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인공지능을 활용해 세상을 떠난 가족의 모습과 목소리를 다시 접하려는 한국인들이 늘어나면서, 감동적인 사례와 함께 윤리학자·법학자·정신건강 전문가들의 날카로운 경고를 동시에 받는 신생 산업이 떠오르고 있다.
인공지능이 고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되살려주는 시대, 한국 스타트업들이 촉발한 ‘AI 추모 서비스’가 위안과 윤리 논쟁을 동시에 키우고 있는 셈이다. 상업적 시장 형성 속도가 입법·윤리 논의보다 빠르게 앞서가면서, 애도 방식의 혁신이 ‘감동 산업’이 될 것인지 ‘애도 비즈니스’로 끝날 것인지 기로에 섰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5분 영상에 60만원, 시장은 이미 열렸다
AP·SFGate 보도에 따르면 서울의 스타트업 ‘Vaice(대표 원정우)’는 사진과 짧은 음성 샘플만으로 고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재현한 3~5분짜리 영상을 제작해 월 약 300명의 고객을 상대하고 있으며, 건당 가격은 약 60만원(미화 약 390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 주요 고객층은 40~50대로, 대부분 부모 세대를 잃은 자녀들이 ‘마지막 인사’를 다시 듣고 싶다는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분석이다.
28세 직장인 이용자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교통사고로 숨진 할아버지의 AI 영상을 만들어 아버지에게 선물했고, 아버지가 끝내 눈물을 보였다는 사례는 이 서비스가 단순 호기심을 넘어 실제 애도의 도구로 소비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JL스탠다드, 딥브레인AI 등 국내 기업들 역시 ‘사진 한 장, 10초 음성으로 만드는 AI 휴먼’ 기술을 내세우며 일본·북미 등 해외 시장까지 겨냥하는 상황이라, 관련 산업이 틈새를 넘어 글로벌 니치마켓으로 확장되는 조짐도 포착된다.
‘한 번이면 족했다’…위안과 중독 사이의 얇은 경계
기술 연구자들조차 이 서비스의 정서적 파급력에 경계심을 드러낸다. KAIST AI 연구원 노용만 연구원은 자신 역시 부모의 1분짜리 AI 영상을 만들어 가족 모임에서 한 번 상영했지만, “한 번으로 충분했다”고 말하며 이 기술을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양날의 검”이라고 규정했다.
스타트업들은 “서비스 후 슬픔이 악화됐다는 고객 피드백은 아직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아직 표본과 관찰 기간이 짧다는 점에서 해석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실제 해외에서는 고인과의 ‘영상통화’를 내세운 미국 AI 앱이 출시 직후 수천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폭발적으로 확산됐지만, 이용자 중 일부가 상실감 악화와 현실 회피를 호소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건강한 애도 과정이란 고인의 부재를 인지하고 상실의 고통을 통과하는 수용 과정인데, AI가 이를 무한 반복 재생 가능 ‘디지털 추억’으로 바꿔놓을 경우 애도 단계가 지연되거나 특정 시점에 정서가 고착될 위험을 경고한다. 특히 채팅·음성 대화가 가능한 ‘그리프봇(griefbot)’이 상용화될 경우, 일부 이용자에게는 현실보다 AI 속 고인과의 가상 상호작용이 더 강한 심리적 보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법은 ‘망자 모욕’과 수익 앞에서 멈춰 섰다
한국에서는 이미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를 희화화하거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김주혁·고 이순재 등 고인의 얼굴을 합성한 영상이 유튜브·틱톡 등 플랫폼에 다수 유통되는 등 ‘고인 활용 콘텐츠’가 추모를 넘어 조롱과 상업적 활용 단계까지 확산된 상태다. 고인을 조롱하는 영상들은 조회수 기반 광고 수익까지 발생하지만, 현행 형법상 사자명예훼손죄는 ‘허위 사실’ 적시에만 적용돼 조롱·희화화 표현 상당수가 처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정부는 2022년 초상·이름 등 인격표지를 경제적 권리로 인정하는 이른바 ‘퍼블리시티권’ 민법 개정을 추진하며 사망 30년까지 상속·보호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풍자·패러디 위축과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로 입법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그 결과 AI 영상·아바타로 고인을 상업적으로 활용해도 유족이 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부정경쟁방지법상의 일반 조항을 ‘유추 적용’해 손해배상을 시도해보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데스봇’ 글로벌 논쟁
해외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에서는 팝스타 로드 스튜어트가 공연에서 마이클 잭슨 등 이미 사망한 뮤지션들을 AI 영상으로 ‘부활’시킨 헌정 무대를 연출해, 일부 팬들 사이에서 감동을 자아내는 한편 상업 공연에 고인을 무단 소환했다는 윤리 비판도 동시에 받았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이미 고인의 디지털 아바타와 영상통화를 하거나 홀로그램으로 재현해 장례식·추모 행사에 활용하는 서비스가 상용화됐고, 일부 앱은 서버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이용자가 몰리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입법·산업·애도의 새 규칙이 필요하다
서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정완 명예교수는 "생전에 AI 재현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경우 이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상업적 이용에는 별도의 동의·수익 배분 규칙을 마련하는 등 ‘고인의 존엄성 보호’를 위한 입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양대 정영주 교수 역시 "고인 관련 AI 콘텐츠를 초상권·퍼블리시티권·저작권 중 어떤 권리 틀에서 다룰지부터 재정의해야 한다"며, "기술 속도에 뒤처지지 않는 포괄적 법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애도 방식을 바꿀 기술을 무작정 금지할 수도, 시장 자율에만 맡길 수도 없는 만큼, 한국 사회가 지금 필요한 것은 “언제까지 가능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까지를 허용 가능한 애도의 기술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라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