태계의 규모는 이미 상상을 뛰어넘는다. DOI 등록 대행기관인 크로스레프(Crossref)는 2000년 북미·유럽의 12개 학술 출판사가 모여 설립됐고, 2002년까지 400만 건의 DOI 레코드를 등록하는 데 그쳤지만, 25년이 지난 현재 164개국 2만3600여 개 회원기관이 참여해 1억7600만 건 이상의 오픈 메타데이터 레코드를 DOI와 함께 등록한 상태다.
2007년 2월 등록 건수가 처음 2500만 건을 넘어섰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20년 만에 등록량이 7배 이상 폭증한 셈이다. 이는 디지털 지식 생산량의 기하급수적 증가와 동시에, 그만큼 '진짜 원본'을 가려낼 장치가 절실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과학기술 뉴스가 DOI를 명기해야 하는 '진짜 이유'
첫째, DOI는 정보의 영속성을 보증한다. 뉴스 기사가 논문을 인용할 때 URL만 걸어두면 사이트 개편이나 서버 이전으로 링크가 끊기는 '링크 로트(Link Rot)'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지만, DOI는 doi.org 리졸버를 통해 콘텐츠의 최신 주소로 항상 연결된다.
둘째, DOI는 논문의 '진위'와 '버전'을 검증하는 유일한 공식 창구다. 최근 국내에서는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을 부적절하게 사용해 작성된 것으로 의심되는 논문이 최근 5년간 204건이나 철회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부정 논문 여부를 추적하고 철회 사실을 명확히 고지하는 것도 결국 DOI 기반 메타데이터 시스템을 통해 이뤄진다.
셋째, 학술 부정행위의 실태를 보면 DOI 명기가 왜 언론의 최소한의 책무인지 드러난다. 미국 예시바대 연구팀이 1977년부터 2012년 사이 철회된 생명과학·의학 분야 논문 2047건을 분석한 결과, 단순 실수로 철회된 경우는 21.3%에 불과했고 조작·표절·중복출판 등 명백한 부정행위로 인한 철회가 67.4%에 달했다.
조작에 의한 철회 사례는 1970년대 대비 최근 10배 가까이 증가했고, 조작이 드러난 뒤에도 계속 인용되는 '좀비 논문' 현상까지 확인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 과학기술·학술정책연구소(NISTEP)의 2024년 철회논문 분석 보고서 역시 철회 논문 건수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이며, 일부 저자가 대량 철회를 주도해 국가별 통계를 왜곡시키는 경향까지 포착했다. DOI가 없다면 이런 부정확·조작 논문이 언론과 대중 사이에서 무한 재인용되며 확산될 위험이 훨씬 커진다.
철학적·문화적으로 읽는 DOI
DOI는 단순한 기술 규격을 넘어, 디지털 시대 '진실의 형이상학'을 상징한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종이 원본과 인장(印章)이 진위를 증명했지만, 복제와 유통이 무한대로 가능한 디지털 세계에서는 '원본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린다. DOI는 이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콘텐츠에 고정된 좌표를 부여함으로써, 마치 GPS가 물리적 위치를 특정하듯 지식의 '존재론적 정박지'를 제공하는 셈이다.
문화적으로 보면 DOI는 '느린 저널리즘'과 '빠른 저널리즘' 사이의 긴장을 조율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속보 경쟁 속에서 과학기사가 검증 없이 확산되기 쉬운 환경에서, DOI 명기는 독자에게 "이 주장은 검증 가능한 1차 출처를 갖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최소한의 저널리즘 윤리 장치다.
결국 DOI 한 줄을 기사에 박아넣는 행위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독자가 스스로 진위를 판별할 수 있는 권리, 즉 '지적 자기결정권'을 돌려주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