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빵을 나눠주는 손이 결국 줄을 세우는 손이 된다."
"공짜 임대료는 없다, 다만 누가 대가를 치르는지가 다를 뿐이다."
"국가에 집을 의탁한 자는 표를 의탁하게 된다."
"안전망이 사다리를 대신할 때, 그 안전망은 오히려 감옥이 된다."
서울시 장기전세주택(시프트) 제도가 도입 19년째를 맞아 첫 만기 세대를 쏟아내면서 '20년 거주 후 소유권 전환'을 요구하는 입주민과 '신규 무주택자 기회 박탈'을 우려하는 여론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이 갈등의 근저에는 20조원대로 치솟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의 재무 부담과, 세대 간 주거복지 배분을 둘러싼 철학적 질문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시프트 20년, 약속과 배신의 경계선
서울시는 2007년 전세 시장 안정을 목표로 주변 시세의 20~30% 수준 보증금으로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는 장기전세주택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계약 만료가 다가오자 송파파인타운을 비롯한 30개 공공임대주택 단지 입주민들이 모인 '서울시 공공임대주택 임차인 권익 증진위원회'가 계약 연장과 개별·단계적 분양 전환을 공식 요구하고 나섰다.
강동구 강일리버파크·강일리엔파크 입주민들도 2027년 계약 만료를 앞두고 "시세가 크게 올라 기존 보증금으로는 인근 재정착이 어렵다"며 감정가 기준 분양 전환을 촉구했고, 고덕리엔파크·강남신동아파밀리에·마곡엠밸리 입주민들도 공청회를 열어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게다가 강동구 단지 입주민들은 "우리가 나가면 집값이 폭락한다"는 경고성 논리까지 내놓고 있어 논란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앞으로 2027년 마곡수명산파크·송파파인타운, 2028년 은평뉴타운, 2029년 반포 자이와 반포 래미안퍼스티지, 2030년 상암월드컵파크, 2031년 세곡리엔파크, 2033년 서초네이처힐, 2035년 서초포레스타까지 주요 시프트 단지가 순차적으로 만기를 맞기 때문에, 이번 갈등은 향후 10년간 반복될 '예고된 시한폭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임대 20년의 역설…"주거 안정은 얻었지만 자산증식의 기회 잃었다"
서울시가 2007년 시프트 제도를 설계할 당시의 전제는 "저렴한 전세로 살며 종잣돈을 모으면 20년 뒤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으나, 이 전제 자체가 무너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PIR)은 6~7배 수준이었지만 2024년 현재 13.9배로 두 배 이상 뛰어, 중위소득 가구가 14년치 소득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서울 중간 가격대 집을 살 수 있는 구조가 됐다.
대표적 사례로 2009년 장기전세로 공급된 반포자이 84㎡는 연 5% 인상 한도를 적용해도 현재 보증금이 약 3억3000만원에 불과하지만, 동일 평형 전세 시세는 약 17억원에 달해 20년 사이 격차가 13억원까지 벌어졌다. 근로소득과 저축의 증가 속도가 부동산 자산 상승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지 못한 결과, "20년 거주의 끝이 곧 가난의 확인"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근본 배경이다.
강동구 강일리버파크(1,390가구)와 고덕리엔파크(1,614가구) 입주민들은 2027년 만기가 도래하면 시세 10억원대 집에서 20년 전 수준인 3억원가량만 돌려받고 퇴거해야 하는데, 이 돈으로는 같은 단지 재계약은 물론 서울 내 전셋집조차 구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이들이 요구하는 3대 사항은 ▲시세 80% 수준으로라도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재계약을 보장할 것, ▲감정가 기준 분양 전환 기회를 부여할 것, ▲대규모 동시 퇴거로 인한 단지 슬럼화·실거래가 급락을 막기 위해 분양세대 주민들도 연대해달라는 것이다.
이 사례는 시프트 제도의 구조적 딜레마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저렴한 임대료로 주거 안정을 제공하는 순간, 시세와의 격차가 벌어질수록 만기 시점의 충격은 오히려 더 커지는 역설적 구조이기 때문이다. 즉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정"을 제공할수록, 종료 시점의 "박탈감"은 필연적으로 증폭되는 셈이며, 이는 SH의 부채 문제 및 세대 간 형평성 논쟁과 맞물려 향후에도 꾸준히 반복될 정책적 시한폭탄으로 남아 있다.
SH공사의 부채, 이미 시한폭탄
이 논란의 핵심 변수는 SH공사의 재무 상황이다. SH의 부채는 지난해(2025년) 20조원을 돌파했고, 부채비율은 2024년 194.8%에서 2025년 205.8%로 뛰어 2016년 이후 처음으로 200%를 넘어섰다. SH 자체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부채비율은 올해 250%까지 오르고 2027년 267%, 2028년 258%, 2029년 267%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단기부채 상환 능력을 보여주는 유동비율은 2025년 말 257%에서 2027년 177%, 2028년 122%로 급격히 하락할 것으로 예측돼, 단기 유동성 위기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무엇보다 임대주택 사업 자체가 구조적 적자를 내는 사업이라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지난해 임대주택 사업 매출은 2148억원이었지만 원가는 6838억원으로 469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2020년 4316억원 적자를 넘어선 역대 최대 규모다. 다른 집계(전체 임대사업 기준)로는 지난해 임대사업 수익 2344억원, 원가 7165억원으로 4821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즉 시세보다 저렴한 수준의 임대료를 받는 시프트 및 국민임대 구조 자체가 SH의 곳간을 갉아먹는 '구조적 적자'라는 뜻이다.
