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이 일론 머스크의 공개적 러브콜을 탄력 삼아 다시 한 번 ‘AI·반도체 대장주’ 위상을 확인했다. 머스크가 X(옛 트위터)에서 ASML을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기업”이라고 치켜세우고, 본인의 초대형 반도체 프로젝트 ‘테라팹(Terafab)’을 ASML 사내 기술 콘퍼런스에서 직접 소개하겠다고 밝히자, ASML 주가는 하루 만에 5% 이상 급등했다.
머스크 한마디에 5.6% 급등…시총 6,740억달러 재조명
Benzinga, Bloomberg, journalrecord, ECIKS.org, Morningstar에 따르면 머스크는 6월 초 X에 “ASML은 소중히 여기고 지원받아야 할 기업이며,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이 발언은 그가 ASML CEO 크리스토프 푸케(Christophe Fouquet)와의 화상 파이어사이드 챗 형식으로 내부 기술 콘퍼런스에 참가하기 며칠 전에 나온 것이다.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비공식 집계이긴 하지만, 6월 8일(현지 시각) ASML 주가는 전일 대비 5.57% 상승한 1,733.14달러에 마감하며 하루 새 91.40달러가 뛰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종가는 올해 들어 50% 이상 상승한 주가 흐름을 재확인시켜 준 수준으로, ASML은 6월 초 한때 시가총액 6,740억달러를 돌파하며 유럽 시총 1위 자리를 잠깐 되찾기도 했다. 앞서 ASML은 브로드컴의 부진한 가이던스와 미국 고용지표 서프라이즈 여파로 반도체주 전반이 6% 안팎 밀리던 지난주 말 동반 조정을 겪은 직후였다.
테라팹의 스케일…2나노·AI·우주를 한데 묶은 ‘1190억달러 메가팹’
시장의 상상력을 자극한 건 머스크의 찬사 자체보다 그 배경에 있는 테라팹의 스케일이다. 테라팹은 2026년 3월 공식 발표된 테슬라·스페이스X·인텔의 합작 반도체 팹 프로젝트로, 텍사스에 2나노미터(2nm)급 로직 칩과 메모리, 첨단 패키징을 한 지붕 아래 통합 생산하는 수직계열화 시설을 짓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 텍사스주 그라임스 카운티에 제출된 공시 자료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초기 투자액을 550억달러로 제시했고, 후속 단계까지 포함할 경우 총 투자 규모는 최대 1,190억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는 미국 반도체법(CHIPS Act) 이후 발표된 개별 단일 팹 프로젝트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초대형 베팅’으로, 공청회 공고문에는 “다단계 차세대 수직 통합 반도체 제조 및 고성능 컴퓨팅 팹 단지”로 정의돼 있다.
머스크는 최근 테슬라 1분기 실적 발표에서 테라팹이 인텔의 차세대 14A 공정을 활용해 테슬라 자율주행용 칩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언급했으며, 인텔도 4월 “초고성능 칩의 설계·제조·패키징” 분야에서 테라팹에 참여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위키피디아에 정리된 개요에 따르면, 테라팹은 연간 1테라와트급 AI 연산 능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의 반도체와 모듈을 생산하겠다는 비전을 내걸고 있다.
ASML, ‘스토리의 한복판’으로…High-NA EUV 수혜 기대
ASML이 이 이야기의 중심에 선 이유는 단순한 행사 초청 때문만이 아니다. 회사 측은 로이터를 통해 “테라팹은 ‘진지한 사업(serious endeavor)’이며, ASML은 이 프로젝트의 협력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테라팹을 통해 머스크와 그의 팀은 더 넓은 반도체 생태계의 일원이 되고 있으며, ASML을 포함한 많은 기업들이 이 프로젝트에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푸케 CEO는 별도의 인터뷰에서 머스크와 직접 테라팹에 대해 논의한 사실을 인정하며, 그가 “테슬라·스페이스X·xAI의 반도체 및 위성 관련 프로젝트에 대해 매우 진지하다”고 평가했다. 로이터 등 보도에 따르면, 테라팹에서는 인텔이 먼저 도입하기로 한 ASML의 차세대 High-NA EUV(고개구수 극자외선) 노광 장비가 활용될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테슬라·스페이스X·xAI·AI 데이터센터까지 이어지는 ‘머스크 생태계’의 폭발적인 연산 수요를 감안할 때, 수십억달러 규모의 노광 장비 발주가 중장기적으로 ASML 수주잔고에 반영될 것이란 기대가 주가에 선반영된 셈이다.
내부 반발과 ‘머스크 프리미엄’의 양면성
흥행 기대와 별개로, ASML 내부에서는 머스크를 향한 환호 일색만은 아니다. 네덜란드 지역지 에인트호번스 다흐블라트(Eindhovens Dagblad)는 일부 직원들이 머스크 초청에 반발해 콘퍼런스 불참을 검토했다며, 그의 노동·노조·콘텐츠 정책 등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문제 삼았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회사 측은 “테라팹과의 사업적 연관성이 분명하다”는 이유로 행사를 예정대로 강행했다.
이 같은 내부 반발은 ASML이 ‘유럽 대표 ESG 우량주’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AI·우주·국방·반도체 등 머스크가 건드리는 모든 영역과 사업적으로 얽혀 들어가는 과정에서 마주할 리스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단기적으로는 머스크 효과에 힘입어 ASML 주가에 프리미엄이 붙겠지만, 테라팹 프로젝트의 실행 과정에서 환경·노동·거버넌스 이슈가 불거질 경우 그 부담이 ASML의 평판과 밸류에이션에 역으로 작용할 소지도 있다.
투자자에게 남는 질문…‘머스크 스토리’인가, ‘실적’인가
현재 ASML은 2026년 예상 순이익의 약 40~50배 수준 밸류에이션을 부여받고 있다는 추정이 나오며, 이번 주가 급등으로 그 프리미엄은 더 두터워졌다. 테라팹이 계획대로 완공될 경우, 2nm 로직·고대역폭 메모리·첨단 패키징까지 아우르는 ‘AI 슈퍼팹’에 ASML의 EUV·High-NA EUV 장비가 다수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중장기 수혜 논리는 분명하다.
다만 550억~1,190억달러에 이르는 투자 규모 자체가 전례 없는 수준인 만큼, 재원 조달과 단계별 투자 집행, 미국·EU 보조금 구조, 인텔 파운드리 전략과의 정합성 등 변수가 적지 않다는 점도 냉정하게 봐야 한다.
머스크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ASML 주가에 단기적 탄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결국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테라팹 초기 단계에서 실제 장비 발주·수주잔고로 확인되는 하드 데이터라는 점에서, 향후 1~2년간 ASML의 주문·매출 가이던스가 투자자들의 최종 ‘판정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