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엔비디아와 AMD의 ‘5촌 맞수’ 사례는 현재까지 글로벌 빅테크·반도체 업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확인된 “혈연 경쟁” 케이스로 평가된다.
다른 빅테크 CEO·창업자들 사이에서는 학교·직장·투자 네트워크는 촘촘하지만, 엔비디아–AMD처럼 “직접적인 친척 관계이면서 정면 경쟁사 CEO로 선 포지셔닝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엔비디아–AMD, ‘5촌 맞수’의 계보
미국 CNN과 대만 계보학자 진 우(Jean Wu)의 조사, 그리고 엔비디아 대변인 확인을 종합하면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리사 수 AMD CEO는 ‘외당숙–외사촌 손녀’에 해당하는 5촌 친척 관계로 공식 확인됐다. 대만 언론과 국내 주요 매체는 “리사 수의 외조부가 젠슨 황 모친의 큰 오빠”라는 설명으로 두 사람의 촌수를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두 사람은 모두 대만 태생으로, 젠슨 황은 1963년생, 리사 수는 1969년생이며 각각 9살·3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대만계 미국인 1.5세’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CNN 보도에 따르면 진 우는 공개 기록·신문 기사·과거 가족사진을 검증하고 양측 친인척 인터뷰까지 더해 계보를 추적했으며, 엔비디아 측도 “어머니 쪽 가족을 통해 먼 사촌 관계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대목은 두 사람이 어린 시절엔 사실상 교류가 없었다는 점이다. 젠슨 황은 미국 오리건, 리사 수는 뉴욕에서 자라며 물리·전기공학 중심의 커리어를 밟았고, 각각 스탠퍼드(황)와 MIT(수)에서 전기공학 박사 과정을 거쳐 GPU·고성능 컴퓨팅(HPC)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뒤 경쟁사 수장으로 만났다.
리사 수는 2020년 소비자기술협회(CTA) 행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우리는 먼 친척(we are distant relatives)”이라고만 언급했으나, 구체적 촌수가 언론·학자 레벨에서 계보학적으로 확인된 것은 2023년 CNN 보도가 사실상 첫 사례로 평가된다.
사촌 CEO가 만든 ‘AI 칩 1·2위’ 구도
엔비디아와 AMD는 현재 AI·GPU 시장에서 글로벌 1·2위 사업자로, 두 사촌 CEO는 AI 반도체 패권 경쟁의 정점에서 맞붙는 구도를 만들고 있다. 여러 리포트와 시장 추정치를 종합하면, 엔비디아는 데이터센터용 GPU(A100·H100·H200·B200 등)를 앞세워 AI 가속기 시장 점유율 70~80% 안팎으로 평가되며, AMD는 MI300 시리즈 등으로 10%대 중반 안팎을 추격하는 ‘넘버2’로 자리 잡은 것으로 업계에 인식돼 있다.
엔비디아는 GPU 아키텍처(CUDA 생태계 포함)와 AI용 HBM 메모리 수요 폭증에 힘입어, 2023~2025년 사이 시가총액이 애플·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3경(트릴리언달러) 클럽’ 논의에 오를 정도로 급등했다. AMD 역시 리사 수 취임 당시 3달러 수준이던 주가가 2020년대 들어 100달러를 크게 웃도는 수준까지 오른 대표적 턴어라운드 사례로 인용돼 왔다.
대만계 미국인 두 사촌이 사실상 “AI 반도체 세계 1·2위 경쟁사 CEO”로 맞붙고 있다는 점 때문에, 국내외 매체와 SNS에선 “AI 칩 시장은 가족경영(family-run) 중”, “사촌끼리 벌이는 AI 칩 집안싸움” 같은 프레이밍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대만계 네트워크와 글로벌 반도체 패권
두 사촌 CEO의 배경에는 ‘대만–실리콘밸리 네트워크’라는 구조적 요소가 놓여 있다. 반도체 지정학을 다룬 책 ‘Chip War(반도체 전쟁)’의 저자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는 CNN 인터뷰에서 “반도체 산업의 절대적 중심에 대만계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며 “대만만큼 가족, 교육,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연결된 곳이 없다”고 평가했다.
대만은 지난 50여 년간 TSMC를 중심으로 글로벌 파운드리·패키징 산업의 허브로 성장했고, 실리콘밸리와의 인적·기술 네트워크는 유학·이민·주재원·벤처 투자 등을 통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 내 아시아계, 특히 대만계 미국인들이 ‘조상의 나라’에 대해 매우 우호적 인식을 보이는 것도 이 같은 “정체성·네트워크” 결속을 보여주는 데이터로 해석된다.
한 예로, 대만 뉴스가 인용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만계 미국인의 95%가 ‘조상의 나라’ 대만에 대해 우호적이라고 응답해, 아시아계 미국인 집단 가운데 가장 높은 호감도를 기록했다.
이런 문화적·네트워크적 배경 위에, 대만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경력을 쌓은 두 사촌이 각각 GPU·CPU·AI 칩이라는 최첨단 분야에서 글로벌 1·2위 기업을 이끄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밀러 교수의 표현대로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가족·교육·비즈니스 관계 측면에서 이보다 더 긴밀하게 네트워크화된 곳은 없다”는 평가가 엔비디아–AMD ‘사촌 맞수’ 사례를 상징적으로 설명하는 셈이다.
가족 경쟁이 만든 상징성, 그리고 남는 질문들
엔비디아–AMD ‘사촌 맞수’ 구도는 몇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던진다. 첫째, 가족·혈연이 곧바로 카르텔·담합으로 이어진다는 통념과 달리, 두 회사는 AI GPU·데이터센터·게임 그래픽 카드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극도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미·EU의 빅테크 경쟁·반독점 조사 역시 “핏줄”이 아니라 시장지배력·플랫폼 파워를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다.
둘째, 가족 네트워크는 인재·문화·자본을 이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로 작동하면서도, 글로벌 시장에서는 오히려 ‘집안싸움’ 수준으로 경쟁을 가속할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SNS·커뮤니티에서 두 CEO 관계가 알려진 뒤 “어색한 가족 모임(awkward family reunion)” “AI 칩은 사실 가족경영” 같은 농담이 밈처럼 확산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투자자·소비자들이 AI 반도체 시장을 단순한 기술·재무 숫자만이 아니라, 서사와 인물 관계가 얽힌 ‘드라마’로 소비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결국, 엔비디아–AMD의 ‘사촌 CEO 경쟁’은 글로벌 반도체 패권과 AI 칩 전쟁이 얼마나 복잡한 인적·문화적·지정학적 네트워크 위에 서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이다. 피 한 방울 이어진 두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산업의 최정점에서 서로를 가장 날카로운 경쟁자로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강력한 스토리텔링이자, 빅테크 시대를 설명하는 강렬한 은유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