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중앙 안데스산맥 해발 7,000m에 근접한 화산 정상에서 서식하는 안데스 잎귀 생쥐(Phyllotis vaccarum)의 생존 비밀이 대사·체온조절·독성 식물 해독 유전자까지 총동원된 ‘풀 패키지 적응’으로 규명됐다. 평균 기압의 절반 이하, 산소 농도 약 40~44%, 연중 영하권이 이어지는 ‘지상 최악의 환경’에서 포유류가 장기적으로 살아간다는 점에서, 초고산 생태계와 지구 생명 한계에 대한 기존 교과서가 사실상 업데이트를 요구받고 있다.
화성급 환경, 포유류가 깃발 꽂다
phys.org, siencenews.org, University of Nebraska–Lincoln에 따르면, 안데스산맥 고원과 화산 정상은 해발 6,000~6,700m 구간에서 산소 농도가 해수면의 약 40~44% 수준에 불과하고, 야간 기온은 영하 수십 도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된다. 이 지역은 대기 밀도·기압·건조도 측면에서 지구에서 화성 표면과 가장 유사한 장소 중 하나로 꼽혀, 그간 포유류의 상시 서식이 사실상 불가능한 영역으로 간주돼 왔다.
이번 사이언스(Science) 논문을 포함한 일련의 연구에 따르면, P. vaccarum은 해수면 인근부터 해발 6,700m 이상까지 이어지는, 포유류 가운데 ‘최대 고도 범위’ 기록을 보유한 종으로 확인됐다. 2020년 칠레–아르헨티나 국경 유야이야코(Llullaillaco) 화산 정상(해발 6,739m)에서 생포된 잎귀쥐 개체와, 6,000~6,233m 구간에서 발굴된 미라 개체군은 이들이 단순한 ‘등반객’이 아니라 장기 정착을 해온 초고산 거주자임을 시사한다.
‘단거리 스프린터’ 아닌 지방 태우는 ‘마라토너’ 근육
연구진은 고지대 안데스잎귀생쥐와 동일 종의 저지대 개체를 비교해, 혹한·저산소 환경에서의 생리적 차이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실험실에서 저온·저산소 조건을 재현한 결과, 고지대 개체는 저지대 개체보다 체열 생산량이 유의미하게 높았고 근육과 갈색지방 조직의 활성도 역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특히 몸을 떨며 열을 내는 데 중요한 종아리 비복근에서 지방·산소를 활용한 산화 대사 경로가 강하게 발달해, 같은 산소 농도에서도 더 많은 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대사량(BMR) 자체는 고·저지대 개체 간에서 큰 차이가 없었지만, 산소 운반 능력(헤모글로빈 특성)을 키우는 대신 근육 수준에서 산소 활용 효율을 극대화한 점이 기존 고산 포유류 모델과의 결정적 차이로 지목된다.
근육 조직의 형태학적 분석에서도 고지대 개체는 미토콘드리아 밀도가 매우 높아, 지구력 운동선수의 근육과 유사한 ‘마라톤형’ 체질로 변화해 있었다. 이는 단시간 폭발력을 내는 당질 의존형 스프린터가 아니라, 지방을 서서히 태우며 장시간 열을 생산하는 지구력 주자로의 방향 전환이라 할 수 있다.
혈액·호흡·체온까지 동시 조율되는 다층 적응
이번 연구는 고산 적응의 초점이었던 헤모글로빈의 특이 변이 대신, 다양한 시스템이 한꺼번에 ‘패키지 업그레이드’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우선 혈액 시스템은 고지대 개체의 적혈구와 혈액 세포는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저장하는 특성을 보여, 희박한 공기에서 필연적으로 증가하는 호흡 빈도에도 과호흡·알칼로시스 위험을 낮추는 완충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갈색지방을 포함한 열 생산 조직의 활성 증가로, 극저온 환경에서도 체온을 유지하는 능력이 향상됐다. 대사 전략측면에서도 연료 소비 패턴이 탄수화물 중심에서 지방 중심으로 이동해, 열 생성과 장기 생존에 유리한 에너지 효율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고지대와 저지대 개체군 사이의 유전자 흐름이 상당히 활발해 ‘집단 분리’가 뚜렷하지 않음에도, 고산 환경에 유리한 대사·해독 관련 유전자 변이가 자연선택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극한 환경에서의 적응이 단일 돌연변이의 고립된 축적이 아니라, 유전자 흐름 속에서도 선별적으로 유지되는 변이들의 조합이라는 진화 역학을 시사한다.
“먹을 게 없다”는 가설 뒤집은 독성 식물 해독 유전자
초고산 안데스 화산 정상은 눈과 바위가 대부분이고, 식물 분포 한계선은 정상보다 2,000m 이상 아래로 내려가는 것으로 보고돼 왔다. 그럼에도 위 내용 분석과 야외 조사 결과, 이들 생쥐의 주요 먹이는 지의류(lichen), 바람에 실려 온 씨앗·마른 풀잎, 곤충류 등으로 추정되며, 실제 위 DNA 예비 분석에서도 이끼·지의류 계통 유전자가 검출된 바 있다.
이번 사이언스 논문에서 고지대 개체는 저지대 개체에 비해 식물 독성 물질을 분해·해독하는 대사 유전자가 강화된 흔적을 보여, “무엇을 먹느냐”가 “어떻게 숨 쉬느냐” 못지않게 생존의 핵심 변수임이 드러났다. 특히 고산 식물과 지의류가 생산하는 독성 화합물에 대한 저항성·해독 능력이 높아, 다른 포유류에게는 ‘먹을 수 없는 자원’을 독점적으로 이용하는 생태적 틈새 전략으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고산 인간 집단에서 발견되는 저산소 적응 유전자(EGLN1, EPAS1 등)가 주로 산소 운반·조절에 초점을 맞춘 것과 대비되며, 동물 종마다 ‘살아남기 위해 건드린 스위치’가 다르다는 진화적 다양성을 부각시킨다.
지구 ‘생명 한계선’ 재설정…우주생물학·기후연구로 번지는 파장
안데스 잎귀쥐 미라와 생체 개체가 해발 6,000m 이상 지점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된 사실은, 포유류가 기존 통념보다 훨씬 높은 고도에서 장기간 서식해 왔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포유류가 물리적으로 견딜 수 있는 최고 고도 기록을 경신했다”며, 기존에 설정했던 ‘지구에서 포유류가 영구적으로 살 수 있는 한계선’을 위로 올려야 한다고 평가한다.
생리학·진화생물학을 넘어, 초고산 포유류 모델은 우주생물학, 인체 의학·스포츠 과학, 기후위기·산악 생태계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줬다.
이번 안데스잎귀생쥐 연구는, 고산 적응을 헤모글로빈·폐 용량 같은 단일 지표로 설명하던 기존 프레임에서 벗어나, 에너지 대사·체온조절·독성 해독·호흡 완충이 한꺼번에 조율되는 ‘시스템 진화’ 사례라는 점에서 진화생물학 교과서의 한 챕터를 새로 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