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인간과 대형 유인원이 최소 1,500만년 전부터 같은 리듬으로 웃어왔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웃음이 언어 진화의 ‘원시 프로토타입’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들은 적어도 1,500만년 전부터 놀랍도록 유사한 방식으로 웃어왔으며, 이는 언어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BBC, nature, WBOC TV, zenodo, nypost, phys.org, Frontiers에 따르면, 영국 워릭대 연구진이 과학저널 ‘커뮤니케이션스 바이올로지(Communications Biology)’에 발표한 이번 논문은 인간과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의 웃음 패턴을 정량 분석한 뒤, 그 리듬 구조가 공통 조상 시기부터 거의 변하지 않은 채 이어져 왔다는 점을 수치로 보여준다.
140개 웃음 시퀀스, 5종류 피험자
연구진은 오랑우탄 4마리, 고릴라 2마리, 보노보 3마리, 침팬지 4마리, 그리고 생후 6개월에서 7세 사이 인간 아동 4명의 자발적인 웃음소리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놀이와 간지럽히기 상황에서 채집한 총 140개의 웃음 시퀀스를 추려, 각 시퀀스에서 연속된 발성(“하-하-하”) 사이의 시간 간격을 정밀 측정하는 방식으로 리듬을 비교했다.
분석 결과, 모든 종에서 웃음은 등시성(isochronous) 리듬, 즉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박자를 보였다. 이는 인간의 낄낄거림을 시간축 위에 올려놓고 보면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타이밍으로 “하”가 반복된다는 기존 관찰과 동일한 패턴이 침팬지·보노보·고릴라·오랑우탄에서도 재현된다는 뜻이다.
“공통 조상의 웃음 리듬이 1,500만년 버텼다”
워릭대 팀은 이 등시성 리듬이 마지막 공통 조상 시기부터 이미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한다. 인간과 오랑우탄 계통이 갈라진 시점이 약 1,200만~1,600만년 전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연구진은 “이 리듬 구조가 최소 1,500만년 동안 유지돼 왔다”고 추산했다. 뉴욕타임스와 AP통신 등 주요 외신도 “인간과 유인원이 진화 나무에서 갈라진 이후에도 놀랍도록 비슷한 방식으로 웃어 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논문 공동저자 치아라 데 그레고리오는 “우리는 다른 대형 유인원과 매우 비슷하다. 우리가 1,500만년 동안 비슷한 방식으로 웃어왔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웃음이 ‘인간만의 감정 표현’이 아니라, 인간과 대형 유인원이 공유하는 오래된 사회적 신호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인간의 웃음, 다르게 만든 것…속도, 변이, 맥락
리듬의 ‘형태’는 같지만, 인간의 웃음은 진화 과정에서 속도가 빨라지고 변이 폭이 커졌으며, 무엇보다 맥락에 따라 조절되는 능력이 크게 확장된 것으로 나타났다. 커뮤니케이션스 바이올로지 논문과 이를 인용한 Nature Asia에 따르면, 인간의 웃음 템포는 침팬지·보노보보다 빠르고, 고릴라·오랑우탄보다도 더 촘촘한 박을 가진다.
또한 연구진은 “오직 인간만이 상황에 따라 웃음을 언제, 어떻게 낼 것인지 정교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리듬 구조를 공유하면서도, 간지럼을 탈 때의 폭발적 웃음, 회의 자리에서의 형식적 웃음, 실수 후의 어색한 웃음처럼 서로 다른 ‘사회적 코드’를 얹어 쓰는 능력이 인간에서만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웃음, ‘언어 없는 언어’에서 언어의 전 단계로
연구를 주도한 아드리아노 라메이라는 “고전적 통념은 ‘최초의 인간이 이전 종과는 전혀 다른 발성 조절 능력을 갑자기 획득했다’는 것이지만, 웃음의 진화는 인간이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는 “발성 조절 능력은 1,500만년 동안 누적적으로 연마돼 왔고, 인간은 그 연장선 위에서 더 높은 수준의 플라스틱(plastic)한 통제를 확보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언어는 화석으로 남지 않지만 웃음은 모든 현존 대형 유인원에 공통된 발성이라는 점에서, 연구진은 웃음을 “언어 기원을 들여다보는 드문 창”으로 규정한다. 언어보다 먼저 진화한 웃음의 리듬과 타이밍을 비교하면, 호미닌 계통에서 발성 패턴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리고 어떤 점에서 인간의 음성 통제가 ‘질적 도약’을 이뤘는지를 간접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번 연구는 표본 수가 크지 않은 소규모 연구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웃음의 리듬’이라는 정량 지표를 통해 인간과 유인원을 하나의 호미닌 연속체로 재배치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 포인트를 제공한다. 앞으로 더 많은 개체와 다양한 문화권의 웃음 데이터를 포함한 후속 연구가 축적될 경우, “언어의 기원은 어디에서 시작됐는가”라는 고전적 질문에 대한 통계적·음향학적 답변도 한층 정교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