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연구 중 이루어진 우연한 관찰이 인간의 움직임에 관한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졌다.
u-tokyo.ac.jp, theguardian, science.howstuffworks에 따르면, 인간은 특별한 지시가 없을 때 자연스럽게 반시계 방향(왼쪽)으로 이동·회전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진행된 보행 실험에서 나왔다. 문화권, 성별, 주 사용 손과 무관하게 관찰된 이 편향은 아직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생체역학과 신경과학, 도시계획 전반에 파장을 예고한다.
팬데믹이 포착한 ‘반시계 보행’ 패턴
스페인 나바라대학교 연구진은 원래 ‘보행자가 밀집 환경에서 어떻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는가’를 관찰하기 위해 실험 참가자들을 밀폐된 공간에 둔 뒤 이동 경로를 고해상도 카메라로 추적·분석했다. 연구는 과밀 상황에서의 충돌 회피, 간격 유지 등을 정량화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데이터 재검토 과정에서 전혀 다른 패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연구팀이 33차례 실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32차례에서 참가자들은 군집 이동 과정에서 전체적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이동하는 경향을 보였다. 실험 설계상 참가자에게는 어느 방향으로 돌라는 지시를 전혀 주지 않았고, 장애물·출입구 배치도 방향 편향을 만들지 않도록 통제한 상태였다. 연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으며, 보행 방향 선택에 ‘집단적 비대칭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통계적으로 제시했다.
문화·성별·손잡이…다 빼봐도 남는 건 ‘왼쪽’
연구팀이 가장 먼저 의심한 변수는 문화권과 교통 관습이었다. 우측통행이 일반적인 국가와 좌측통행에 익숙한 국가에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가설 때문이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연구에는 스페인(우측통행)과 일본(좌측통행) 참가자들이 모두 포함됐고, 두 나라에서 실험 환경과 분석 프로토콜을 맞춰 반복 실험을 진행했다.
그러나 결과는 문화적 차이를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스페인과 일본 참가자 모두, 혼자 걷든, 소집단·대집단으로 걷든 반시계 방향 편향이 통계적으로 일관되게 나타났다. 성별과 주 사용 손(오른손잡이·왼손잡이) 역시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는 그동안 스포츠 과학에서 제기돼 온 ‘오른손잡이 다수설’(전 세계 인구의 약 90%가 오른손잡이라 곡선 주로에서 반시계 방향이 더 유리하다는 주장)을 부분적으로는 뒷받침하면서도, 그보다 더 근본적인 생체·신경학적 요인이 작동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나이만이 보여준 미세한 균열
흥미로운 예외는 ‘나이’였다. 연구진에 따르면 어린이 집단에서는 반시계 방향 편향이 더 강하게 나타났고, 연령이 높아질수록 그 강도가 완만하게 줄어드는 경향이 관찰됐다. 이는 국내 연령대별 보행 분석 연구에서 보고된 “성장에 따른 보행 효율성·안정성 증대, 노화에 따른 균형 능력 및 하지 근력 감소”와 같은 생리·역학적 변화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쉽게 말해, 성장기 아동은 아직 신체 균형과 보행 패턴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아 더 강한 방향 편향을 보이고, 성인기에 이르면서 양측 균형과 보행 전략이 정교해져 편향이 일부 상쇄될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다만 연구진은 연령과 편향 강도의 상관관계에 대해 “추가 정밀 실험이 필요한 초기 관찰 결과”라며, 인과 관계로 단정 짓기는 이르다고 선을 긋는다.
