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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건축

[공간사회학] 파리 한복판 ‘거대한 문화인프라’ 퐁네프 동굴…JR의 공기주입식 동굴, 도시균열·예술작품·공간실험 '후끈'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프랑스 거리예술가 JR이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퐁네프를 ‘공기 주입식 동굴’로 감싸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했다.

 

이 설치작품 ‘라 카베른 뒤 퐁 네프(La Caverne du Pont Neuf)’는 오는 6월 6일부터 28일까지 23일간 24시간 무료 개방되며, 파리 시는 이를 “JR 커리어 사상 가장 스펙터클한 도전이자 세계 최대급 몰입형 설치”로 규정했다.

 

40년 전 ‘황금의 포장’을 동굴로 되받아치다


이번 작업은 1985년 크리스토·잔 클로드 부부가 퐁네프를 4만㎡가 넘는 모래색 천으로 감쌌던 전설적 프로젝트 ‘퐁네프 랩드(The Pont Neuf Wrapped)’ 40주년을 겨냥한 오마주다.

 

JR는 크리스토·잔 클로드 재단과 공식 협업해, ‘다리를 감싼다’는 원형은 유지하되 방식은 정반대로 뒤집었다. 천으로 표면을 감추는 대신, 다리 주변에 이중벽 구조의 거대한 공기주입식 동굴을 세워 퐁네프 자체를 하나의 동굴 통로로 재해석한 것이다.

 

JR가 선택한 시점 역시 상징적이다. 전시는 6월 파리 패션위크와 음악 축제 ‘페트 드 라 뮈지크(Fête de la Musique)’ 시기와 맞물려, 도시 전체를 하나의 문화 페스티벌 무대로 확장한다. 17세기 석조교량, 1980년대 포장 프로젝트, 2020년대 공기주입식 동굴이 한 시공간 위에서 겹쳐지며, 파리는 다시 한 번 ‘도시 전체를 캔버스’로 삼는 거대 실험장으로 소환된다.

 

120m 길이·2,400㎡ 바닥…공기 2만㎥로 버티는 ‘도시 스케일 인플레이터블’

 

숫자를 뜯어보면 규모감이 더 선명해진다. 파리 관광청과 현지 문화매체 정리에 따르면 ‘퐁네프 동굴’의 핵심 스펙은 엄청나다.

 

▲전체 길이: 약 120m ▲폭(통로 폭 기준): 약 20m ▲최고 높이: 17~18m ▲바닥 면적: 약 2,400㎡(퐁네프 상부를 덮는 터널형 공간) ▲외피 천 면적: 약 1만8,900㎡ ▲내부 공기량: 약 2만㎥ ▲구조: 80개 텍스타일 아치로 구성된 공기지지(에어 서포트) 구조 ▲추정 구조물 자체 중량: 약 5톤 수준(현지 매체 ‘Sortir à Paris’ 보도)에 이른다.

 

이 수치는 일반적인 팝업 텐트나 풍선 구조물이 아니라, 사실상 ‘도시 스케일 인플레이터블 아키텍처’에 가깝다는 점을 보여준다. 구조물은 80개의 직조 아치에 공기를 지속적으로 주입해 형태를 유지하는 에어 서포트 방식으로 설계됐으며, 확장식 기반 없이도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점이 기술적으로 눈에 띈다.

 

JR 측과 파리시는 설치·엔지니어링·운영·관람객 안내를 포함해 최대 800명이 프로젝트에 투입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만큼 안전, 교통, 문화유산 보호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고난도 도시 프로젝트라는 방증이다.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는 터널”…24시간 개방형 몰입 경험


관람 동선은 단순하지만 의도는 분명하다. 관람객은 자연광이 차단된 터널형 내부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통과하면서, ‘상징적인 통로, 자기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내부는 낮과 밤 모두 완전히 인공 조명과 사운드에 의존하도록 설계돼, 외부의 파리 풍경과는 단절된 감각적 ‘블랙박스’로 기능한다.

