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미국·이란 전쟁 직후 국내 기름값 폭등의 주된 원인이 국제유가가 아니라 정유사들의 조직적 담합이었다는 검찰 발표로, 한국 석유시장 구조와 공정거래 시스템 전반에 대한 논쟁이 거세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6일 HD현대오일뱅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 등 국내 4대 정유사 법인과 임직원 4명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일제히 기소했다고 밝혔다. HD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부서장은 구속기소됐고, 같은 회사 책임매니저와 법무실장, GS칼텍스 국내영업 부문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졌다. HD현대오일뱅크 법무실장에게는 공정거래위원회 현장조사 직전 타사 가격 정보를 취합한 내부 자료를 삭제한 혐의로 증거인멸까지 적용됐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정유 4사는 2021년 1월부터 2026년 6월까지 자영 주유소를 상대로 사실상 ‘전량구매 강제 계약’을 유지하며 공급 가격을 일방 통보하고, 타사 제품을 들여오는 주유소에는 거액 손해배상 청구 등 불이익을 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들 4개사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98.6%에 달하는 초과점유 구조에서, 전쟁과 같은 외부 충격을 빌미로 가격 결정력을 극대화했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 판례와 공정위 시정조치로 ‘거래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전량구매 계약’이 금지돼 있음에도, 정유사들이 이를 관행처럼 지속해 왔다는 점도 공소장에 적시됐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2월 28일 미국·이란 전쟁 발발 직후 나타난 이례적인 국내 석유제품 가격 폭등이 과연 필연적이었느냐는 질문이다. 검찰은 정유사들이 이미 상당량의 원유를 비축해둔 상태여서 단기적으로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급등 요인이 없었음에도, 모든 회사가 전례를 찾기 힘든 규모로 공급가를 동시에 올린 점에 주목했다.
특히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 가격 결정 부서 책임자가 SK에너지가 HD현대오일뱅크보다 리터당 30~40원 더 높은 수준으로 가격을 올리는 방식으로 인상 시기와 폭을 사전에 합의했고,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이를 추종하는 ‘의식적 병행행위’를 통해 시장 전체 가격 상승을 키운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가격 정보 교환의 구조도 의미심장하다. 검찰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는 이미 2024년 7월부터 석유제품 입금가 정보를 상호 공유하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입금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시장점유율을 고착화했다.
양사는 상대 회사 가격 정보를 취득할 담당자를 각각 지정해 운영했고, 이번에 구속된 HD현대오일뱅크 부서장은 과거 SK에너지 가격 정보 담당자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8월 HD현대오일뱅크로 이직한 인물로, 검찰은 그를 ‘가격 폭등 합의를 주도한 핵심 인물’로 규정했다.
검찰이 추산한 유가 담합 규모는 국내 담합 사건 역사에서 최대급이다.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직접 담합 규모만 약 14조2000억원에 달하며,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담합 가격을 사실상 추종하면서 전체 시장에 미친 경쟁제한 효과는 약 26조원에 이른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일부 내부 대화에서는 “역시 우리는 전쟁으로 먹고 사는 회사”, “올해 2조는 벌 듯하다”는 표현이 포착돼, 국제 분쟁을 ‘전쟁 특수’로 인식한 정유사 내부 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수사는 공정위 고발이 아닌 검찰의 직접 인지 수사로 시작됐다는 점에서도 이례적이다. 검찰은 3월 23일 정유 4사와 한국석유협회를 압수수색하며 본격 수사에 착수했고, 4월에는 관련자 소환과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으며, 지난 6월에는 HD현대오일뱅크 간부를 구속하며 수사 강도를 높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3월 국무회의에서 “최근 검찰이 담합 조사를 신속하게 대규모로 했더라. 결과도 아주 잘 나왔다. 법무부에서 수사팀 포상이라도 해라”라고 언급해, 청와대 역시 유가 교란 의혹을 ‘국가적 혼란을 틈탄 중대 범죄’로 규정하는 분위기를 드러냈다.
국내외 에너지·반독점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만성화된 가격 담합 관행과 고착화된 시장 구조가 국제 위기라는 촉매를 만나 폭발한 사례’로 평가한다는 분석이다. 다만 검찰이 “전쟁 직후의 가격 담합은 일시적 일탈이 아닌 만성화된 담합 관행이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규정한 만큼, 향후 재판 과정에서 국내 정유시장 구조, 공정위·검찰의 역할 분담, 그리고 에너지 안보와 시장 경쟁정책의 재설계까지 이어지는 후폭풍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