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세계 1위 PC 제조사 레노버가 “DRAM·NAND 가격은 위기 이전 수준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2030년 이후까지 고가격이 지속되는 ‘뉴 노멀’을 공식화했다. 여기에 마이크론이 2030년까지 가격 하한선을 깔아둔 1,000억달러 규모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메모리 반도체는 전통적인 ‘업·다운 사이클’ 대신 구조적으로 높은 가격대가 유지되는 자원 시장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레노버가 본 ‘새로운 기준선’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ISC 2026 고성능컴퓨팅 학회에서 레노버는 “D램과 낸드 플래시 가격이 과거 수준으로 되돌아가기 어려우며, 적어도 향후 5년 이상 이전 가격대로 내려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레노버 측은 2028년 이후 신규 팹이 가동되더라도 공급 증가분이 이미 AI 데이터센터와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에 선점돼, 시장이 형성하는 가격 기준선 자체가 과거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재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PC·모바일 업체들이 더 이상 ‘반도체 사이클 하강기’를 전제로 가격 전략을 짤 수 없는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마이크론의 1,000억달러 장기계약, 가격 하한선 고착화
메모리 공급사 측에서도 가격 하방을 봉쇄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미국 마이크론은 약 1,000억달러 규모의 전략적 고객 협약(SCA) 16건을 체결해 2030년까지 주요 고객사와의 공급 물량과 가격 구조를 고정했다.
톰스하드웨어 등 해외 IT 매체에 따르면 이 계약에는 구속력 있는 물량 약정과 가격 하한선이 포함돼, AI 수요가 둔화되더라도 일정 수준 이하로는 가격이 떨어지지 않도록 설계됐다. 골드만삭스와 주요 시장조사업체들은 이런 구조적 공급 부족이 최소 2027년까지 이어지고, 가격 안정 시점도 2028년 이후로 미뤄질 것이라고 본다.
숫자로 보는 ‘램마게돈’의 충격
실제 가격 지표는 이미 ‘람마게돈’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ITWorld와 카운터포인트 리서치, 트렌드포스 자료를 종합하면 2025년 4분기 이후 DDR5 32GB(16GB×2) 모듈 가격이 약 400% 급등했고, 2026년 1분기 RAM 가격은 전 분기 대비 80~90% 치솟았다.
노트북용 8GB DDR4 RAM은 지난해 말까지 35% 상승에 그쳤지만 2026년 들어 석 달 만에 91%가 추가로 뛰었고, NAND 플래시 가격도 약 100% 올라 SSD 원가가 두 배로 늘었다. 국내 시장에서도 삼성 DDR5-5600 16GB 기준 최저가가 2025년 가을 6만9000원대에서 2026년 1월 40만7000원까지 6배 가까이 급등해 ‘램테크’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PC·모바일 가격 인플레이션, 수요 파괴 가속
부품 가격 급등은 완제품 가격과 수요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가트너는 2026년 말까지 DRAM과 SSD 가격이 합산 기준 130% 급등할 경우 PC 평균 판매가격은 2025년 대비 17%, 스마트폰은 13% 상승할 수 있다고 추산한다.
이미 일부 글로벌 OEM의 고급형 노트북은 전년 대비 50만~70만원 오른 250만~300만원대에 출시되며, 시장에서는 ‘메모리발 칩플레이션’이라는 표현이 확산되고 있다. 옴디아는 메모리·스토리지 가격 급등과 부품 부족을 이유로 2026년 글로벌 PC 출하량이 전년 대비 약 12% 감소한 2억4,500만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며, 특히 75만달러 이하 보급형 PC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HBM 우선주의가 만든 구조적 공급 절벽
이번 공급난은 단순한 경기순환이 아니라 생산자들의 전략적 선택이 불러온 ‘웨이퍼 재배분’에 가깝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메모리 업체는 고수익을 보장하는 HBM과 엔터프라이즈 SSD에 라인을 우선 배정하면서, PC·스마트폰용 범용 DRAM과 NAND 생산은 후순위로 밀려났다.
HBM 생산에는 일반 DDR5보다 약 3배 많은 웨이퍼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오는데, 제한된 웨이퍼 자원이 AI 인프라로 빨려 들어가면서 범용 메모리 시장은 사실상 공급 절벽 상태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이런 구조가 유지되는 한, 신규 팹 증설이 본격 반영되는 2028년 전후까지는 ‘공급이 늘어도 가격은 높게 유지되는’ 비정형적 사이클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누가 버티고, 누가 탈락하나
결국 ‘메모리 쇼크’의 승자는 메모리 제조사, 패자는 세트·부품 업체라는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은 HBM3E 등 AI용 메모리 풀가동으로 사상 최대 실적과 주가 급등을 기록하는 반면, 퀄컴·닌텐도처럼 메모리 조달에 의존하는 세트 업체들은 원가 압박과 출하량 감소로 수익성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과 일부 매체는 “메모리 쇼크 시대 누가 버티고 누가 쓰러질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며, 가격 전가력이 약한 중저가 PC·모바일 업체와 부품·주변기기 업체들이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한다. 레노버와 마이크론의 발언은 이 같은 ‘셀러 마켓’이 최소 2030년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신호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