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을 이끄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가장 똑똑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답을 거부했다.
세계 최고의 기업 수장이 던진 이 침묵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었다. 그는 인류가 수천년간 신봉해온 '똑똑함'의 정의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AI의 출현으로 인간의 똑똑함에 대한 기준이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AI가 정복한 것은 '지능'이었다
젠슨 황은 팟캐스트 'A Bit Personal'에 출연해 "모두가 프로그래밍이 가장 똑똑한 직업이라고 생각했지만, AI가 가장 먼저 정복한 게 바로 프로그래밍"이라고 말했다. 그가 지적한 핵심은 명료했다. IQ, 문제 해결 능력, 기술적 역량으로 대변되던 전통적 '똑똑함'은 이제 "흔해 빠진 능력(commodity)"이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엔비디아 내부에서는 AI와 함께 일하는 법을 아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가장 인기 있으며, 황 CEO는 2026년 3월 GTC 컨퍼런스에서 연봉의 절반에 달하는 가치의 'AI 토큰'을 인센티브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엔지니어뿐 아니라 마케팅, 재무 등 전 분야에서 숙련된 AI 사용자를 찾고 있다는 이 발표는 역설적이다. 기술기업의 수장이 기술 자체보다 기술을 다루는 '인간적 능력'을 더 중시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코너를 보는 눈"…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직관
젠슨 황이 제시한 새로운 지능의 정의는 철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이다. "사람의 감정을 읽고, 말하지 않은 것을 추론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그 '직관(intuition)'이 진짜 똑똑함"이라는 그의 말은 서양 철학사에서 논리실증주의와 대립했던 현상학적 사유를 연상시킨다.
그는 "코너를 보는 능력(seeing around corners)"을 강조하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예측하고, 분위기(vibe)만으로도 미래를 감지하는 능력을 진정한 지능으로 정의했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한 '던져진 존재(Geworfenheit)'의 세계에서, 명확한 논리 이전에 작동하는 '현존재(Dasein)'의 이해 방식과 닮아 있다. 즉, 분석적 사고 이전에 세계를 '느끼고' '읽어내는' 능력이 곧 인간 고유의 지능이라는 것이다.
감성지능의 수치적 증명…58%의 성과를 좌우하는 힘
젠슨 황의 주장은 단순한 철학적 수사가 아니다. 2026년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감성지능(EQ)은 직무 성과의 58%를 설명하며, 최고 성과자의 90%가 높은 감성지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고용주는 강한 감성지능을 가진 직원을 승진시킬 확률이 75% 더 높으며, 높은 감성지능을 가진 개인은 연평균 2만 9,000달러(약 4,277만원)를 더 벌어들인다.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71%의 채용 담당자가 IQ보다 감성지능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감성지능은 리더십 성공을 예측하는 데 있어 IQ보다 4배 더 정확한 지표로 작동한다. 이는 단순히 '소프트 스킬'이 아니라, 조직의 수익성을 34% 증가시키고, 조직 성공률을 60% 향상시키는 핵심 경쟁력이라는 의미다.
세계경제포럼이 증명한 미래…기술 너머의 인간
세계경제포럼(WEF)의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 2025'는 2030년까지 1억 7,0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직무에 필요한 핵심 기술의 39%가 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주목할 점은 AI와 빅데이터 같은 기술적 기술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지만, 동시에 창의적 사고, 회복탄력성, 유연성, 호기심, 평생학습, 리더십, 사회적 영향력, 분석적 사고가 함께 상승한다는 사실이다.
TalentSmartEQ가 2026년 2월 발표한 '2026 EQ 현황 보고서'는 약 700명의 리더십·HR·학습개발 전문가와 2만 3,000명의 개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AI 주도 세계에서 조직 성과를 가장 강력하게 예측하는 요소는 "기술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인간적 기술(human skills)"이라고 결론지었다. 조직 변화가 가속화되면서(2025년 45%에서 2026년 54%로 증가), 단 41%만이 혼란에 잘 대비되어 있다고 답했다. 이는 기술적 역량보다 변화를 '관리하는' 인간적 역량이 더 중요해졌음을 시사한다.
