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워싱턴 DC 입구에 250피트(약 76m) 높이의 초대형 ‘트럼프 개선문’이 세워지는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내부에 전망대까지 연결하는 엘리베이터 설치와 총 1억달러(약 1500억원)로 추산되는 건설비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링컨기념관 두 배, “ONE NATION UNDER GOD” 새긴 250피트 구조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워싱턴 DC 서쪽 관문인 메모리얼 브리지와 알링턴국립묘지를 잇는 ‘메모리얼 서클’에 이른바 ‘미국 개선문(United States Triumphal Arch)’을 세우겠다는 구상을 공식화했다.
새 기념비는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뜬 고전주의 양식으로, 높이 250피트(76.2m), 주 아치 개구부 높이 110피트, 폭 약 55피트 등으로 설계됐으며, 정면 상단에는 “ONE NATION UNDER GOD(하나님 아래 한 민족)”이라는 문구가 금박으로 새겨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계도에 따르면 개선문 상부에는 날개를 펼친 여신상과 독수리 조각상이 배치되고, 내부에는 관람객이 꼭대기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와 계단, 보안 검색 공간, 상시 운영을 위한 설비실 등이 포함된다.
완공 시 높이 99피트(30m)에 불과한 링컨기념관보다 2.5배, 164피트(50m)인 파리 개선문보다 100피트 이상 높은 세계 최대 규모의 ‘승전의 문’이 되며, 워싱턴 기념탑(555피트)과 연방의회 의사당 돔 다음가는 상징적 스카이라인으로 떠오르게 된다.
건설비 1억달러…파리 개선문 물가 보정 비용의 10배
백악관은 공식 총사업비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워싱턴 정치권과 건축업계에서는 구조 규모와 고급 석재, 금장(金裝) 조각, 특수 엘리베이터·안전 설비 등을 감안할 때 최소 1억달러(약 1500억원) 안팎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19세기 초 930만 프랑의 예산으로 30여년에 걸쳐 완공된 파리 개선문 건설비를 오늘날 물가로 환산한 추정치(약 800만~1000만유로 수준)를 크게 상회하는 규모로, “역사상 가장 비싼 승전문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낳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연방 예산이 아닌 민간 기부와 일부 공공기금을 섞는 혼합재원 방식”을 강조하며 재정 부담이 크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사업 승인 과정에서 제출된 자료에는 구체적인 모금 계획과 민간 출자 비율이 적시되지 않아 예산 투명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대통령이 동시에 추진 중인 백악관 내 대형 볼룸(연회장) 건립과 연계해 “볼룸 예산을 쓰고 남는 돈을 개선문에 돌리겠다”고 언급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정치적 치적을 위한 쌍둥이 프로젝트’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세계 최대 개선문” 자부심 vs “전망대 겸 자아 기념비” 조롱
트럼프 대통령은 이 구조물을 미국 독립 250주년(1776~2026년)을 기념하는 상징적 랜드마크로 규정하며 “세계에서 가장 큰 개선문”이 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실제 설계대로라면 ‘아크 드 트리옴프’(164피트), 평양 개선문(197피트)을 모두 제치고, 국가 수도 관문에 세워지는 최대 규모의 개선문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하지만 미국 주요 언론과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이 프로젝트를 “전망대 기능을 갖춘 초대형 자아 기념비” “대통령 개인 브랜드를 도시 경관에 영구 각인시키려는 시도”라고 비판한다.
비평가들은 특히 상단에 올라서는 여신상이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변주한 형상인데다, ‘ONE NATION UNDER GOD’ ‘LIBERTY AND JUSTICE FOR ALL’ 등 정치·종교적 메시지가 강조돼 “국가 통합의 상징이라기보다 특정 정치 지도자와 지지층의 이념을 시각화한 구조물”이라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시야 차단·환경 훼손·안전 리스크…소송과 반대 여론 99.5%
미국 독립전쟁·베트남전 참전 군인 단체와 도시경관 보존 단체들은 개선문이 건설될 메모리얼 서클이 “알링턴국립묘지와 링컨기념관, 워싱턴 기념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상징적 시야축”이라는 점을 들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브리태니커와 NPR, AP 등이 전한 바에 따르면 이들 단체는 “높이 250피트의 구조물이 들어설 경우, 링컨기념관 방향 주요 시선축이 가려지고, 국립묘지에서 바라본 워싱턴 스카이라인이 왜곡된다”는 이유로 연방법원에 공익소송을 제기했다.
미 연방 기념물·건축물 심의를 담당하는 미 예술위원회(Commission of Fine Arts)가 2026년 4월 실시한 공청회에는 600건이 넘는 시민 의견서가 제출됐는데, 이 가운데 99.5%가 반대 입장이었다는 사실이 위원회 회의록을 통해 공개됐다.
반대 의견에는 “대통령의 사적 브랜드 시설을 위해 국가 상징축을 훼손하는 일” “교통 혼잡·테러 표적 가능성 증가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안전 대책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지적과 함께, 전망대와 엘리베이터 설치가 “관광 상품화에만 치우쳤다”는 비판도 다수 포함돼 있다.
“엘리베이터 전망대”가 키워드…수익형 랜드마크냐, 또 하나의 분열 상징이냐
설계안에 포함된 엘리베이터는 지상부 아치 중앙부에서 출발해 상단 전망대까지 관람객을 수송하는 구조로, 250피트(약 76m)를 수십초 안에 오르내리는 고속 승강기가 될 것으로 전해진다. 백악관과 트럼프 지지 단체들은 “엘리베이터와 옥상 전망대, 기념품 숍, 야간 조명쇼 등을 통해 지속적인 관광 수익을 창출하고, 발생 수익 일부를 참전용사 지원과 국립묘지 관리에 재투자하겠다”며 ‘수익형 랜드마크’ 모델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반대측은 “고층 전망대·상업 시설 중심의 설계는 전통적인 전쟁기념·헌정기념물과 거리가 멀다”며, 파리 개선문이 군사 퍼레이드와 국가 추모식의 공간이라는 점,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이 도심 광장과 연결된 시민 공간이라는 점을 예로 들며 우려를 표한다.
트럼프 개선문이 전망대와 상업 기능을 앞세우면서, 워싱턴 기념탑과 링컨기념관, 한국전·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비가 만들어온 ‘추모·성찰의 서사’ 대신 ‘관광·소비의 서사’를 수도 한복판에 주입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역사적 아치 vs 정치적 아치” 논쟁, 2029년 완공 목표
트럼프 행정부는 1925년 의회가 해당 부지에 기념 구조물 설치를 허용한 결정을 근거로 “추가 입법 절차 없이 행정부 차원에서 추진 가능한 사업”이라는 법률 자문을 확보했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까지 미 예술위원회가 기본 설계를 조건부 승인했고, 향후 교통·환경영향평가와 국립공원관리청(NPS) 세부 협의, 의회 예산 관련 심사 등 몇 단계의 절차가 남아있다.
백악관은 2026년 여름 착공, 트럼프 대통령 임기 종료 시점인 2029년 이전 완공을 목표로 일정을 짜고 있지만, 행정소송과 의회 예산 심의, 민간 모금 상황 등에 따라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
해외 언론들은 “파리 개선문이 나폴레옹 군대의 승리를 기념하는 아치에서 프랑스 공화국 전체의 추모 상징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듯, 워싱턴의 새 개선문 역시 ‘트럼프의 아치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아치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인지’가 향후 수십년간의 정치·사회적 논쟁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어느 쪽이든 “완공되는 순간 이 구조물은 이미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미국 정치 분열의 거대한 석상”이라는 상징성을 내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