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AI 데이터센터용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폭증에 힘입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세계 3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사상 처음으로 동시에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하며 글로벌 반도체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전형적 경기민감 업종’으로 분류되며 ‘싸게 사서 비쌀 때 파는’ 전통적 사이클 산업으로 취급받던 메모리 산업이 AI 인프라의 핵심 공급망으로 재평가되면서, 밸류에이션과 산업 패러다임이 함께 재정의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조 달러 클럽에 동시에 입성한 3대 메모리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5월 26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주가가 약 18~19% 급등하며 시가총액 1조 달러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CNBC와 로이터 등에 따르면 UBS가 목표주가를 종전 535달러에서 1,625달러로 세 배 이상 상향 조정한 것이 직접적인 촉매였다.
UBS가 제시한 1,625달러는 직전 종가 대비 110% 이상 추가 상승 여력을 의미하며, 이를 적용할 경우 마이크론의 12개월 내 잠재 시가총액은 약 1조 8,000억 달러에 달한다는 계산이다. 다우존스 시장 데이터 기준으로 마이크론은 시가총액 5,000억 달러를 처음 돌파한 지 48거래일 만에 1조 달러를 넘어선 셈이다.
한국에서는 SK하이닉스가 5월 27일 코스피 시장에서 장중 9% 이상 급등하며 시가총액 1,598조원을 기록, 환율(달러당 약 1,500원) 기준 약 1조 600억 달러 수준에 올라섰다. 증권사 집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올해 들어서만 주가가 약 250% 안팎 급등하며, 삼성전자에 이어 한국 증시 역사상 두 번째로 시총 1,000조원을 넘어선 기업이 됐다. 글로벌 시가총액 순위로도 10위권 초반까지 치고 올라가며 ‘AI 메모리 대장주’ 위상을 굳혔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같은 주인 5월 29일 보통주와 우선주를 합산한 시가총액이 사상 처음으로 2,000조원을 돌파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삼성전자는 보통주 기준 주가가 31만7,000원에 마감하며, 합산 시총이 약 2,015조원(약 1조 4,700억 달러)까지 불어났다. 이는 올해 1월 1,000조원을 넘긴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몸값을 두 배로 키운 기록이다.
‘HBM 슈퍼사이클’이 만든 구조적 리레이팅
이번 동반 랠리의 본질은 단기 주가 변동이 아니라 HBM을 축으로 한 메모리 산업의 구조적 리레이팅이다. HBM은 AI 서버에서 GPU 옆에 3D로 적층되어 붙는 특수 DRAM으로, 대규모 언어모델(LLM) 학습·추론 시 메모리 대역폭이 병목이 되면서 사실상 ‘AI 시대의 석유’ 역할을 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HBM3E 시장점유율 1위로, 엔비디아의 주요 플래그십 GPU에 핵심 공급사로 참여하면서 ‘AI 슈퍼사이클’의 최대 수혜주로 부상했다. 삼성전자는 HBM3에서 다소 뒤진 것으로 평가됐지만, 5월 29일 세계 최초로 7세대 HBM4E(12단 적층) 샘플 출하를 공식화하며 기술 격차를 한 번에 만회하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삼성의 HBM4E는 전 세대 대비 속도가 약 20% 이상 향상된 것으로 평가된다. 마이크론 역시 HBM3E 공급을 본격화하고 차세대 제품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양강+1’ 구도를 ‘삼강 체제’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메모리 가격 사이클은 과거처럼 PC·스마트폰 수요에 좌우되는 단순 경기민감 패턴에서 벗어나, 장기 공급계약과 데이터센터·AI 인프라 투자 계획에 연동되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UBS가 마이크론 목표주가를 3배 이상 올리며 제시한 핵심 논리도 “AI 수요에 기반한 장기 공급 계약과 가격 구조 변화로, 메모리 업종의 밸류에이션 멀티플 자체가 재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iHBM·HBM4E…냉각·성능 경쟁까지 ‘풀 스택’으로
이번 주에 발표된 전략적 행보를 보면, 3사 모두 단순히 D램 생산량 확대에 머무르지 않고 패키징·냉각·시스템 솔루션까지 아우르는 ‘풀 스택 HBM’ 지위를 노리고 있다. SK하이닉스는 5월 26일 HBM 패키지 내부에 냉각 요소를 직접 집적한 iHBM 솔루션을 공개하며, 열 저항을 기존 대비 약 30% 줄였다고 밝혔다.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iHBM은 차세대 HBM5 제품에 우선 적용해, AI 가속기 성능을 높이면서도 전력 효율과 안정성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삼성전자는 이미 2월 업계 최초로 HBM4 양산을 발표한 데 이어, 불과 3개월 만에 HBM4E 샘플을 고객사에 공급했다고 강조했다. 삼성의 HBM4E는 12단 적층 구조를 채택해 용량과 대역폭을 동시에 끌어올리면서도, 패키지 두께와 발열을 최소화하는 설계를 적용했다. 마이크론 역시 차세대 패키징 공정과 첨단 공정 노드를 병행 적용해 HBM 단가 경쟁력과 성능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AI 동맹’으로 얽힌 메모리와 빅테크
HBM 공급망은 이제 반도체 기업을 넘어 AI 플랫폼·클라우드 기업과의 전략적 동맹 구도로 확장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는 최근 생성형 AI 스타트업 앤트로픽(Anthropic)의 650억 달러 규모 시리즈 H 투자 라운드에 전략적 인프라 파트너로 참여했다. 이번 라운드에서 앤트로픽의 포스트머니 기업 가치는 약 9,650억 달러로 평가됐는데, 사실상 1조 달러에 근접한 AI 플랫폼 기업과 1조 달러 메모리 기업들이 ‘수직 계열화된 동맹’을 맺은 셈이다.
이는 GPU–HBM–AI 플랫폼–클라우드로 이어지는 가치사슬 상에서, 메모리 업체들이 단순 하청 공급사를 넘어 AI 생태계 설계 단계부터 참여하는 ‘전략적 플레이어’로 격상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투자와 공급 계약이 결합된 형태의 딜이 늘어날수록, HBM 공급량과 가격, AI 파운드리 구조는 소수 플레이어 중심의 과점 체제로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 메모리는 AI 인프라”…다음 단계는
UBS가 마이크론의 목표주가를 1,625달러로 제시하며 시가총액 1조 8,000억 달러까지 거론한 것은, 메모리 업종이 더 이상 전통적 사이클 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SK하이닉스가 단일 종목으로만 한국 증시에서 1,500조원이 넘는 시총을 기록하고, 삼성전자가 2,000조원을 넘겨 ‘국가 단위 GDP에 필적하는’ 몸값을 인정받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반도체업계 및 증권투자업계 전문가는 "AI 서버 투자 사이클이 어느 시점에서 둔화될지, GPU–HBM 기술 세대 전환 속도가 어느 정도일지에 따라 또 다른 변동성이 불가피하다는 경계도 공존한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들어 3대 메모리 업체가 동시에 1조 달러 클럽에 입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메모리가 ‘AI 인프라 산업’으로 지위를 바꿨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