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미국 로봇 스타트업 Figure AI가 기획한 ‘인간 대 기계(Man vs. Machine)’ 10시간 물류 대결에서 인간 인턴이 휴머노이드 로봇 F.03을 불과 192개 차이로 꺾었다.
하지만 경기 내용을 뜯어보면, 승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과 로봇 생산성이 사실상 ‘동급’ 수준까지 접근했다는 냉정한 데이터다. Figure AI CEO는 이런 결과가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10시간, 1만2000개…수치로 본 접전
'인간 대 기계(Man vs. Machine)'라는 이름의 이번 대결은 5월 17일(현지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미국 실리콘밸리 인근 물류창고에서 진행됐고, 유튜브와 X(옛 트위터)를 통해 생중계됐다. 인간 대표로 나선 인턴 에메(Aime)는 10시간 동안 총 1만2,924개의 패키지를 분류했고, Figure AI의 휴머노이드 로봇 F.03은 1만2,732개를 처리해 192개 차이로 패했다. 패키지당 평균 처리 속도로 환산하면 인간은 2.79초, 로봇은 2.83초로, 0.04초 차이에 불과한 사실상 ‘무승부에 가까운’ 생산성을 보여준 셈이다.
작업 형태는 단순했다. 컨베이어에서 내려오는 상자의 바코드를 스캔하고, 바코드가 아래를 향하도록 뒤집어 다시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는 반복 동작이다. 승자는 ‘10시간 동안 더 많은 물건을 처리한 쪽’이라는 명료한 룰 아래, 인간과 로봇이 동일한 작업 환경에서 정면 승부를 벌였다.
에메는 캘리포니아 노동법에 따라 식사 및 휴게 시간이 허용된 반면, F.03은 쉬지 않고 계속 작동했다. 에메가 화장실 휴식을 위해 자리를 비운 5시간차 무렵 로봇이 잠시 앞서 나가기도 했지만, 에메는 이내 선두를 되찾아 끝까지 앞서며 경기를 마쳤다.
인간은 90분 쉬고도 이겼다…로봇은 연속근무
조건만 놓고 보면 인간의 승리는 의미가 더 크다. 인턴은 캘리포니아 노동법에 따라 1시간 작업 후 10분 휴식, 여기에 30분 식사 시간 등을 포함해 약 90분가량 자리를 비우며 경기 내내 물을 마시고 휴식을 취했다. 반면 F.03은 배터리 교체를 위해 로봇끼리 교대했을 뿐, 인간과 달리 ‘쉼 없는’ 연속 작업을 이어갔다.
주요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인턴은 식사 시간과 화장실 이용으로 인해 한때 로봇에 역전을 허용했지만, 복귀 직후 다시 추격에 나서 최종적으로 근소한 격차로 앞서 나가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 스코어는 겨우 192개 차이였고, 처리 속도는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사실상 동일했다는 점에서, 인간의 승리는 ‘체력과 근성의 승리’인 동시에 ‘로봇의 수준 도달’을 함께 드러낸 결과다.
흥미로운 것은 컨텍스트다. Figure AI 측 설명에 따르면 이들 로봇은 인간과의 대결에 들어가기 전 나흘 동안 약 11만 9,000개의 택배를 이미 처리했으며, 대결 이후에도 110시간 이상 분류 작업을 이어갔다. 인간이 단거리 스프린트에서 근소하게 앞섰지만, 장거리 마라톤에서는 로봇의 내구성과 지속성이 이미 인간을 압도하고 있다는 그림이 선명해진다.
“이게 인간이 이길 수 있는 마지막 순간”
Figure AI 창업자이자 CEO인 브렛 애드콕(Brett Adcock)은 X에 경기 결과를 올리며 인턴 승리를 축하하는 한편, “본인(인턴) 말로는 왼쪽 전완근이 거의 부서진 것 같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것이 인간이 이길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문장을 덧붙였다.
이번 대결에서 로봇은 원격 조작 없이 Figure AI의 ‘헬릭스-02(Helix-02)’ AI 시스템을 통해 완전 자율 모드로 작동했다. 애드콕은 그간 인간 택배 분류 작업자의 평균 처리 속도를 패키지당 약 3초 수준으로 제시해왔는데, F.03이 이번에 사실상 그 기준에 도달하거나 일부 구간에서는 상회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부 매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 정도면 다음 버전에서는 인간이 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애드콕의 발언을 단순한 허풍이 아닌 ‘수치에 근거한 경고’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8시간 시연이 24시간 ‘바이럴 마라톤’으로
이번 10시간 대결은 사실, Figure AI가 한 주 동안 펼친 장기 라이브 시연의 하이라이트에 가까웠다. 애초 8시간 자율 창고 작업으로 기획된 시연은 로봇의 안정적인 작동이 확인되자 24시간을 넘어서는 ‘마라톤 모드’로 확대됐다. 밥(Bob), 프랭크(Frank), 게리(Gary)라는 이름이 붙은 세 대의 F.03 유닛은 24시간 이상 쉬지 않고 물류 분류 작업을 수행했고,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이 기간 처리한 패키지는 3만 개를 넘어섰다.
X와 유튜브에서 진행된 이 라이브스트림은 누적 300만 뷰 이상을 기록하며, 휴머노이드 로봇을 ‘인터넷 스타’로 끌어올렸다. 주요 매체들은 “3초에 1개를 분류하며 80시간이 넘도록 쉼 없이 일하는 로봇”이라거나 “인간 없이 박스를 옮기고 스스로 3교대하는 로봇 근무 현장”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인공지능·로봇이 실제 노동 시장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생중계하듯 전했다.
다만 로보틱스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인용한 한 전문가는 “기술 시연으로서 상당히 인상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간헐적으로 드러난 정확도 문제 등을 이유로 “아직 real-world 대규모 상용 배치라기보다는 ‘잘 만든 과학 프로젝트’ 수준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즉, 생산성 데이터는 기대 이상이지만, 안정성과 비용, 유지보수, 사고 대응 등 ‘현장성’의 요소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남아 있다는 냉정한 평가다.
인간 노동과 로봇, 무엇을 봐야 하나
이번 10시간 대결을 단순한 이벤트로 소비하기에는 시사점이 묵직하다. 첫째, 수치로만 보면 휴머노이드 로봇은 이미 단순·반복 물류 작업에서 인간 평균 수준의 생산성에 도달했다. 둘째, 인간이 90분을 쉬는 동안에도 로봇은 교대와 충전을 통해 사실상 멈추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전형적인 ‘24시간 공장 노동자’ 모델을 구현했다.
셋째, 노동의 ‘속도’와 ‘지속성’이 분리되는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단기 생산성에서는 인간이 여전히 근소한 우위를 유지할 수 있지만, 장기 누적 작업량·야간·연속근무 등으로 조건을 바꾸면 로봇이 비용 대비 효율에서 우위에 설 가능성이 크다. 이는 노동조합, 최저임금, 노동시간 규제 등 기존 노동 질서가 휴머노이드 로봇의 상용화와 함께 어떻게 재편될지에 대한 구조적 질문을 던진다.
브렛 애드콕의 “이것이 인간이 이길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발언은, 이번 승부를 ‘인간의 드라마’라기보다 ‘로봇의 도착 선언’으로 읽어달라는 메시지에 가깝다. 숫자는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다. 다음 대결에서 스코어보드의 승자 이름이 바뀌는 순간, 논쟁의 초점은 “누가 더 빨리 일하느냐”에서 “어떤 일을 인간에게 남겨야 하느냐”로 옮겨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