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세계 여러 국가들의 식도암·위암·간암·대장암·자궁경부암 분포를 놓고 보면, 암은 더 이상 순수한 개인 질병이 아니라 사회·문화·산업 구조의 집단적 결과물에 가깝다. 뜨거운 훠궈와 차, 절임과 백주, 비만과 패스트푸드, 백신과 검진·위생 시스템, 종교와 성문화가 결합해 국가별 ‘암의 지문’을 만든다는 것이 연구결과로 나왔다.
중국이 세계 식도암 환자의 40%를 떠안고 있다는 사실은, 한 나라의 식문화와 산업화 경로, 공중보건 정책이 어떻게 수십 년 후의 암 통계를 재구성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오늘 우리의 식탁 위 온도계, 냉장고, 백신·검진 선택이 20~30년 뒤 어느 암이 “한국의 암”이 될지를 조용히 결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통계는 ‘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의 자화상에 가깝다.
세계 식도암의 44%가 중국인인 이유
국제 학술지와 GLOBOCAN·GBD(질병부담 연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식도암 신규 환자 51만여 명 가운데 중국 환자는 약 22만4000명으로, 전체의 43.8%를 차지했다. 같은 해 식도암 사망자도 전 세계 44만5000여 명 중 중국이 약 18만7000명(42.1%)으로, 발병과 사망에서 모두 ‘세계 1위 부담국’으로 집계된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20년 전 세계 식도암 신규 환자를 약 60만4100명, 사망 54만4100명으로 추정하는데, 이 중 동아시아와 동·남부 아프리카에 편평상피세포암(ESCC) 부담이 집중됐다. 중국의 식도암은 90% 이상이 편평상피세포암 형태로, 서구에서 비만·역류성 식도염과 연결되는 선암(adenocarcinoma)과는 역학적 특성이 크게 다르다.
중국 보건 당국과 다수 논문이 공통으로 지목하는 중국식 ‘위험 조합’의 이유는 ▲65도 이상 뜨거운 차·탕·훠궈 섭취 ▲고도수 백주(白酒)와 흡연의 병행 ▲짠 절임·훈제·건식 식품 중심의 전통 식단 ▲곰팡이·니트로사민 오염 가능성이 높은 저장식품 섭취 등의 복합적 결과다.
IARC와 다국적 연구진이 아프리카와 중국·이란·중앙아시아 등 이른바 ‘식도암 벨트(esophageal cancer belt)’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65도 이상 ‘매우 뜨거운 음료’를 마시는 행위는 식도암 위험을 유의하게 높이는 요인으로 분류됐다. IARC는 2016년 몬그래프 116호에서 65도 이상 ‘매우 뜨거운 음료’를 인체에 ‘발암 가능성이 높은 물질(2A군)’로 규정했다.
말라위·케냐를 대상으로 한 IARC 공동 연구에서는 ‘음식·음료 온도, 기다리는 시간, 먹는 속도, 입 데이는 빈도’ 등을 종합한 열 노출 점수(thermal exposure score)를 만들었는데, 이 점수가 가장 높은 집단이 가장 낮은 집단보다 식도 편평상피세포암 위험이 4.6배 높았다. 특히 65도 이상 ‘매우 뜨거운’ 식·음료는 ‘뜨거운’ 수준 대비 위험을 1.9배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크게 다룬 “훠궈를 급하게 먹다가 식도에 8cm 궤양이 생긴 중국 40대 여성” 사례 역시, 의학적으로는 이런 열 손상이 반복될 경우 식도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극단적 일례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뜨거울 때 먹어라’는 말은 산업혁명 이전의 식중독·기생충을 피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지만, 냉장·가열·위생이 확보된 21세기에는 오히려 특정 암의 위험을 높이는 문화 코드로 변질된 셈이다. 문화적 관성의 시간이 과학적 증거의 시간보다 길게 유지될 때, 그 사이의 간극이 바로 ‘국가별 특정 암’이라는 형태로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미국·영국·호주 등에서는, 차가운 맥주와 패스트푸드 문화가 식도암의 얼굴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비만·역류성 식도염·고칼로리 식단이 하부 식도 선암 증가의 핵심 요인으로 꼽히며, 일부 서구국가에서는 선암이 전체 식도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같은 식도암이라도, 중국·이란·아프리카의 ‘뜨거운 문화권’과 서구의 ‘비만 문화권’이 만들어내는 암의 얼굴은 완전히 다르다. 뜨거운 훠궈와 차가운 맥주가, 서로 다른 경로로 같은 장기(식도)를 겨냥하는 셈이다.
산업화·문화·종교가 만든 ‘국가별 암의 지문’
세계 암 통계를 보면, 위암과 간암은 여전히 동아시아의 ‘국민암’에 가깝다. 이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 짠 음식·절임·훈제 식품, 흡연, 낮은 과일·채소 섭취가 결합된 결과로, 동아시아가 전 세계 위암 부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간암의 비율도 아시아권은 높다. 만성 B형·C형 간염 감염률이 높았던 역사, 곡물·땅콩 저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플라톡신, 음주, 최근에는 비만·비알코올성 지방간까지 겹치며 중국 하나가 세계 간암 환자의 약 40%를 떠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의 공통분모는 ‘저온 저장 시설이 부족했던 시대’에 뿌리내린 소금·절임·훈제 문화다. 전기·냉장고 보급 이전까지는 소금과 연기, 건조가 곧 생존의 기술이었고, 이는 곧 발암물질(니트로사민·다환방향족탄화수소 등)을 끊임없이 식탁 위에 올리는 구조가 됐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일부 국가는 자궁경부암이 여성 암 사망 1위를 차지한다. HPV 백신 접근성 부족, 정기적인 자궁경부 세포검사 인프라 미비, 조혼·다산, 성교육·피임 서비스 부족 등 복합적인 사회·문화·보건 요인이 얽혀 있다.
아프리카와 일부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B형·C형 간염의 만성감염률이 높고, 아플라톡신에 오염된 곡물을 상시적으로 섭취하는 농촌 인구가 존재한다. 여기에는 ‘냉장고 대신 햇볕과 마당에 곡물을 말리는’ 전통 저장 방식, 농약·방부제·검사 시스템의 부재 또는 취약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비교적 고소득 국가에서는 풍요가 키운 대장암·유방암·식도 선암 등의 비율이 높다. 가공육·적색육·정제 탄수화물·당류, 좌식 생활, 비만, 늦은 출산과 무자녀 등이 대장암·유방암·식도 선암을 끌어올린다.
대장암은 북미·서유럽·호주·한국·일본에서 높은 발생률을 보이며, 한국·일본은 서구형 식단과 여전히 높은 소금 섭취·음주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위험군’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또 늦은 초산, 적은 수유 기간, 고칼로리 식단, 비만 등이 무슬림 국가보다 비무슬림 고소득 국가에서 높은 유방암의 발생률을 만든다. 비만·역류질환 증가와 함께 북미·서유럽에서 식도 선암의 비율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의료분야 전문가는 "가난한 나라의 암은 감염·위생·백신·검진의 문제이고, 부유한 나라의 암은 과식·비만·음주·흡연·운동 부족의 문제라는 이분법이, 여전히 상당 부분 데이터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금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나는 오늘 저 훠궈를, 저 국물을, 저 커피를 몇 도에서, 얼마나 빨리, 무엇과 함께 마시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