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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건축

[지구칼럼] “세계 최저속 포유류” 나무늘보, 3000만년간 간직한 유전자에서 '느린 대사'의 해답 찾았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과학자들이 두발가락 나무늘보의 유전체를 세계 최초로 해독·분석해, 약 3000만년에 걸쳐 보존되어 온 나무늘보 특이적 '전이인자(점핑 유전자)'를 발견했다. 이 유전자들은 “세계 최저속 포유류”라는 나무늘보의 놀라울 정도로 느린 대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Phys.org, PubMed, Molecular Ecology, peerj, snexplores, scientificamerican, iflscience, seqanswers에 따르면, 이번 연구 결과는 6월 9일 BMC Biology에 게재됐으며, 나무늘보 세포주가 인간의 대사 관련 질환 및 노화 연구를 위한 모델로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3000만년간 유지된 ‘점핑 유전자’, 게놈 구조를 다시 짜다


이번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아마존에 서식하는 두발가락나무늘보(Choloepus didactylus)와 개미핥기, 아르마딜로 등 ‘빈치류(Xenarthra)’ 포유류의 고해상도 유전체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두발가락 나무늘보와 남부 개미핥기(Tamandua tetradactyla)의 유전체에는 포유류 중 가장 많은 수준의 ‘레트로카피(retrocopy)’가 존재하며, 특히 나무늘보는 최근에 삽입된 LINE1 계열 전이인자와 수천 개의 젊은 레트로카피를 동시에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나무늘보 계통에서 공통조상 가지(브랜치)에서 약 3000만년 전 레트로전좌(retrotransposition)의 ‘폭발’이 일어나 수천 개의 레트로카피가 한꺼번에 생성됐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연선택을 거쳐 기능성 유전자로 ‘도메스티케이션(domestication)’된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두발가락 나무늘보에서는 레트로카피의 49%가 5개 조직에서 발현되는 반면, 비교 대상으로 사용된 아홉띠아르마딜로(Dasypus novemcinctus)는 3개 조직에서 27%만 발현돼, 동일한 메커니즘이 나무늘보에서 훨씬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토콘드리아·대사 유전자 겨냥한 유전적 ‘재배선 공사’

 

핵심은 어떤 유전자가 복제·재활용됐느냐다. 연구진은 두발가락 나무늘보에서 강한 선택 신호를 보이는 ‘도메스티케이션 레트로카피’ 38개를 추려냈고, 이들 상당수가 미토콘드리아 기능, 산화적 인산화, 지질·탄수화물 대사 등 에너지 생산 경로와 직접 연결돼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단순히 게놈에 쓰레기 DNA가 많이 쌓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극단적으로 낮추는 방향으로 세포 내 회로를 다시 설계한 결과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IFLScience가 인용한 연구진 설명대로, 나무늘보 게놈에서 새로 자리 잡은 점핑 유전자 상당수는 세포 내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를 조율하는 기능을 하며, 세포가 에너지를 어떻게 만들고 처리할지 미세조정함으로써 나무늘보 특유의 ‘게으른 생존 전략’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세계 최저속 대사”를 숫자로 보면 얼마나 느린가


나무늘보의 대사율이 얼마나 극단적인지 기존 생리 연구는 이미 수치로 보여준 바 있다.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팀이 10마리의 세발가락나무늘보와 12마리의 두발가락나무늘보를 대상으로 야외 대사율(field metabolic rate)을 측정한 결과, 세발가락나무늘보의 대사율은 체중 1kg당 하루 162킬로줄(kJ)로, 포유류 중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같은 조건에서 두발가락나무늘보는 234kJ/kg/일, 유칼립투스 잎만 먹는 코알라는 410kJ/kg/일, 대형 초식동물인 자이언트 판다는 185kJ/kg/일 수준으로 보고됐다.

 

 

즉, 세발가락나무늘보는 코알라보다 약 60% 적은 에너지로 하루를 버티며, 두발가락나무늘보보다도 약 30% 낮은 대사율을 보인다. 야외에서 측정한 이 값은 동물원이 아닌 자연 서식지에서 실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총 에너지 소비량을 반영하기 때문에, 나무늘보가 “지구상에서 가장 느린 포유류”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숫자로 입증한다.

 

인간 질환·노화 연구에 열리는 ‘저에너지 생명체’ 모델


이번 BMC Biology 논문과 해외 매체들은, 나무늘보 유전체가 인간의 대사 이상과 노화 연구에 새로운 모델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번에 규명된 레트로카피 가운데 상당수는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와 연관된 인간 질환 경로와 상동성을 가지고 있어, 당뇨병, 근육 위축, 신경퇴행, 노화 관련 질환 등 저에너지 상태와 연관된 병리 메커니즘을 ‘자연 실험실’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실제로 2025년 발표된 또 다른 전사체 연구에서는 두발가락 나무늘보와 인간의 말초혈 단핵세포(PBMC)를 비교했을 때, 대사 조절, 체온 조절, 세포 주기, 텔로미어 유지, 서카디언 리듬, 암 예방 관련 유전자 발현 양상이 전반적으로 다르게 나타났다는 보고도 있다.

 

연구진은 나무늘보 세포주를 확보해 단일세포 시퀀싱과 기능 실험을 진행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느슨한 미토콘드리아”를 보완하는 유전적 백업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체적인 경로 지도를 그리는 것이 향후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조직 보존·중환자의학·우주여행까지, 느림의 생리학이 여는 원격 산업


나무늘보의 초저속 대사와 불완전한 체온 조절 능력은 기후변화 취약성 연구에서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2024년 PeerJ에 실린 연구는 고지대와 저지대 나무늘보가 온도 상승에 서로 다른 대사 반응을 보이며, 특히 고지대 개체군이 2100년까지 예상되는 기온 상승 시 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런 취약성은 동시에, 극저온·저대사 상태를 인위적으로 유도해 조직을 보존하거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해야 하는 중환자 치료, 장기 우주 비행 같은 분야에 나무늘보 생리학을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결국 두발가락 나무늘보 유전체 분석은 “게으름의 과학”이 아니라, 에너지 효율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생명 설계의 또 다른 해답을 보여준다. 진화가 3000만년 동안 다듬어온 점핑 유전자 네트워크를 정밀 해독하는 작업은, 인간이 직면한 대사질환·노화·극한환경 생존이라는 난제를 풀기 위한 하나의 새로운 레퍼런스 데이터셋이자, 데이터 저널리즘 차원에서도 앞으로 꾸준히 추적할 가치가 있는 생명과학 이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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