학교 성적이 끔찍할 수도 있는 똑똑한 사람
젠슨 황은 "그런 사람은 학교 성적이 끔찍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한 문장은 근대 교육 시스템이 구축한 '측정 가능한 지능'의 신화를 무너뜨린다. 표준화된 시험, 학점, 자격증으로 대표되는 20세기형 지능 평가 체계는, AI가 그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는 21세기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선언이다.
문화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는 인간을 "자신이 친 거미줄에 걸린 동물"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은 스스로 만든 상징 체계 속에서 의미를 찾고 살아간다. 젠슨 황이 말하는 '직관'과 '감성지능'은 바로 이 거미줄 즉, 문화적·사회적 맥락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AI는 데이터를 처리하지만, 인간만이 맥락을 '이해'한다.
상품화된 지능, 희소해진 인간성
젠슨 황은 기술적 지능이 "상품화(commoditization) 단계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경제학 용어로 '상품화'는 차별성을 잃고 가격 경쟁에 내몰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코딩, 데이터 분석, 심지어 법률 문서 작성까지 AI가 대체 가능한 오늘날, 기술적 역량은 더 이상 '희소자원'이 아니다.
반면 인간의 공감, 윤리적 판단, 맥락적 이해는 희소성을 더해가고 있다. 경제학의 기본 원리대로, 희소한 것이 가치 있다. OECD의 2022년 연구는 AI와 로봇공학의 발전으로 여러 고차원 인지 기술이 자동화될 수 있지만, 고숙련 직업이 자동화 위험에서 덜한 이유는 "자동화의 중요한 병목으로 남아 있는 기술과 능력"을 여전히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병목이 바로 '인간다움'이다.
"AI를 쓰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뺏긴다"
젠슨 황은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AI를 사용하는 누군가에게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이는 기술 결정론이 아닌, 기술 수용의 사회학적 격차를 지적한 것이다.
엔비디아에서는 마케팅이나 금융 분야의 신입 사원이라도 정교한 AI 지식을 갖추고 있다면 "바로 그 인재"로 평가받는다.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의 문제가 핵심이 된 것이다. 이는 마르틴 하이데거가 '기술에 대한 물음'에서 제기한 핵심 질문인 "기술을 도구로 부릴 것인가, 기술에 종속될 것인가"와 맞닿아 있다.
고통받을 권리…회복탄력성의 철학
젠슨 황은 스탠퍼드 엘리트들에게 "제발 고통받으라"고 '저주'했다. 이는 니체의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명제의 현대적 번역이다. 그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AI 시대의 핵심 역량으로 꼽으며, "넘어져서 무릎이 깨진 뒤 다시 일어나는 순간, 남들이 비웃는 꿈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뚝심, 보이지 않는 미래를 믿고 오늘을 던지는 용기"를 강조했다.
세계경제포럼의 2023년 보고서는 회복탄력성, 자기인식, 적극적 경청을 미래 인력의 핵심 특성으로 지목했다. 모두 감성지능의 핵심 요소들이다. 뇌과학 역시 '적당한 불안'과 '고통'이 학습과 성장에 필수적임을 증명하고 있다. 정답만 맞히는 모범생이 아니라, 실패를 견디고 다시 일어서는 '야생성'이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새로운 엘리트의 탄생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25년 '올해의 인물'로 젠슨 황을 선정하며 "AI 열풍을 견인하며 전 세계 산업·금융시장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꾼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새로운 엘리트'의 기준은 재산이나 학벌이 아니다. "기술적으로 정통하면서도 인간적 공감을 지니고, 말하지 않은 것을 추론하며, 모퉁이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이는 플라톤의 '철인왕(philosopher-king)'을 21세기적으로 재해석한 것과 같다. 기술과 인문학, 논리와 감성, 데이터와 직관이 통합된 '통섭형 인간'이 바로 AI 시대의 진정한 지성이다.
젠슨 황이 던진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당신은 AI가 대체할 수 있는 '똑똑한 사람'인가, 아니면 AI가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