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물리학자가 극저온 원자로 이루어진 양자 '소우주'를 구축해, 외부 시계 없이도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고립된 시스템 내부에서 시간이 자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최초의 통제된 실험적 증거다.
극저온 원자 2만4000개로 만든 ‘소우주’
6월 12일(현지시간) phys.org, arXiv.org, Interesting Engineering, science, The Quantum Insider에 따르면, 영국 버밍엄대학교 물리학자 조반니 바론티니(Giovanni Barontini) 교수가 절대영도(−273.15도)에 근접한 초저온 원자 2만4000개로 구성된 양자 ‘소우주(mini‑universe)’를 구현해, 외부 시계 없이도 시간의 흐름을 계측하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실험은 시간이라는 물리량이 외부에 주어진 배경이 아니라, 고립된 양자 시스템 내부의 변화와 엔트로피(무질서도) 교환으로부터 스스로 ‘창발’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정량적으로 검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바론티니 교수팀은 약 2만4000개의 루비듐 원자를 절대영도보다 수십억분의 몇 도만큼 높은 온도까지 냉각해 보스–아인슈타인 응축(BEC)에 가까운 양자 구름을 만든 뒤, 서로 다른 주파수의 레이저 빔 두 개로 얇은 장벽을 형성해 이 구름을 ‘밝은(bright) 영역’과 ‘어두운(dark) 영역’으로 분리했다. 두 영역은 서로 원자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전체로서는 실험 시간 스케일에서 외부와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는 사실상 ‘밀폐된 우주’처럼 동작하도록 설계됐다.
밝은 영역의 원자 분포는 마치 우주론의 축소판처럼 주기적으로 팽창했다가 다시 수축하는데, 이는 빅뱅 후 팽창과 빅크런치 시나리오를 연상시키는 동역학으로 약 0.1초 주기의 반복 사이클을 보인다. 연구진은 이 소우주가 양자역학의 표준 방정식(시간 독립 해밀토니안 하의 슈뢰딩거 방정식)을 그대로 따른다는 점을 확인함으로써, 단순한 ‘비유’가 아닌 정량적 우주 유사 실험 플랫폼임을 입증했다.
퍼지는 정도가 곧 시간…‘엔트로피 시간’의 정의
이번 연구의 핵심은 이 시스템 안에서 ‘시간’을 정의하는 방식이다. 바론티니 팀은 외부 실험실 시계를 완전히 배제하고, 밝은 영역 내 원자 분포가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나타내는 엔트로피 지표의 변화를 내부 시계로 채택했다. 밝은 영역의 엔트로피가 증가하거나 감소하며 분포가 달라질 때, 시스템은 ‘엔트로피 시간(entropic time)’ 상에서 앞쪽으로 진화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반대로 분포가 변하지 않을 때는 시간 흐름이 정지한 것으로 정의된다.
실험 결과, 이 엔트로피 시간은 세 가지 점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인식하는 ‘실제 시간’과 유사한 성질을 보였다.
첫째, 엔트로피 시간은 항상 한 방향으로만 흐르며 명확한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을 형성했다. 둘째, 소우주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비(非)단조로운 진화 속에서도, 엔트로피 시간 축 위에서는 사건들이 과거에서 미래 순서대로 정확히 정렬됐다. 셋째, 밝은·어두운 영역 사이의 엔트로피 교환 속도에 따라 시간의 ‘속도’가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효과가 관측됐으며, 레이저 장벽을 충분히 높여 입자 교환을 거의 차단하자 사실상 엔트로피 시간이 멈춰버리는 열적 죽음(heat death) 상태에 도달하는 모습도 확인됐다.
‘외부 시계 없는 시간’…양자 중력 난제에 실험실 해답 제시
이번 논문은 미국물리학회(APS) 저널 《Physical Review Research》 2026년 2호에 ‘Testing the problem of time with cold atoms(냉각 원자를 이용한 시간 문제의 실험적 검증)’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됐으며, 온라인 판 기준 6쪽 분량의 레터 형식으로 소개됐다. 이 연구는 양자 우주론에서 위일러–드위트(Wheeler–DeWitt) 방정식으로 기술되는 ‘장난감 우주(toy universe)’ 모델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미니수퍼스페이스(minisuperspace) 모형을, 냉각 원자 실험으로 그대로 옮겨온 것이 특징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양자 중력 분야에서는 오래전부터 “우주 전체가 고립된 양자계라면, 외부 시계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시간’을 정의할 것인가”라는 ‘시간의 문제(problem of time)’가 큰 난제로 제기돼 왔다. 바론티니 팀은 이 난제를 실제 실험실 스케일의 초저온 원자 시스템으로 축소 구현해, 내부 자유도만을 이용해 사건의 순서를 재구성하고 동역학을 기술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정량 검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는 이번 결과를 두고 “극저온 원자로 만든 장난감 우주가 시간이 기본적으로 주어진 존재가 아니라, 양자 상호작용의 결과로 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양자 우주론–실험 물리학 잇는 ‘테스트베드’ 잠재력
냉각 원자 기반 우주 유사 실험은 이미 진공 붕괴(vacuum decay)나 우주 팽창을 모사하는 플랫폼으로 주목받아 왔으나, 이번 사례처럼 시간 그 자체의 정의를 실험적으로 겨냥한 것은 이례적이다. 바론티니 팀은 엔트로피 시간을 변수로 한 효과적인 슈뢰딩거 방정식을 재구성함으로써, 전통적인 시간 변수 대신 내부 시계를 사용해도 양자역학이 수학적으로 모순 없이 기술될 수 있음을 보였다고 강조한다. 이는 ‘시간이 배경이 아니라, 관계(relations)와 변화로부터 정의될 수 있다’는 관계적 시간(relational time) 연구 흐름에 실험적 신뢰성을 부여하는 결과로 해석된다.
향후 이 플랫폼은 양자 중력 이론의 다양한 시나리오, 예컨대 초기 우주의 엔트로피 조건, 얽힘(entanglement)과 시간 화살의 연관성, 열적 죽음 이후 시간 개념의 붕괴 등 을 실제 실험 매개변수(원자 수, 장벽 높이, 상호작용 강도 등)로 치환해 검증하는 ‘양자 우주론 테스트베드’로 활용될 전망이다. 일
상적 시간관으로 보면 ‘0.1초짜리 모형 우주’에 불과하지만, 이 작은 유리 챔버 안 소우주가 향후 수십 년간 시간과 현실의 본질을 둘러싼 이론 물리학 논쟁의 기준점이 될 가능성은 결코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