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노사 파업 위기 봉합 직후 5월 21일 사전 공지 없이 대만 신주과학단지에 위치한 미디어텍 본사를 전격 방문하면서, TSMC 아성의 한복판에서 ‘메모리·파운드리 패키지 딜’ 승부수를 띄웠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방문이 팹리스 칩 설계사인 미디어텍을 TSMC에서 삼성 파운드리 고객으로 끌어오기 위한 행보로 보고 있다.
대만 디지타임스(DigiTimes)를 비롯한 대만 언론들은 5월 22일 이 비공개 면담을 보도하며, 삼성 고위 임원들이 이재용 회장과 함께 미디어텍 사무실을 방문해 릭 차이(Rick Tsai) CEO등과 면담했다고 현지 공급업체 관계자들을 인용해 전했다.
이번 행보는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직전까지 갔던 임금·성과급 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한 직후 이뤄져, 글로벌 고객사를 상대로 공급 안정성을 직접 설득하는 ‘진화형 세일즈’로 해석된다.
대만 현지 매체와 국내 언론은 이번 회동의 의제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협력 확대와 글로벌 공급망 공동 대응에 맞춰져 있다고 전했다.
TSMC에 올인한 미디어텍…삼성이 꺼낸 ‘메모리+파운드리 패키지’
미디어텍은 퀄컴을 제외하면 세계 최대 스마트폰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설계사로, 주력 제품인 디멘시티(Dimensity) 시리즈 생산을 사실상 TSMC에 전량 맡기고 있는 대표적인 TSMC 충성 고객사다.
TSMC는 2026년까지 2나노 웨이퍼 월 생산량을 10만장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애플이 초기 2나노 생산 능력의 50% 이상을 선점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미디어텍과 퀄컴은 비용이 더 높은 N2P 노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전문가들은 이 구조적 병목과 AI 서버 수요 급등으로 인한 첨단 공정·HBM 공급난을 배경으로, 삼성이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묶은 ‘패키지 딜’을 앞세워 미디어텍을 공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전문가는 “AI 반도체 공급난 속에서 삼성의 강점인 메모리를 전략 자산으로 활용해, 파운드리 수주까지 동시에 확보하는 패키지 세일즈”라며 “TSMC 한 곳에 의존한 미디어텍 공급망을 다변화시키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고 전했다.
반등 궤도 오른 삼성 파운드리…가동률 50% → 80%대 ‘점프’
삼성의 공격적 세일즈 배경에는 파운드리 사업의 체력 회복이 자리한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2026년 1분기 가동률은 80%를 돌파해, 지난해 50% 안팎에 머물렀던 수준에서 극적인 반등을 이뤘다. 일부 공정은 가동률이 90%에 이르렀다는 설명도 나왔고, 이는 갤럭시 S26에 탑재된 엑시노스 2600과 테슬라·빅테크 물량 확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됐다.
글로벌 비즈니스·증권 매체들은 삼성전자가 2025년 테슬라와 체결한 165억달러 규모의 차세대 AI 칩 관련 계약, 그리고 애플·AMD·퀄컴과의 신규·추가 수주 협의가 진행되면서 파운드리 수주 파이프라인이 크게 불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미래에셋증권 등 국내 증권사들은 5월 초 리포트에서 “파운드리 가동률 80% 상회 및 수주 파이프라인 확대”를 근거로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하며, 2026년 하반기~4분기 파운드리 흑자 전환 가능성을 제시했다.
TSMC 2나노 ‘초기 물량 싹쓸이’…미디어텍, 삼성행 카드로 가격·공급 협상할까
다만 TSMC의 방어선은 여전히 높다. 해외·국내 매체에 따르면, 애플은 TSMC 2나노 초기 생산 능력의 50% 이상을 차세대 아이폰 18 시리즈용 A20·A20 Pro 칩에 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퀄컴과 미디어텍은 TSMC의 기본 N2 공정 대신 성능은 5% 개선됐지만 가격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N2P 공정을 이용해야 하는 ‘비용 압박’에 직면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올해 4월 이후 일부 외신과 업계 보고서에서는 “퀄컴이 2나노 칩 물량의 일부를 삼성에서 TSMC로 되돌리는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삼성 파운드리의 수율·품질 리스크가 다시 도마에 오른 상태다.
이런 환경에서 미디어텍은 TSMC 단일 의존에서 오는 공급·단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삼성과의 일정 수준 분산 생산 혹은 공동 개발 구조를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TSMC 텃밭’에서 시작된 삼성의 장기전…결국 관건은 수율과 신뢰
이번 미디어텍 방문은 단일 고객 수주를 넘어, 삼성 파운드리가 TSMC의 텃밭인 대만에서 핵심 팹리스와 직접 손을 잡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한 축을 구축하려는 상징적 행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AI 붐으로 HBM·첨단 공정 모두가 부족한 상황에서, 메모리 초격차와 파운드리를 결합한 ‘패키지 딜’은 TSMC가 갖기 어려운 삼성만의 차별화 전략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프리미엄 스마트폰용 최첨단 공정에서 여전히 TSMC 의존도가 절대적인 미디어텍의 구조, 그리고 2나노 수율을 둘러싼 시장의 의구심은 삼성에게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다.
결국 이재용 회장의 이번 ‘기습 세일즈’가 실제 물량 이전과 공동 개발 계약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향후 1~2년간 삼성 파운드리의 3나노·2나노 수율 안정과 고객사 신뢰 회복 속도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