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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건축

[지구칼럼] "바닷물 속 DNA로 돌고래 건강 추적"…비접촉 해양생물 ‘유전자 건강검진’ 시대 열렸다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과학자들이 해수 속에 자유롭게 떠다니는 DNA를 통해 어떤 돌고래 종이 서식하는지뿐만 아니라, 개체군의 유전적 건강 상태까지 파악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는 해양 포유류 보전 분야 최초의 성과로, 연구자들이 동물에 직접 접촉하지 않고도 고래목 동물 개체군을 추적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구 개요와 실험 설계


이번 연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호야에 위치한 NOAA(국립해양대기청) 산하 남서부 수산과학센터 프레더릭 아처(Frederick Archer) 박사팀이 수행했으며, 국제 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마린 사이언스(Frontiers in Marine Science)」에 5월 18일자 온라인 게재됐다. 논문 제목은 ‘반복적인 환경(e)DNA 채집을 통한 풍부한 외해 돌고래의 유전적 다양성 추정(Estimating Genetic Diversity of Abundant Oceanic Dolphins Through Repeated Environmental (e)DNA Sampling)’으로, DOI는 10.3389/fmars.2026.1756593이다.

 

연구진은 2021년 10~12월 사이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약 47km 떨어진 산타 카탈리나 섬 주변 해역에서 보트 기반 조사를 실시했다. 긴부리참돌고래, 짧은부리참돌고래, 큰돌고래(병코돌고래), 리소돌고래 등 네 종으로 이뤄진 돌고래 무리 15개를 추적하며, 각 무리에서 동물과 10m 이내 거리에서 해수 2리터짜리 샘플을 반복 채취했다.

 

이때 채집된 물에는 돌고래의 피부 세포, 점액, 배설물, 호흡 시 분출되는 비말 등에 포함된 미토콘드리아 DNA가 섞여 있다. 연구진은 총 126개 수질 샘플을 확보한 뒤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GS)과 지역 특이적 참조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 메타바코딩 기법으로 서열을 분석하고, 서열 단위 변이(ASV)를 종 단위로 할당했다.

 

숫자로 본 핵심 결과


연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숫자는 ‘836’과 ‘72’다. 먼저 126개 해수 샘플에서 총 836개의 고유한 미토콘드리아 서열 변이체가 확인됐다. 이 가운데 76%는 고래목(cetaceans), 60%는 이빨고래류(odontocetes)에서 유래한 것으로 분석됐고, 전체의 29%는 현장에서 육안으로 확인된 돌고래 종과 정확히 일치했다.

 

유전적 다양성 측면에서는 긴부리참돌고래가 가장 높은 다양성을 보였고, 그 다음이 짧은부리참돌고래였다. 반면 리소돌고래와 큰돌고래는 동일 해역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유전 변이를 나타냈다. 이는 동일 지역 내에서도 종별로 ‘유전자 포트폴리오’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시사한다.

 

또 다른 핵심 수치는 채수량이다. 연구진은 통계 분석을 통해 긴부리참돌고래 개체군의 유전적 다양성을 대표할 수 있는 정보를 확보하려면 조사 1회당 60~72리터의 해수를 채집하면 충분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다만 이 수치는 종과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가능한 한 많은 무리에서 반복적으로 샘플을 확보할수록 추정 정확도가 높아진다는 점도 함께 제시됐다.

 

유전적 다양성과 ‘개체군 건강’의 연결고리


아처 박사팀의 연구가 갖는 의미는 단순히 “eDNA로 돌고래를 찾을 수 있다”는 수준을 넘어선다. 연구진은 eDNA를 통해 개체군 내 미토콘드리아 DNA 다양성을 추정하고, 이를 ‘유효 개체군 크기’와 장기적 생존 가능성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아처 박사는 “반복적인 eDNA 채취가 대규모 무리를 이루고 개체 수가 매우 많은 돌고래의 유전적 다양성 추정에 활용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유전적 다양성이라는 결과 지표가 개체군 크기를 나타내는 척도이자, 해당 개체군이 환경 변화에 얼마나 잘 대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잣대”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양 보전 생물학에서는 유전적 다양성이 낮을수록 질병·환경 변화·인간 활동으로 인한 교란에 취약해진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확인돼 왔다. 기존에는 이 같은 정보를 얻기 위해 조직 샘플을 채취하거나 개체를 포획하는 등 비용·시간·윤리적 부담이 큰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연구는 같은 수준의 정보를 비(非)침습적 방식으로, 더 넓은 공간과 시간 스케일에서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글로벌 보전 정책에의 적용 가능성


이번 연구는 미국 캘리포니아 연안을 대상으로 했지만, 방법론 자체는 한반도 인근 고래류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책적 시사점이 적지 않다. 이미 유럽과 북미에서는 eDNA를 기존 시각 조사와 결합해 ‘이중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해역에서는 eDNA로만 희귀 고래종의 존재를 확인한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한국 역시 울산 앞바다의 대형 고래류, 남해·동해 연안의 돌고래류, 제주 인근 연안생태계에 eDNA 기반 정기 모니터링을 도입할 경우, 개체군 건강 상태와 서식지 변화를 정량적으로 축적하는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 ‘72리터의 바닷물’이 추정 가능한 정보는 단순 종 목록을 넘어 개체군의 유전적 체력까지 포함하는 만큼, 향후 보호구역 지정, 해상 풍력·항로 개발 평가, 기후 리스크 분석의 핵심 근거자료로 활용될 여지가 크다.

 

아직은 종별·해역별로 최적의 채수량과 분석 프로토콜을 표준화해야 하고, 유전 데이터의 장기 추세를 해석하는 통합 모델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돌고래를 잡지 않고도’ 유전적 건강을 실시간에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술이 실증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해양 보전 과학이 한 단계 도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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