"분양 전환이야말로 부채 청산의 골든타임"
이런 재무 압박을 고려하면, 이번 시프트 만기 대란을 오히려 SH의 부채 구조를 근본적으로 손질할 '전략적 창'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는다. SH는 이미 매출의 약 90%를 택지개발·분양사업에 의존하는 구조인데, 최근 문정·마곡·고덕강일·위례지구 등 대형 분양이 마무리되면서 2025년 3분기 누적 영업적자가 911억원에 달했다.
반대로 임대주택 부문은 계속 늘려야 하니, 매출은 줄고 적자 사업은 커지는 '가위 구조'에 갇혀 있는 셈이다. 이 상황에서 만기가 도래한 시프트 물량을 감정가 또는 시세 대비 일정 할인율을 적용한 '단계적 분양 전환' 방식으로 매각하면, SH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현금 유입원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재무 처방을 넘어, 20년째 적자를 내며 시민 세금으로 유지되던 임대주택 사업의 지속가능성 자체를 재설계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서울시는 공식적으로 기존 장기전세의 분양 전환을 검토하지 않고 있으며, 계약이 끝난 주택은 신혼부부용 '미리내집(장기전세주택Ⅱ)'으로 재공급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리내집 입주자는 출산 시 장기 거주와 우선 매수 혜택까지 받을 수 있어, 20년을 채우고도 아무 보상 없이 퇴거해야 하는 기존 입주민과의 형평성 문제가 정책의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된다.
미리내집은 신혼부부 대상 공급에서 700대 1에 달하는 경쟁률을 기록할 만큼 폭발적 수요를 보이고 있어, 청년층 우대 정책의 방향성 자체는 지지받고 있지만 기존 세입자에 대한 '탈출 사다리'가 없다는 점이 문제로 남는다.
세대 간 주거복지, 누가 먼저인가
여기서 철학적 질문이 발생한다. 청년·신혼부부 우선 정책이 옳다는 명분과, 20년간 생활 기반을 형성한 50대 이상·노년층 세입자의 '거주권'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20년은 자녀 양육, 은퇴 준비, 지역 커뮤니티 형성이 완결되는 한 세대(generation)의 시간 단위다. 이 시기를 저비용 임대주택에서 보낸 50~60대 세입자에게 '나가라'는 통보는 단순한 계약 만료가 아니라, 노후 설계 전체를 흔드는 구조적 충격에 가깝다.
반면 신혼부부·청년층은 생애 초기 자산 형성 기간이 짧고 회복 탄력성이 높아, 정책적으로는 고령층의 재정착 리스크를 우선 배려하는 것이 형평성 측면에서 더 정당하다는 논리도 성립한다. 실제로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을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가 20년 뒤 오히려 신규 무주택자의 진입 기회를 제한한다는 비판도 나오는 만큼, 이번 사태는 '선착순 복지의 함정'이라는 정책 설계의 근본적 딜레마를 드러낸다.
결국 이 논쟁은 단순한 부동산 갈등이 아니라, 저출생·고령화 시대에 한정된 공공주택 자원을 누구에게 먼저 배분할 것인가라는 세대 정의(intergenerational justice)의 문제로 확장된다.
부동산업계 전문가들은 "SH공사의 천문학적 부채와 세입자의 생존권, 그리고 다음 세대의 기회가 한 자리에서 충돌하는 지금이야말로, 서울시가 '20~30% 저렴 임대'라는 단선적 복지 모델을 넘어 분양 전환·입주기간 연장·재정착 지원을 결합한 다층적 출구 전략을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고 조언했다.
밀턴 프리드먼이 남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라는 말처럼, 시세의 20~30%에 불과한 보증금으로 20년을 살 수 있었던 혜택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그 대가는 SH공사의 연간 4000억원대 임대사업 적자와 20조원을 넘어선 부채로 고스란히 전가됐다.
문제는 그 비용을 누가, 언제 치르느냐인데, 이번 사태는 그 청산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저렴한 임대료라는 국가의 선의가 20년 뒤 세입자의 자산 형성 기회 박탈로 되돌아왔다는 점에서, "안전망이 사다리를 대신할 때 그 안전망은 감옥이 된다"는 표현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부동산정책 전문가는 "결국 국가가 제공하는 저비용 주거 복지는 단기적 안정을 보장할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수혜자를 시장 밖에 머물게 하여 정책 결정권자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구조적 함정을 내포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일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