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일본 황위 계승을 둘러싼 논쟁이 국회 문턱을 넘으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일본 중의원은 2026년 7월 10일 본회의에서 옛 왕가 남성의 양자 입적을 허용하는 '황실전범' 개정안을 여당과 일부 야당 찬성으로 통과시켰으며, 참의원 심의를 거쳐 이번 회기 내 최종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17명뿐인 황족, 숫자로 보는 위기
현행 황실전범 제1조는 왕위를 "황통에 속하는 남계의 남자"로 못박고 있는데, 이 원칙 때문에 현재 일본 황족 수는 단 17명에 불과하다. 나루히토 일왕에게는 외동딸 아이코 공주뿐이고, 왕위를 이을 수 있는 젊은 남성 후계자는 동생 후미히토 왕세제의 아들인 히사히토 친왕 단 한 명뿐이다.
여성 황족은 일반인과 결혼하는 즉시 황족 신분을 잃고 그 자녀 역시 황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여계 배제' 구조가 이 숫자 감소를 가속화해왔다.
국민 72%가 원하는 여왕, 국회는 왜 외면했나
지난 5월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성이 일왕이 되는 것에 찬성하는 비율은 72%에 달했고, 다른 조사에서도 여왕 찬성 여론은 73%로 나타났다. 이런 압도적 지지의 배경에는 국민적 호감을 얻고 있는 아이코 공주의 개인적 인기가 크게 작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국회 여야 합의는 여왕 허용이 아니라 ①여성 왕족의 결혼 후 신분 유지 ②구왕족 남계 남성의 양자 입적, 두 가지로 한정됐다.
'양자'라는 우회로 도대체 무엇이 논란?
개정안의 핵심은 2차 세계대전 후 1947년 황적을 이탈한 옛 왕실 방계 가문 남성을, 15세 이상·미혼·자녀 없음이라는 조건 하에 다시 황족으로 양자 입적시키는 것이다. 정작 논란이 된 지점은 이 양자 본인에게는 왕위 계승권을 주지 않지만, 양자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왕위 계승 자격을 부여한다는 조항이다. 이는 국회 여야 합의안에는 없던 내용으로, 야당은 "입법부의 총의가 아니다"라며 반발했고 제1야당 입헌민주당은 수정안 제출을 예고했다.
'만세일계'는 신화인가…역사학자의 반박
보수 정치권은 진무 일왕부터 이어진다는 '만세일계' 전통을 근거로 남계 남성 원칙을 고수하지만, 이 서사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니토 아쓰시 명예교수는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초대 일왕 진무의 실존이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으며, 5세기 후반 부레쓰 일왕 사후 혈통이 불분명한 게이타이가 군사적 능력을 인정받아 왕위를 이은 사례를 들어 '단절 없는 부계 혈통'이라는 통설을 반박했다.
그는 또 고대에 여왕이 6명, 근세에 2명 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남계 남성 계승이 애초부터 절대 원칙이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전통'이라 불리는 남계 남성 원칙조차 실은 1889년 메이지 헌법 시기에 성문화된, 비교적 근래의 가부장적 발명품이라는 점이다.
혈통이라는 '만들어진 이야기'와 국민 정체성
이번 논쟁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한 왕실 인사 문제가 아니라, '정통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서사적으로 구성되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영국·북유럽 등 대다수 군주국이 성별과 무관한 평등 상속제로 전환한 흐름과 달리, 일본은 오히려 "옛 왕족의 피가 섞인 남성"이라는 혈통적 순수성 서사를 강화하는 역방향을 택했다.
평민 신분으로 70여 년을 살아온 방계 후손의 아들에게 신성한 계승권을 부여하는 방식은, 국민이 체감하는 '왕실다움'과 법적 정통성 사이의 간극을 벌릴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결국 일본 황실 위기는 '전통을 지키기 위해 전통을 새로 발명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이는 근대국가가 전근대적 상징체계를 유지하려 할 때 겪는 보편적 딜레마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