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엔비디아를 이끄는 젠슨 황 CEO가 “AI 시대에는 아이들의 전공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으면서, 이미 과열된 ‘AI 적응형 진로’ 논쟁에 정면으로 돌을 던졌다.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의 수장이자 AI 반도체 시장 점유율 약 90%를 장악한 인물이 내놓은 교육·노동 시장 진단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립서비스로 치부하기 어렵다.
“전공보다 질문력·활용력”…황의 메시지
황 CEO는 싱가포르 채널뉴스아시아(CNA) 인터뷰에서 “과거에 의미 있었던 것들은 앞으로도 의미 있을 것”이라며, 특정 전공이 AI로부터 안전한 ‘피난처’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직업이란 여러 과업이 묶인 ‘바스켓’이며, 그중 상당수는 AI가 자동화하지만 그 덕분에 인간은 더 어렵고 창의적인 과업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는 그의 설명은, 직업을 ‘직함’이 아닌 ‘과업 단위’로 재정의하자는 제안에 가깝다.
그는 특히 “AI가 여러분을 대체할 가능성은 낮지만, AI를 더 잘 쓰는 사람이 여러분을 대체할 수 있다”며, 경쟁의 축이 ‘전공’에서 ‘AI 활용역량’으로 이동했다고 강조했다. 같은 카네기멜런대 연설에서 황은 AI가 인간의 목적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역량을 증폭시키는 기술이라며, 방사선 전문의처럼 고도의 분석·판단이 필요한 영역은 AI 도입 이후 오히려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널리즘·스토리텔링·예술…AI가 못 뺏는 ‘와비사비’의 영역
흥미로운 대목은 황이 AI 시대에도 여전히 가치가 유지될 분야로 저널리즘, 스토리텔링, 예술, 디자인을 콕 집어 언급했다는 점이다. 그는 “관객을 위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능력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미래에도 중요하다”고 말하며, "인간 고유의 서사 구성 능력을 AI가 쉽게 치환하지 못할 것"임을 시사했다.
황은 일본 미학 개념인 ‘와비사비(wabi-sabi)’를 소환해, 완벽함이 아닌 불완전함과 결의 틈새에서 드러나는 인간적 매력이 AI 시대의 프리미엄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알고리즘이 평균값을 향해 수렴할수록, 비효율·우회·실패를 통과한 인간적 작업물의 희소성과 브랜드 가치는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역설이다. 그는 “무엇을 전공하든 스스로에게 ‘AI가 어떻게 나의 배움과 기술, 목적을 고양시킬 수 있는가’를 질문하라”고 주문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사라지는 건 ‘직업’이 아니라 ‘과업’
황의 진단은 최근 연구와 통계 흐름과도 맞물린다. 미국 노동시장 분석에 따르면, 이미 전체 임금의 11.7%에 해당하는 연간 1조2000억달러 규모 일자리가 AI에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노출은 ‘직업’이 통째로 사라진다기보다, 직업 안의 반복·정형·문서 중심·규칙 기반 업무(Task)가 AI로 이전되는 구조로 나타난다.
MIT가 수행한 연구에서는 AI 노출도가 실리콘밸리 같은 기술 중심지가 아니라, 금융·행정·백오피스가 밀집한 지역에서 더 높게 나타났고, 미국 22~25세 초기 경력자의 AI 고노출 직종 고용은 13% 감소한 것으로 보고됐다. 자리 수는 유지되지만, 신입·주니어 레이어가 줄고 경력 중심 구조로 재편되는 ‘일과 자리의 디커플링’이 진행 중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세계경제포럼(WEF) 역시 AI·자동화로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더 많은 1억7000만개 신규 일자리가 창출돼, 순증 기준 약 7,800만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황의 “직업은 과업의 바스켓”이라는 표현은 이런 구조 변화를 압축적으로 요약한다. 이미 글로벌 컨설팅사 조사에서 기술 산업 기업의 80% 이상이 실무에 AI를 적극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고,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근로자는 그렇지 못한 근로자보다 평균 56%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통계도 제시됐다. 이 데이터는 ‘어떤 직함이 안전한가’보다 ‘내 직무 안에서 어떤 과업을 AI에게 넘기고, 어떤 고부가가치를 새로 만들 것인가’가 핵심 질문임을 말해준다.
“AI 탓 해고는 무책임”…경영·교육 모두에 던지는 숙제
황은 CNA 인터뷰에서 CEO들이 구조조정의 명분을 AI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 “무책임하고 너무 게으른 설명”이라고 잘라 말했다. 기술 도입은 경영자의 전략적 선택인데, 그 책임을 ‘불가항력적 기술’에 전가하는 프레임은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지적이다. 이는 AI 도입을 둘러싼 한국 기업들의 ‘정리해고 명분화’ 유혹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고다.
교육 정책 측면에서도 함의는 분명하다. 황은 이미 다른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누구나 자연어로 코드를 짜는 시대가 온다”며 ‘모두가 프로그래머가 되는’ AI 패러다임을 설명한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다시 전공을 선택한다면 컴퓨터공학이 아니라 생명과학·생명공학·물리학 같은 복잡계 기반 학문을 선택하겠다고 밝히며, AI가 이들 분야의 실험·설계·해석을 가속하는 촉매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컴공=안전, 인문=위험”이라는 단순 구도가 이미 깨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링크드인 등의 데이터에서도 2023년 이후 컴퓨터공학 전공자의 취업 성과가 꺾이며, 일부 인문·사회 전공과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황의 메시지는 “전공 간 서열”이 아니라, 어떤 전공을 택하더라도 AI를 곁에 둔 ‘확장된 인간’으로 진화하라는 압박에 가깝다.
한국에 주는 시그널…‘AI 방어’가 아니라 ‘AI 증폭’ 전략으로
황은 여러 연설과 인터뷰에서 AI를 “새로운 산업혁명”으로 규정하며, AI 인프라를 얼마나 빠르고 넓게 깔 수 있는지에 따라 국가·기업의 경쟁력이 갈릴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왔다. 동시에 그는 AI 인프라를 가진 국가일수록 교육·노동 정책에서 ‘공포 기반 진로 지도’ 대신 ‘AI 증폭 역량’ 중심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한국은행·고용연구원 등 국내 연구기관들이 반복 업무 중심 사무직과 백오피스, 금융·공공 행정 부문이 AI에 가장 취약하다고 잇따라 경고해왔다. 하지만 같은 보고서들은 동시에, 시스템 전체를 설계·통합·감독할 수 있는 고급 인지·통섭형 인재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 것이라고 전망한다.
황의 발언을 한국 현실에 대입하면, 부모 세대의 질문은 “아이를 어떤 전공에 넣을까”가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 질문력·서사력·수리·시스템 사고를 동시에 키울까”로 옮겨가야 한다. 전공 선택은 그 다음의 전술적 결정일 뿐, 전략적 축은 “AI를 잘 쓰는 사람”이 되는 쪽으로 이미 기울고 있다.
이 지점에서 질문은 우리에게로 되돌아온다. ‘AI로부터 안전한 전공’을 찾기보다, 지금 내가 가진 전공과 직무에서 어떤 과업을 AI에게 넘기고, 어떤 인간적·창의적 ‘와비사비의 영역’을 키워갈 것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분야는, AI와 결합했을 때 무엇이 두 배로 커질 수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