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엔비디아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젠슨 황이 “기회가 주어져도 엔비디아를 다시 창업하지 않겠다”고 공개 발언하면서,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되기까지의 성공 신화 뒤에 가려진 극한의 고통과 리스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AI 붐을 타고 사상 첫 시가총액 5조달러를 돌파한 기업의 수장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여정”이라고 말한 대목은, 창업과 기업가 정신을 바라보는 통념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솔직하지 않다”
황 CEO는 5월 18일(현지시간) 가이 라즈(Guy Raz)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How I Built This’에 출연해,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안 상태에서 다시 엔비디아를 창업하겠느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즉답했다. 그는 “다시 하겠다고 말하는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결과와 과정을 혼동하기 때문에 솔직하지 못한 것”이라며, “실제 과정은 수년간의 굴욕, 해고, 재정적 수치로 점철돼 있다”고 말했다. 성공 신화만 소비되는 창업 담론과 달리, 그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 기억들을 의식적으로 잊으려 한다”고까지 표현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과거 발언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2023년 한 행사에서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회사를 창업하지 않을 것”이라며, 창업 과정이 상상 이상으로 고된 여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다. 2025년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평생에 걸친 희생(lifetime of sacrifice)”이라고 규정했다는 언급도 뒤따른다.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30년 넘는 기업 생존 게임을 견뎌낸 창업자의 체험적 결론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세 번의 ‘존폐 위기’와 베팅으로 만든 오늘의 엔비디아
이번 팟캐스트 에피소드(64분 분량)는 1993년 설립 이후 33년간 엔비디아가 겪은 세 차례 ‘Near-Death Experience(거의 죽음에 가까운 위기)’를 중심으로 그려진다. 1993년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서 젠슨 황, 크리스 말라초스키, 커티스 프리엠 세 명이 3만달러짜리 식당에서 사업 계획을 짜던 ‘무명 그래픽 칩 스타트업’이, 어떻게 AI 인프라의 제국으로 변신했는지를 추적하는 서사다.
첫 번째 위기는 첫 제품 실패에서 비롯됐다. 1995년 내놓은 그래픽 카드 ‘NV1’은 잘못된 기술 선택과 시장과의 엇박자로 혹평을 받았고, 결국 이듬해 직원 절반을 해고해야 할 정도로 회사가 휘청였다. 팟캐스트에서 황은 “첫 번째 칩이 마이크로소프트 DirectX와 호환되지 않는 잘못된 기술을 썼다”며, 이 때문에 절박한 방향 전환(pivot)이 불가피했다고 회고했다.
두 번째는 자금난의 절벽이었다. 1997년 당시 엔비디아에 남은 현금은 고작 ‘몇 달치 버틸 수준’이었고, 이 상황에서 회사는 보유 현금의 절반을 중고 칩 에뮬레이터에 쏟아붓는 극단적 결정을 내렸다. 업계 관행이던 2년 개발 주기 대신 ‘단 한 번의 설계 검증’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도박이었다. 실패했다면 회사는 바로 파산 수순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세 번째 분기점은 CUDA였다. 1999년 세계 최초의 GPU ‘지포스 256(GeForce 256)’으로 그래픽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운 엔비디아는, 2006년 병렬 컴퓨팅 플랫폼 CUDA를 발표하며 하드웨어(GPU)와 소프트웨어를 묶은 플랫폼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만 해도 상업적 AI 응용은 존재하지 않았고, 게임용 GPU에 범용 병렬 연산 기능을 심는 작업에 시장은 냉담했다. 그러나 이 ‘10년짜리 비주류 베팅’이 결국 딥러닝과 생성형 AI의 폭발과 함께 엔비디아를 데이터센터·AI 인프라의 ‘필수 불가결한 공급자’로 끌어올렸다.
시가총액 5조달러, 독일 GDP를 넘은 기업
이렇게 ‘파산 직전의 스타트업’이었던 엔비디아는 이제 세계 자본시장의 정점을 재정의하는 존재가 됐다. 2025년 10월 29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엔비디아는 주가 207달러 안팎에 마감하며, 종가 기준 최초로 시가총액 5조달러(약 7,100조원)를 돌파했다.
이후 2025~2026년 사이 주가와 시총 변동에도 불구하고, 엔비디아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알파벳을 제치고 글로벌 시가총액 1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국내외 주요 경제 매체들은 “뉴욕증시에서 시총 5조달러를 넘긴 유일한 기업”, “AI 생태계의 중심”이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엔비디아를 ‘AI 시대의 인프라 기업’으로 규정한다.
성공 신화 이면의 메시지… ‘과정의 고통’을 정직하게 말하기
시가총액 5조달러, 30년간 5만%에 가까운 주가 상승률, 데이터센터·AI 반도체 시장에서의 사실상 독점적 지위와 정량 지표만 보면 엔비디아는 ‘다시 태어나도 해야 할 사업’의 대표 사례처럼 보인다. 그러나 창업자인 젠슨 황은 정반대의 답을 내놓았다. 그는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솔직하지 않다”고 말하며, 화려한 성공 결과 뒤에 가려진 수많은 실패와 고통, 모멸감과 불안의 총합이 ‘과정의 진짜 얼굴’임을 강조한다.
국내외 언론 보도와 그의 기존 발언을 종합하면, 엔비디아의 성장 서사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첫째, 기술·시장 타이밍을 잘못 읽었을 때 직원 절반을 해고해야 할 만큼 혹독한 대가를 치른 기업이다. 둘째, 잔여 현금의 절반을 중고 장비에 베팅하는 식의 ‘파산을 전제한 도박’ 없이는 생존 자체가 어려웠던 스타트업이었다. 셋째, 10년 넘게 수익화되지 않는 비주류 기술(CUDA)에 집요하게 투자해야만, 훗날 AI 붐의 ‘유일한 수혜자’ 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다.
황의 이번 발언은 “기업가 정신=영웅 서사”라는 통속적 프레임을 걷어내고, 리스크·정신적 소진·장기 불확실성 등 비용 측면을 정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마디로, 엔비디아의 5조달러 가치는 창업자의 ‘행운’이 아니라, 세 차례의 존폐 위기와 수십 년에 걸친 비주류 베팅,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을 만큼의 고통을 감내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이 발언을 국내 창업 생태계와 자본시장에 비춰보면, “성공한 창업자는 모두 다시 하겠다고 말한다”는 신화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그리고 숫자와 시가총액만 소비하는 투자 환경이 기업가 정신의 ‘실제 비용’을 얼마나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된다.
젠슨 황의 말처럼, 창업은 결과보다 ‘과정’으로 평가되어야 하며, 그 과정이 얼마나 잔혹한지에 대한 솔직한 기록이야말로 다음 세대 창업자와 투자자에게 가장 필요한 인풋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