‘눈’도, ‘지구’도 아니었다…기각된 가설들
연구팀은 시각 정보의 비대칭이 원인일 수 있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참가자들의 왼쪽 혹은 오른쪽 눈을 패치로 가리고 동일한 실험을 반복했다. 만약 특정 눈에 의존하는 정도가 공간 인지에 차이를 일으켜 방향 편향으로 이어진다면, 패치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좌·우안 가림 여부와 무관하게 반시계 편향이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 자전에 따른 코리올리 힘이나 지구 자기장이 인간 보행 방향에 영향을 준다는 오래된 ‘본능설’ 역시 이번 연구 범위 안에서는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연구진은 지구물리학적 효과가 사람 보행 수준에서 측정 가능한 방향 편향을 만들었다면 지역·위도 간 차이 등 추가 패턴이 관찰돼야 하는데, 현재까지 수집된 데이터에서는 그런 증거가 없다고 평가했다.
좌우 비대칭인 몸, 미세하게 한쪽을 ‘선호’하다
나바라대학교 이냐키 에체베리아 우아르테 박사는 이번 결과를 두고 “인간은 구조적으로 완전한 좌우대칭이 아니며, 뇌가 감각 정보를 처리하고 운동 시스템과 연동하는 방식 역시 미세한 비대칭을 가진다”며 “이 미세한 비대칭이 집단 수준에서 통계적으로 드러난 것이 반시계 방향 편향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뇌의 우·좌반구 기능 차이, 심장의 좌측 편재, 근육 발달의 비대칭성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문제로, 단일 요인으로 설명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스포츠 과학과 뇌과학 분야에서는 우뇌가 공간지각에 상대적으로 뛰어나고, 우뇌가 신체 왼쪽을 주로 지배한다는 점을 근거로 “왼쪽으로 도는 것이 더 안정적이고 빠르다”는 가설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다만 이번 연구는 보행이라는 일상 동작에서도 비슷한 방향성이 관찰됐다는 점에서, 이러한 가설에 새로운 데이터 포인트를 제공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육상 트랙·군중 동선 설계, ‘반시계의 과학’으로 재해석
이번 연구는 “왜 육상 트랙은 거의 예외 없이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도 하나의 과학적 단서를 보탠다. 국제육상연맹은 1912년 총회에서 트랙 주행 방향을 반시계로 통일했는데, 당시에는 과학적 근거라기보다는 관행과 경기 운영 효율이 더 큰 이유로 작용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후 다양한 이론이 제시됐지만, 인간에게 선천적인 반시계 편향이 존재한다면, 장기적으로 해당 방향이 ‘더 편한 방향’으로 제도화됐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도시·건축·군중 관리 측면에서 함의 역시 적지 않다. 정부·지자체는 그간 보행 동선을 안전과 교통 효율 관점에서 좌측보행·우측보행으로 통일해 왔다. 한국 역시 2009년 이후 지하철역·공항 등 공공시설 1,100여 개소에서 보행 동선을 좌측에서 우측으로 전환하고, 이를 통해 교통사고를 약 20%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에 ‘인간의 자연 편향은 반시계(왼쪽) 방향’이라는 생체 데이터가 더해질 경우, 향후 공공시설 동선 설계·비상 대피로 구축·군중 분산 전략 등에서 “안전·효율·본능”을 동시에 고려하는 새로운 설계 기준을 만들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남은 과제…집단이 아닌 ‘개인’의 메커니즘
연구진은 이번 결과를 “현상 수준의 규명”으로 규정하며, 다음 단계로 개별 보행자의 근전도, 관절 각도, 동작 궤적을 정밀 측정하는 실험을 예고했다. 이미 국내외에서 연령대별 보행 주기, 보폭, 관절 운동 범위 등을 계측한 연구는 축적돼 있지만, 방향 선택 편향까지 포함한 ‘3차원 보행 모델’은 아직 초기 단계다.
결국 관건은 “어떤 신경·근육·골격 요인의 조합이 미세한 반시계 편향을 만들어 내는가”, “개인의 편향이 집단에서 어떻게 평균화·증폭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팬데믹이 우연히 포착한 이 작은 ‘왼쪽 쏠림’이, 인간 몸과 도시, 스포츠 규칙까지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로 확장될지, 후속 데이터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