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익명의 디지털 아티스트 SHL0MS가 진짜 모네의 수련(Water Lilies) 연작 일부를 “AI 생성 이미지”라고 속여 X(구 트위터)에 올리자, 수천 명의 이용자와 자칭 비평가들이 이 작품을 “영혼 없는 쓰레기”로 단정 지으며 비난했다. 수련 시리즈는 프랑스 인상파 화가 모네가 생애 마지막 30년에 걸쳐 그린 약 250점의 유화 연작이다.
petapixel, garbageday, plasticallyperfect에 따르면, 이 사건은 단순한 ‘인터넷 해프닝’이 아니라, 라벨 하나가 미적 판단과 가치 평가를 어떻게 비틀어 놓는지 생생하게 드러낸 실시간 인지 편향 실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모네를 ‘가짜 모네’로 만든 한 줄 라벨
SHL0MS는 5월 11~12일경 X에 “모네 풍의 그림을 AI로 생성했다”고 밝히며, 실제 모네 수련 연작 중 일부를 잘라 올리고 “진짜 모네와 비교해 무엇이 열등한지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수 시간 안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고, 게시물은 순식간에 바이럴을 타며 전 세계 디지털 아트 커뮤니티에서 논쟁을 촉발했다.
한 이용자는 “깊이와 색채의 일관성이 없고, 나무의 반사가 공간감 없이 수련잎 위로 번지고 있다”고 단언했고, 또 다른 이는 “모네는 빛이 물 위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했지만, 이 그림에는 그런 이해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이 그림에는 영혼이 없다”고 규정했고, 또 다른 이용자는 “AI는 사라져야 한다”며 작품 자체를 ‘쓰레기’로 규정했다.
“AI라서 싫다”는 확신, 알고 보니 진짜 모네였다
일부 비평가는 800자(영문 기준 850단어)에 달하는 장문의 분석을 통해 “AI 특유의 어색한 구도와 시선 처리”를 지적했고, 또 다른 이들은 직접 구도 도식과 ‘시선선(eye line)’을 그려가며 “인간 화가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조목조목 나열했다. 하지만 SHL0MS가 나중에 “사실은 진짜 모네 수련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고 밝히자, 상당수 이용자들이 부랴부랴 자신의 댓글을 삭제하거나 계정을 비공개 전환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졌다.
흥미로운 점은 반전이 드러난 뒤에도 두 부류의 반응이 뚜렷이 갈렸다는 점이다. 일부는 “AI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결함을 본 것 같다”며 자신의 인지 편향을 인정했지만, 다른 일부는 “진짜 모네라도 별로인 작품일 수 있다”며 끝까지 자신의 평가를 합리화하려 했다. SHL0MS는 이를 두고 “라벨 하나가 비평의 방향과 수위를 결정하는 현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과학이 확인한 ‘라벨 효과’와 노력 추단 편향
이번 실험은 최근 학계에서 보고된 결과와도 정확히 겹친다. 2024년 Nature에 게재된 한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이 작품의 출처를 모를 때는 오히려 AI 생성 이미지를 인간 작품보다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AI가 만들었다”는 정보를 듣는 순간 같은 작품에 대한 호감도가 유의미하게 떨어졌다. 이는 작품의 물리적 특성보다 ‘AI’라는 라벨이 감정과 평가를 지배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2004년 발표된 이른바 ‘노력 추단법(effort heuristic)’ 연구도 같은 맥락의 결과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동일한 완성도의 작품이라도 “작가가 오래 공들였다” “손으로 직접 그렸다”는 설명을 들으면 더 높은 가치와 가격을 매기는 경향을 보였고, 반대로 기계나 알고리즘이 자동 생성했다고 믿으면 평가가 낮아졌다. SHL0MS의 모네 실험은 이러한 심리 실험을 인터넷 공간에서 대규모로 재연한 셈이다.
AI 아트 시장은 연 29% 성장, 인식은 ‘공포와 매혹’ 사이
흥미롭게도 시장의 숫자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AI 아트 관련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AI 아트 시장은 연평균 약 29% 성장률을 기록하며 2033년까지 4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전통 미술 시장이 한 자릿수 성장에 머무는 현실과 대비되며, 실제 거래와 투자에서는 ‘AI’ 라벨이 오히려 프리미엄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국내외 예술계 인식은 복합적이다. 영국·유럽을 대상으로 한 한 예술 PR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5%가 인공지능을 2026년 예술 홍보 환경을 짓누르는 주요 걱정거리로 꼽았고, 65%는 매체 폐간·통폐합을 가장 큰 위협으로 지목하며 예술계 전반의 불확실성을 토로했다. 국내 연구에서도 예술 전공생들은 생성형 AI 창작물에 ‘보통 이상’의 만족감을 보이면서도, 자신의 창작 과정에 AI를 적극 활용하는 데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마녀사냥’과 디지털 아티스트의 방어적 창작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AI 마녀사냥’이라는 표현이 일상 용어가 됐다. 일부 디지털 아티스트들은 수년 전, 심지어 10여 년 전에 그린 스케치와 일러스트가 최근 알고리즘 기반 탐지 시스템에 의해 AI 생성물로 분류되거나, 커뮤니티 이용자들로부터 “AI 쓴 그림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고 증언한다. 그 결과 실험적인 붓 터치나 색채 사용, 비정형 구도를 의도적으로 줄이고, ‘사람 손’ 느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후퇴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번 모네 실험은 그런 긴장 상태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다. “AI가 만들었다”는 말 한마디에 진짜 모네의 수련조차 “구도가 엉망인 AI 쓰레기”로 전락할 수 있다면, 실제로 AI를 도구로 쓰는 디지털 아티스트들이 받는 선입견과 편견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동시에, AI라는 라벨이 때로는 ‘가짜 고급스러움’과 상업적 과대포장을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동원되는 역전 현상도 관찰된다.
한 줄 라벨이 가리는 ‘눈으로 본 것’과 ‘귀로 들은 것’의 차이
SHL0MS는 과거에도 람보르기니를 파괴해 그 파편을 NFT로 판매하는 등, 디지털·블록체인 문법을 활용해 집단 심리와 가치 평가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프로젝트를 이어왔다. 그 연장선에 있는 이번 모네 실험은 “우리가 정말 보고 있는 것은 그림인가, 라벨인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을 다시 던진다.
AI를 둘러싼 공포와 분노, 시장의 과열과 과대포장, 그리고 예술가들의 불안은 모두 현실이다. 그러나 모네의 수련이 ‘AI 쓰레기’로 오해받은 이 한 번의 사건은, 최소한 한 가지는 분명히 보여준다. AI를 둘러싼 논쟁의 상당 부분은 아직 작품 그 자체보다도, 그 옆에 붙은 한 줄 설명과 우리가 미리 품고 있던 감정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