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국내 ETF 시장 1위 사업자인 삼성자산운용이 중소형 운용사의 흥행 상품을 사실상 ‘복붙’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며, 급팽창한 AI·반도체 ETF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금융당국이 이미 ‘유사 상장 자제’를 경고한 상황에서, 삼성 측이 신규 ETF를 내기보다 기존 상품의 이름과 기초지수를 갈아끼우는 방식으로 규제를 우회했다는 지적이 거세다.
‘KODEX AI반도체TOP2플러스’가 불런의 중심에 선 이유
삼성자산운용은 기존 ‘KODEX AI반도체’ ETF를 지난달 ‘KODEX AI반도체TOP2플러스’로 리뉴얼하며, 상품명과 콘셉트가 신한자산운용의 ‘SOL AI반도체TOP2 플러스’와 거의 동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신한의 상품은 3월 17일 상장 이후 두 달도 안 돼 개인 투자자 누적 순매수 1조원을 돌파하며, 같은 기간 출시된 국내 반도체 ETF 가운데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논란의 중심에 선 KODEX AI반도체TOP2플러스의 성과는 압도적이다. 삼성자산운용에 따르면 이 ETF는 2026년 연초 이후 수익률 201.6%를 기록했고, 지수 리뉴얼 이후 구간만 따로 보면 41%의 수익률을 올렸다. 순자산 역시 리뉴얼 전 약 2조2,000억원 수준에서 4조1,914억원으로 불어나 단기간에 4조원을 돌파했으며, 연초 이후 개인 누적 순매수는 6,248억원, 리뉴얼 이후 13영업일 동안에만 3,940억원이 유입됐다.
이름만 바꿨나, 규제만 비켜갔나
이번 사안이 단순 네이밍 유사성을 넘어 ‘규제 회피’ 프레임으로 번지는 이유는 금융감독원의 사전 경고 때문이다. 금감원은 이미 자산운용사들에게 인기 테마를 그대로 본뜬 ‘유사 상장’ 자제를 요구했지만, 삼성은 신규 ETF 상장이 아닌 기존 ETF의 명칭과 기초지수 변경이라는 형식을 택해 정식 사전심사의 강도를 피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업계 관계자들은 “신규 상장으로 가면 당국의 강한 모니터링과 제재 가능성이 커지자 ‘간판 바꾸기’ 방식으로 규제의 사각지대를 활용했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삼성자산운용은 “시장 트렌드 변화에 맞춰 독자적으로 상품을 기획한 결과, 우연히 유사해 보이게 된 것”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회사 측은 또 “거래소 심사 절차에 따른 속도 차이로 후발주자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상품명·구조·출시 타이밍이 겹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우연’이라는 해명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반복되는 ‘카피캣’ 패턴과 업계의 피로감
이번 논란은 일회성 에피소드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무게가 실린다. 앞서 KB자산운용이 올해 2월 퇴직연금 시장을 겨냥해 ‘RISE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을 내놓자, 삼성자산운용은 두 달 뒤인 4월 ‘KODEX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을 출시해 ‘미투 ETF’ 논란을 자초했다.
과거에도 한화자산운용의 ‘PLUS K방산’ 등 특정 테마 ETF가 흥행하면, 이름·구조만 살짝 비튼 유사 상품을 뒤이어 내놓는 관행이 반복돼 왔다는 비판이 투자은행·자산운용 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카피캣 ETF’ 문제는 삼성 한 곳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국내 ETF 1·2위 사업자인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중심으로 특정 콘셉트가 흥행하면 같은 지수·유사 지수를 추종하는 ‘붕어빵 상품’이 짧은 시차를 두고 쏟아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지수사업자들 역시 “한 운용사가 히트 상품을 내면, 다른 대형 운용사가 ‘우리도 같은 지수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반복되며, 사실상 ‘지수 복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ETF 카피캣 붐’과 투자자 보호의 역설
문제의 배경에는 폭발적으로 성장한 국내 ETF 시장이 있다. 국내 ETF 순자산은 이미 150조원을 넘어섰고, 상장 종목 수는 900개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해 투자자 선택 폭이 넓어지는 ‘풍요’와 동시에 좀비 ETF·카피캣 ETF가 난립하는 ‘혼탁’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한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는 출시 직후 일주일 만에 운용자산 7조2,000억원 이상을 끌어모으며, AI·반도체 테마에 올라탄 단기 레버리지 베팅이 얼마나 거세게 몰리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단기 유행에 편승한 상품의 집중 출시 등 과당경쟁에 대해 강도 높은 감독을 실시하겠다”고 경고하며, ETF 시장의 ‘양적 성장’이 투자자 보호와 시장 혁신을 잠식하고 있다는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실제로 이름만 다른 유사 상품이 늘어날수록 투자자 입장에서는 상품 비교가 어려워지고, 보수·추적오차·유동성 등 핵심 지표를 꼼꼼히 따지기보다 마케팅과 과거 수익률에 끌려 ‘묻지마 추종’에 나설 위험이 커진다.
성과 좋은 ‘복제 ETF’가 남기는 구조적 질문
KODEX AI반도체TOP2플러스는 연초 이후 200%가 넘는 수익률과 4조원이 넘는 순자산을 앞세워 투자자들의 ‘지갑’을 열었지만, 동일 테마·유사 이름의 상품을 뒤늦게 따라붙는 ‘카피캣 전략’이 시장 전체의 혁신·다양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성과가 좋으니 괜찮다”는 식의 논리가 결국 운용사들 간 창의적인 전략 경쟁을 막고, 장기적으로는 투자자에게 돌아갈 선택권과 정보 비대칭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금융당국이 ‘상품명·지수 변경’이라는 편법 논란에 어떻게 제도적으로 대응할지, 그리고 시장 1위 사업자인 삼성자산운용이 단기 흥행을 넘어 구조적 신뢰 회복을 위한 상품 철학·지배구조 개선 시그널을 내놓을 수 있을지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지금 눈 앞에 보이는 200% 수익률 이상의 질문 뒷편에 감춰진 이 ETF가 어떤 철학과 구조, 이해상충 관리 체계를 바탕으로 설계됐는지에 대한 해답을 살펴봐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