 

사운드 디자인은 다프트 펑크 출신 토마 뱅갈테르(Thomas Bangalter)와의 협업으로 완성된다. 그가 설계한 사운드 환경은 다리 위를 걷는 행위를 일종의 퍼포먼스로 전환시키며, 방문객은 물리적 이동과 심리적 이동을 동시에 체험하게 된다. 증강현실(AR) 요소도 도입된다. JR는 관람객이 스마트폰을 통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디지털 레이어를 확인하도록 설계했다고 밝혔고, 이는 사진·콜라주·디지털 이미지를 결합해 온 그의 작업 궤적과 맞닿아 있다.

 

이 설치는 전시 기간 내내 24시간, 주 7일 개방된다. 관람객은 동굴 내부를 직접 통과할 수도 있고, 센강 양안 강변 산책로·인근 교량·세느강 유람선 갑판에서 외부 암석 절벽 이미지를 감상할 수도 있다. 전시 기간 동안 퐁네프는 차량 통행이 전면 금지되며, 파리 시와 JR 팀은 최대 관람 인원 상한을 설정하기 위해 안전 당국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크리스토의 자가 금융 모델 계승…공공·민간 협업형 도시 실험


재원 구조도 주목할 만하다. 프랑스 디자인 매거진 ‘Acumen’에 따르면 이번 프로젝트 비용은 크리스토가 생전에 고수했던 방식처럼, 민간 파트너와 준비 작업(드로잉, 콜라주, 모형 등) 판매 수익으로 충당하는 구조다. 이는 특정 브랜드 스폰서 로고나 상업 광고를 노출하지 않는 대신, 작가의 예술적 자율성을 최우선으로 보장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기술·유산 보존 측면에서는 역사기념물 전문 엔지니어와 하천 항해 서비스가 함께 참여해, 17세기 석조 구조물에 물리적 손상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설치가 이뤄지고 있다. 콜라주 외피는 작업장에서 인쇄한 뒤, 교량에 구멍을 내지 않는 케이블·그물 시스템으로 현장에서 조립된다.

 

파리 시 공식 사이트는 이번 프로젝트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다리 중 하나를, 세계 최대 규모의 몰입형 임시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전례 없는 시도”라고 규정했다. 이는 도시가 ‘문화유산 보호’와 ‘급진적 예술 실험’을 제로섬이 아닌 상호 보완적 관계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림픽 앞둔 파리의 전략…도시 전체를 거대한 ‘문화 인프라’로


시점은 2024 파리 올림픽 이후 도시 브랜드 재구축 국면과도 맞물려 있다. 파리는 이미 루브르 피라미드(2016년 ‘지우기’ 프로젝트), 오페라 가르니에 옥상, 외곽 주거단지 등 익숙한 장소를 JR의 콜라주와 설치를 통해 새로 읽어내는 실험을 반복해 왔다. 이번 퐁네프 동굴은 그 연장선에서, ‘관광지’이자 ‘교통 인프라’인 교량을 통째로 하나의 몰입형 예술·이벤트 공간으로 전환하는 사례다.

 

관광당국 ‘Paris je t’aime’는 이 프로젝트가 “2,400㎡ 바닥, 120m 길이, 20m 폭의 터널을 통해 파리의 상징적 다리를 전례 없는 방식으로 다시 걷게 만드는 몰입형 여정”이라고 정의했다. 파리 시는 해당 기간 퐁네프 인근 보행자·자전거·강변 동선 재조정에 나서며, 도시는 일시적으로 ‘거대한 문화 인프라’로 재배치된다.

 

JR는 “사람들이 늘 지나치던 공간에서 잠시 멈추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동굴 프로젝트는 숫자상으로는 120m 길이의 임시 구조물에 불과하지만, 도시·기억·유산·관광·패션·음악·테크까지 한데 얽어 묶는 거대한 ‘도시 스토리텔링 장치’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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