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바클레이스가 “로봇의 10년”을 선언해온 자사 리서치 기조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며,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는 “최소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냉정한 진단을 내놨다. 범용 자율 로봇의 ‘GPT 모멘트’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고, 현재의 투자 열기는 기술·인프라 성숙 속도에 비해 과도하다는 게 핵심 메시지다.
보스턴에서 날아온 ‘현실 점검’
5월 27~28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로보틱스 서밋 & 엑스포’를 취재한 바클레이스 애널리스트 윌리엄 톰슨은 리서치 노트에서 휴머노이드 상용화를 가로막는 네 가지 구조적 장벽을 제시했다. 첫째는 각국 규제기관의 안전 인증 기준으로,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는 휴머노이드가 산업용 로봇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기능 안전과 책임체계를 요구받는다는 점이다.
둘째는 감속기·모터·고성능 센서 등 핵심 부품의 공급망 병목으로, 현재 글로벌 휴머노이드용 핵심 부품 국산화율이 50% 수준에 그친다는 국내 분석과도 맞물린다. 셋째는 실제 공장·물류 현장에서 축적된 고품질 훈련 데이터가 부족해, 시연 영상과 달리 비정형 환경에서의 신뢰도와 반복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넷째는 생성형 AI,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서비스와의 ‘연산 자원 경쟁’이다. 톰슨은 한정된 GPU·AI 가속기가 소프트웨어·클라우드 쪽으로 우선 배분되면서, 물리적 AI를 뒷받침할 연산 인프라 투자가 상대적으로 더디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많은 휴머노이드 업체들이 여전히 파일럿 단계에 머물러 있고, 상용 대량 배치에 필요한 MTBF(평균 고장 간격)와 가동률 데이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 10배 이상 커진다”는 바클레이스의 장기 시나리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보스턴 리포트’는 바클레이스가 지난 1월부터 던져온 초강세 시나리오의 연장선에 있다. 바클레이 리서치는 “AI Gets Physical” 보고서에서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이 현재 약 20억~30억달러에서 2035년 2,000억달러까지 10배 이상 커질 수 있다고 추정한 바 있다. CNBC 역시 바클레이스 및 월스트리트 주요 하우스를 인용해, 향후 10년 내 휴머노이드 시장이 수천억~수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단가 하락 속도는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다. 바클레이스와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IB에 따르면 초기 연구용 휴머노이드는 대당 300만달러 수준이었지만 최근 고급형 상용 모델 가격은 20만달러 안팎까지 내려왔다. 모건스탠리는 첨단형 기준 가격이 2028년 15만달러, 2050년 5만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여기에 골드만삭스와 딜로이트는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이 2035년 380억달러(약 51조~56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는 등, 장기 성장성에서는 주요 기관들이 대체로 합류한 상태다.
바클레이스 테마형 FICC 리서치 디렉터 조르니차 토도로바는 CNBC 인터뷰에서 “지금이 바로 로봇의 10년”이라며 “현재 시장은 20억~30억달러에 불과하지만 2035년에는 2,000억달러로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톰슨의 노트는 이 같은 장기 초강세 전망을 유지하되, 주가와 밸류에이션에 반영된 ‘조기 상용화 기대’를 10년 이상 뒤로 밀어 놓는 역할을 한다.
단기 비즈니스는 ‘창고·공장·용접’에 갇힌다
바클레이스는 단기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의 상용 기회가 통제된 환경의 단순 반복 작업에 국한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대표적인 현장이 물류창고 피킹·패킹, 자동차·전자 공장 조립 라인, 용접·도장 작업 등으로, 이미 산업용 로봇이 깔려 있는 영역의 ‘대체·보완재’ 포지션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IT 시장조사기관 가트너 역시 2028년까지 제조·공급망 현장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실제 생산 공정에 투입하는 기업이 전 세계 20개 미만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개념증명(POC)을 넘어서는 기업도 100개 미만으로 제한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가트너는 비용, 통합 복잡성, 에너지 제약 등을 이유로, 실제 현장에서는 ‘인간형’보다는 목적 적합성이 높은 다기능 로봇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골드만삭스, 딜로이트, 가트너, 바클레이스 등 주요 글로벌 리서치 하우스의 공통 분모는 “초기 상용화는 가능하지만, 광범위한 대규모 배치는 2030년대 중·후반 이후”라는 쪽에 가깝다.
투자 열기와 현실 괴리…“밸류에이션 조정 불가피”
시장에서는 이미 ‘다음 AI 모멘텀’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이 소비되고 있다. CNBC는 6월 초 다수의 월스트리트 증권사가 AI·반도체 다음 투자 테마로 휴머노이드를 지목했으며, 바클레이스는 ‘향후 10년 내 2,000억달러 시장’이라는 헤드라인 수치를 제시했다. 국내에서도 골드만삭스, 골든브리지, 주간조선 등 다양한 매체가 “10년 뒤 25배 성장”, “10년 뒤 8경 시장” 같은 자극적인 프레이즈로 휴머노이드 테마를 소화하고 있다.
그러나 공급망 병목과 기술 미성숙, 안전 규제 리스크를 감안하면, 상장 로봇·부품 기업 밸류에이션에는 상당한 선반영이 이뤄졌다는 것이 바클레이스와 가트너의 공통된 경고다. 실제로 가트너는 “기술적 성숙도 부족으로 시범 단계 정체 가능성이 크다”고 못 박으며, 휴머노이드 도입 및 유지보수 비용이 전용 로봇보다 수배 높지만 생산성은 오히려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투자자 입장에선 수년간 ‘매출보다는 파일럿 레퍼런스’ 위주의 뉴스 흐름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현대차·보스턴다이내믹스가 보여주는 ‘인재 전쟁’
인재 확보 전쟁은 또 다른 현실 변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26년 1월 테슬라 출신 AI·로보틱스·자율주행 전문가 밀란 코박(Milan Kovac)을 그룹 자문역으로 영입하고, 보스턴다이내믹스 사외이사로 선임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차는 코박이 제조·물류·서비스 등 그룹 산업 기반 전반에서 AI·로보틱스 기술 적용 가능성을 모색하며, 스팟(Spot)·스트레치(Stretch)·아틀라스(Atlas) 등 로봇 제품군의 중장기 전략과 상용화를 가속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대규모 자본과 기존 로봇 자산을 보유한 현대차·보스턴다이내믹스조차 아직 ‘기술 잠재력 실현을 위한 인재 조립 단계’에 있음을 방증한다. 바클레이스가 지적한 것처럼, 휴머노이드 상용화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AI·안전 인증·사업 모델을 모두 엮어내는 초복합 과제이기 때문에, 개별 스타트업의 기술 데모만으로는 대규모 상용 배치 시점을 앞당기기 어렵다.
바클레이스의 이번 메시지는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로봇이 실물경제를 뒤흔들 장기 성장 스토리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휴머노이드가 곧 GPT처럼 폭발적으로 대중화된다’는 서사는 최소 10년 이상 앞서 나가 있다는 것이다. 안전·공급망·인력·규제라는 네 개의 현실 변수를 숫자로 점검하는 차가운 밸류에이션 테이블이라는 점을, 보스턴발 바클레이스 리포트는 조용히 상기시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