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자산운용사 밴에크(VanEck)가 기업용 블록체인 카테고리에서 XRP 레저(XRPL)를 1위로 올려세우면서, 월가 전통 금융과 퍼블릭 블록체인간 힘의 균형이 미묘하게 이동하고 있다.
전통 금융을 대표하는 JP모건의 허가형 블록체인 ‘키넥시스(Kinexys·구 오닉스(Onyx))’를 제치고, 코인베이스 베이스(Base), 칸톤(Canton), 로빈후드 체인(Robinhood Chain) 등 쟁쟁한 경쟁자를 모두 앞섰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밴에크가 본 ‘1위 기업용 블록체인’의 숫자들
MEXC, Phemex News, CryptoRank, Coinpaper, CryptoRank에 따르면, 밴에크의 최신 기업용 블록체인 평가에서 XRP 레저는 약 880억 달러 수준의 추정 네트워크 시가총액과 약 4,700만 달러의 디파이(DeFi) 총예치자산(TVL)을 기록한 것으로 제시됐다. 이 평가는 브랜드 인지도나 시장 내 내러티브가 아니라, 네트워크 밸류에이션, 유동성 깊이, 온체인 사용량 등 정량 지표를 기준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밴에크의 기업용 블록체인 카테고리에는 JP모건 키넥시스, 코인베이스의 베이스, 칸톤, 로빈후드 체인뿐 아니라, 프로비넌스/FIGR, Fnality, ARC 등 전통 금융·핀테크 기반 플랫폼들이 함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상단에 위치한 다수가 특정 기관이 통제하는 허가형 또는 컨소시엄형 네트워크인 반면, XRP 레저는 퍼블릭 레이어1로 평가됐다는 점에서 구조적인 차별성이 부각된다.
퍼블릭 vs 허가형, XRPL과 키넥시스의 대조
이번 순위는 JP모건의 키넥시스를 대표적인 허가형(프라이빗) 기업 블록체인으로, XRP 레저를 개방형 퍼블릭 블록체인으로 대비시키며 두 모델간 ‘실험’이 현실 무대에서 본격화됐음을 보여준다. 키넥시스는 JP모건과 파트너 금융기관들이 참여하는 폐쇄형 구조로, 규제 준수와 내부 통제를 최우선하는 엔터프라이즈 설계가 특징이다.
반면 XRP 레저는 누구나 검증 노드 참여가 가능한 퍼블릭 네트워크이면서도 초당 수천 건 수준의 처리량과 수 초 내 결제 확정성(finality)을 제공하는 기업용 결제 기능을 앞세우고 있다.
밴에크는 별도의 분석에서 XRP 레저를 SWIFT, DTCC, JP모건 결제망 등 기존 레거시 인프라를 보완·대체할 수 있는 신흥 결제 레이어로 지목하며, “전통 금융 인프라와 퍼블릭 블록체인 간 하이브리드 구조의 핵심 축”으로 규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퍼블릭 체인의 개방성과 유동성, 허가형 체인의 규제 친화성과 결제 안정성을 동시 추구하는 구조 속에서, XRP 레저는 퍼블릭 측의 대표 주자로 포지셔닝되고 있는 셈이다.
JP모건·마스터카드가 올린 ‘4.2초’ 시연
기관 신뢰도는 실제 트랜잭션 사례를 통해 강화되고 있다. 2026년 5월 6일(현지시간) JP모건, 마스터카드, 온도 파이낸스(Ondo Finance), 리플(Ripple)은 XRP 레저 위에서 토큰화된 미국 국채(OUSG)의 실시간 크로스보더 환매 거래를 완료했다.
온도 파이낸스가 보유한 단기 미국 국채 펀드 토큰(OUSG)의 상환(asset leg)은 XRP 레저 상에서 리플의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RLUSD로 약 4.2초 만에 결제됐고, 법정화폐(USD) 자금은 마스터카드의 멀티 토큰 네트워크(MTN)와 JP모건 키넥시스를 통해 싱가포르 DBS 은행 계좌로 라우팅됐다.
이 거래는 퍼블릭 블록체인(XRPL)과 글로벌 은행 인프라(키넥시스·DBS)를 연동해, 전통 금융 시간 외에도 실시간으로 토큰화 자산을 상환·결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적인 데모로 해석된다. 즉, 키넥시스는 규제 환경과 은행 네트워크에 직결되는 ‘법정화폐 레일’을 담당하고, XRP 레저는 토큰화 자산의 온체인 상환·이동을 처리하는 ‘퍼블릭 자산 레일’로 기능한 셈이다.
실물자산(RWA) 2.25억이 아닌 22.5억 달러…수치로 확인된 ‘효용 전환’
실물자산(Real-World Assets·RWA) 부문 성장세 역시 XRPL의 ‘결제 레이어 전환’ 서사를 뒷받침하는 핵심 지표로 꼽힌다. 메사리(Messari)의 ‘State of XRP Q1 2026’ 보고서에 따르면, XRP 레저의 RWA 시가총액은 2026년 1분기 기준 전 분기 대비 124% 증가한 22억 5,000만 달러(2.25 billion 달러)에 달했다.
앞선 분기 흐름을 보면, XRPL의 RWA 시가총액은 2025년 2분기 1억 3,160만 달러에서 3분기 3억 6,400만 달러로 뛰었고, 이후 2026년 1분기에는 20억 달러 대를 넘기며 가파른 성장 곡선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보고서는 2026년 1분기 XRP 레저의 일평균 트랜잭션 수가 전 분기 대비 35.3% 증가한 248만 건 수준으로 늘었고, RLUSD의 시가총액 역시 분기 대비 45% 증가한 약 3억 4,030만 달러에 도달했다고 집계했다.
코인게이프(CoinGape)는 메사리 보고서를 인용해, XRP 레저에서 발행·유통되는 RLUSD 스테이블코인과 미국 현물 XRP ETF의 보유량 증가가 RWA 및 디파이 수요를 끌어올리며 ‘XRP 유틸리티(utility)’를 구조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XRP가 단순 교차국가 결제(bridging) 자산에서, 실물자산 담보 결제·상환, 온체인 담보 관리, ETF 연계 유동성 등 보다 복합적인 사용처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월가 블록체인’과 정면 승부에 나선 퍼블릭 레저
밴에크의 이번 평가는 XRP 레저가 단순한 암호화폐 결제망을 넘어, 월스트리트 대형 은행들의 블록체인 계열사와 직접 비교되는 ‘벤치마크 레이어’로 격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키넥시스와의 조합으로 구현된 토큰화 국채 상환 사례는, 퍼블릭 체인과 허가형 체인이 경쟁이 아닌 상호보완 관계로 재편될 수 있음을 시연했다는 점에서, 향후 글로벌 결제·청산 인프라 구조 변화에 적잖은 함의를 남긴다.
현재까지의 데이터만 놓고 보면, XRP 레저는 880억 달러 규모의 네트워크 밸류에이션과 22억 5,000만 달러의 RWA 시장, 35%대 분기 성장률을 기록한 온체인 트랜잭션 증가세를 바탕으로 ‘퍼블릭 기반 기업용 결제 레이어’로서의 존재감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앞으로 관건은 규제 환경, 대형 금융기관들의 추가 통합 사례, 그리고 경쟁 퍼블릭·프라이빗 블록체인의 대응 속도다. 퍼블릭과 허가형 중 어느 한쪽의 승패가 아니라, 어떤 조합이 글로벌 자본 이동의 표준으로 자리잡을지 여부를 가르는 경쟁이 이제 막 본격화됐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