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한국 금융당국이 국내 자본시장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 온 자회사 중복 상장 관행에 칼을 들이대며 ‘원칙 금지·예외 허용’ 체제를 공식화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7월 6일 발표한 새 가이드라인을 통해, 상장 모회사가 자회사를 국내외 거래소에 별도 상장하는 행위를 대부분 차단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만 엄격한 심사를 거쳐 허용한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새 지침의 핵심은 모회사 이사회 책임 강화와 주주 동의 절차의 의무화다. 상장 모회사가 자회사 IPO를 추진할 경우 이사회는 ▲중복 상장이 일반 주주에게 미치는 영향 평가 ▲주주 보호 방안 마련 ▲주주와의 소통 및 동의 획득 ▲이사회 공식 결의 ▲단계별 결과 공시 등 다섯 가지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특히 자회사 상장으로 모회사 주가가 얼마나 하락할지에 대한 정량적 예측과 공시가 요구되면서, 그동안 ‘쪼개기 상장’으로 비판받았던 지배주주 중심의 가치 이전 구조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주주 동의 방식에는 이른바 ‘3% 룰’이 도입됐다. 상법상 감사위원 선임 때와 마찬가지로 개별 주주의 의결권 행사 비율은 3%로 제한되며, 안건 통과를 위해서는 출석 주식의 과반수 찬성과 함께 전체 의결권 4분의 1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물적분할로 설립된 자회사의 중복 상장은 주주 동의를 필수 요건으로 못 박았고, 인수·신설 자회사의 경우에도 주주 동의를 받으면 규정 준수로 간주되지만, 이를 얻지 못하면 한국거래소의 개별 심사를 거쳐야 한다.
당국은 중복 상장 심사에서 영업·경영 독립성과 투자자 보호, 상장 필요성, 주주 소통 노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하나라도 미충족하면 상장 승인을 막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규제 강도는 자회사 ‘덩치’에 따라 달라진다. 매출·영업이익·자산이 모두 모회사 대비 10% 미만인 저비중 자회사는 주주총회 동의를 면제받고 이사회 결의만으로 상장을 추진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웠다. 다만 예상 기업가치가 모회사 10%를 넘어서는 경우에는 특례가 배제되며, 물적분할 자회사에 대해서는 저비중이어도 주주 동의가 필수다.
금융위는 “상장의 이익이 소수 지배주주에게 집중되는 비대칭적 중복 상장과, 전체 주주에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중복 상장을 엄격히 구분해 심사하겠다”고 강조했다.
해외 상장 역시 우회로가 될 수 없다는 점이 이번 가이드라인의 또 다른 메시지다. 모회사 이사회에 부과된 주주 충실 의무는 나스닥 등 해외 거래소 상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상장 필요성과 가치 이전 여부를 국내 심사 기준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원칙이 명시됐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추진 중인 보스턴 다이내믹스 나스닥 IPO는 분할이 아닌 인수로 편입된 일반 자회사이기 때문에 가장 엄격한 물적분할 관련 동의 의무에서는 일부 자유롭지만, 지분을 보유한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등 네 개 상장사는 모두 이사회 5대 의무를 적용받는다. 한국거래소가 해외 상장에 직접 관할권을 갖지 않는 만큼 실질적인 심사는 금융감독원의 증권신고서 검토 과정에서 이뤄질 예정으로, 시장에서는 실제 집행 강도를 두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점치고 있다.
새 규제는 이미 국내 IPO 후보군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HD현대에서 물적분할된 HD현대로보틱스는 2020년 설립 이후 상장을 준비해 왔지만, 의무적 주주 동의 조항의 직격탄을 맞아 절차를 사실상 중단한 상태로 알려졌다. SK에코플랜트, CJ올리브영, 롯데바이오로직스 등도 중복 상장 규제 강화의 영향을 받는 주요 상장 지연 사례로 거론된다.
자회사 상장을 통한 기업가치 재평가와 투자 회수 전략에 기대를 걸어온 재무적 투자자(FI)와 벤처 생태계에서는 “자금조달과 엑시트 경로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당국은 “주주 보호와 시장 신뢰 회복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책 배경에는 한국 증시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중복 상장 비율이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한국의 중복 상장 비율(전체 시가총액 대비 상장사가 보유한 타 상장사 지분 시총 비율)은 11.2%로, 미국 0.05%, 일본 4.0%, 중국 2.4%, 대만 2.7% 등 주요국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당국은 이 격차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해 왔으며, 중복 상장 규제는 주주 충실 의무 도입과 함께 한국 자본시장 체질 개선을 겨냥한 핵심 처방으로 평가된다. 다만 성장 산업과 첨단 기술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를 과도하게 좁힐 경우, ‘주주 보호’라는 명분이 ‘성장판 잠금’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도 만만치 않아, 향후 예외 허용 기준을 둘러싼 정책·시장 간 줄다리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