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무료배송·무료반품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판매자에게도 후한 조건을 제시하며 시장을 장악한 뒤, 어느 순간 양쪽 모두를 쥐어짜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배신 공식이 전 세계적 화두로 떠올랐다. 그 현상을 명명한 신조어 ‘엔시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이 국내외 학계·규제 당국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되고 있다.
신조어의 탄생과 공인
엔시티피케이션은 캐나다 출신 SF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코리 닥터로가 2022년 처음 사용한 조어로, 배설물(똥)을 뜻하는 비속어 ‘shit’에 접두사 ‘en’과 접미사 ‘fication’을 붙여 만들었다. 온라인 플랫폼이 초기에는 사용자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점차 광고주·주주 수익 극대화에 치중하며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2023년 미국방언학회, 2024년 호주 매쿼리 사전의 ‘올해의 단어’로 잇달아 선정되며 학술적 공인을 받았고, 같은 해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저품질 콘텐츠로 뇌가 멍해지는 상태를 뜻하는 ‘브레인 롯’을 올해의 단어로 뽑은 것과 맥이 닿아 있다. 닥터로는 이 개념을 자신의 저서 ‘엔시티피케이션’(코리 닥터로 저, 박희원 옮김, 흐름출판)으로 확장했고, 이 책은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3단계 붕괴 공식
닥터로가 제시한 플랫폼 부패의 공식은 크게 3단계로 요약된다. ▲1단계는 사용자 고객에게 파격적 혜택을 퍼부어 락인(lock-in)을 만드는 시기, ▲2단계는 확보한 사용자 기반을 미끼로 사업자 고객을 플랫폼에 종속시키는 시기, ▲3단계는 양쪽 모두가 이탈하기 어려워진 시점에서 잉여가치를 최대한 뽑아내 주주·임원에게 돌리는 시기다.
대표 사례로 꼽히는 아마존은 상품을 원가 이하로 팔고 배송비·반품비까지 없애며 고객을 모았지만, 시장이 임계점을 넘어서자 판매자로부터 매출 1달러당 45~51센트에 이르는 수수료를 걷어가는 구조로 바뀌었다. 닥터로는 이를 두고 판매자들이 자사 제품 검색 결과 상단에 노출되기 위해 광고비를 지불하지 않으면 경쟁사 광고에 밀려 첫 페이지에서 사라지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페이스북은 네트워크 효과로 이용자가 친구 관계를 버리지 않는 한 떠날 수 없게 만든 뒤 광고 단가를 올렸고, P&G는 2018년 연간 2억달러의 프로그램 광고 예산을 삭감했음에도 매출에 변화가 없었다는 사례가 책에 소개돼 있다. 페이스북·네이버 이용자 이탈 현상을 광고와 가짜뉴스 노출 증가, 콘텐츠 질 저하를 주된 이탈 원인으로 지목했다.
한국형 엔시티피케이션, 배달앱 사태
한국에서는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의 ‘최혜 대우’ 요구 논란이 이 개념을 실증하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6월 18일 두 회사가 신청한 동의의결(자진시정) 절차 개시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두 회사는 총 3600억원 규모의 상생 지원안을 제시했지만, 공정위는 시정 방안이 기존 프로모션과 중복되거나 내용이 불분명해 경쟁 질서 회복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최혜대우 요구·자사 우대·부당 광고 등 3건의 혐의를 받는 배달의민족은 최대 5100억원, 쿠팡이츠는 최대 420억원의 과징금을 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정위는 위반 매출액의 최대 6% 부과율을 적용해 이 같은 추산치를 내놨으며, 연내 전원회의를 통해 최종 제재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왜 막지 못했나, 규제 공백과 로비
닥터로는 엔시티피케이션의 근본 원인을 규제 부재와 독점으로 지목한다. ‘소비자 가격이 낮다면 기업이 커져도 상관없다’는 소비자 후생 논리가 반독점 감시망을 무력화했고, 천문학적 로비와 지식재산권법을 활용한 진입장벽이 후발 경쟁자의 등장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 맞서 유럽연합은 디지털시장법(DMA) 등을 통해 빅테크의 자사우대·끼워팔기 관행을 정조준하고 있으며, 닥터로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이용자가 플랫폼을 옮기더라도 기존 인간관계와 데이터를 가져갈 수 있게 하는 ‘탈출할 권리’ 도입을 제안한다.
닥터로는 최근 인터뷰에서도 “아마존은 전성기를 훨씬 지났다”며 "이 같은 부패 순환이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테크 업계 전반의 구조적 병리"라고 지적했다. 미국 학계에서는 팀 우의 신간 ‘착취의 시대’와 함께 이 문제를 다루며, 플랫폼의 저품질화가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산업 전반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소비자가 알아야 할 엔시티피케이션의 조기 경고 신호 4가지
전문가들은 엔시티피케이션의 조기 경고 신호로 몇 가지 패턴을 제시한다.
▲가격순 정렬을 해도 실제 최저가 상품이 하단에 묻히는 현상 ▲무료였던 서비스(배송비, 반품비, 광고 없는 피드)가 단계적으로 유료화되는 흐름 ▲플랫폼 자체 브랜드나 추천 로고가 검색 결과 상단을 독식하는 구조 ▲이용자 데이터·관계망을 다른 서비스로 옮기지 못하게 막는 락인 설계를 꼽고 있다.
싸이월드부터 페이스북, 네이트온을 거쳐 최근 배민, 쿠팡이츠, 요기요 등 배달앱과 이커머스까지, 국내 플랫폼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쓰던 앱이 어느 순간 불편해졌다”는 경험이 공유되며 엔시티피케이션이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