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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항공

[이슈&논란] '자동차 왕국' 메르세데스-벤츠도 방산으로 눈 돌린다…“사업성 맞으면 방산 진출”

 

[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의 올라 칼레니우스 CEO는 5월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사업적으로 타당하다면 방산 생산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밝히며 민간 완성차 기업의 군수 생산 참여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그는 “세계는 더 예측하기 어려운 곳이 되었고, 유럽이 방위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며 “우리가 여기서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방산 관련 사업 비중에 대해선 “자동차 생산에 비하면 소규모에 그칠 것”이라며 “다만 실적에 기여할 수 있는 ‘성장하는 틈새 시장(growing niche)’이 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방산 생산 참여 의향을 공개한 것은, 전기차 수요 둔화·중국발 경쟁 심화로 궁지에 몰린 유럽 자동차 산업이 ‘안보 수요’라는 새로운 축을 향해 방향타를 돌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칼레니우스의 이 발언은 메르세데스-벤츠가 독일 내 생산 네트워크 재조정과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와중에 나왔다. 벤츠는 전기차(EV) 수요 둔화와 비용 부담에 대응해 2027년까지 독일 내 생산능력을 축소하고 일부를 해외로 이전, 생산 비용을 감축하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전통적인 자동차 수요만으로는 투자 회수와 수익성 방어가 어려워진 만큼, 새로운 수요 축으로 방산을 검토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KNDS의 루트비히스펠데 공장 인수 협상


칼레니우스 발언이 주목받은 배경에는 독일 루트비히스펠데 공장의 향배도 깔려 있다. 로이터와 유럽 언론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독일 합작 방산기업 KNDS는 베를린 인근 루트비히스펠데에 위치한 메르세데스-벤츠 공장을 인수해 복서(Boxer) 장갑차 생산 기지로 전환하는 방안을 두고 막판 협상을 진행 중이다.

 

대상 공장은 약 2000명 수준의 인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수 성사 시 일부 인력과 설비가 방산 생산 체제로 이동하게 된다. KNDS는 상장을 앞두고 유럽 내 생산 기반 확대를 추진 중이며, 벤츠 공장뿐 아니라 폭스바겐 공장 일부도 후보군에 올려놓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공장 매각이 아니라, 독일 제조업의 상징이던 자동차 공장이 본격적인 장갑차·군수 생산 기지로 변신하는 사례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동시에 기존 자동차 공급망과 인력을 활용해 방산 생산 능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산업 전환형’ 방산 확충 모델로도 주목받고 있다.

 

“자동차 외엔 무엇이든” 유럽 車업계의 방산 러시


유럽 완성차 업체의 방산 진출은 메르세데스-벤츠만의 움직임이 아니다. CNBC와 유럽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씨티(Citi)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유럽 자동차 업체들의 행보를 두고 “자동차 외에는 무엇이든(Anything-but-cars)” 전략이라고 표현할 정도라고 전했다.

 

프랑스 르노는 방산기업 튀르지·가야르(Turgis & Gaillard)와 협력해 군사용 무인기 프로젝트 ‘초러스(Chorus)’에 참여하며 군용·민군겸용 드론 생산으로 발을 넓혔다. 독일 부품사 셰플러(Schaeffler)는 독일 AI 드론 기업 헬싱(Helsing)과 손잡고 연간 1만~2만 대 수준으로 시작해 중장기적으로 연 10만 대 규모까지 드론 생산을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폭스바겐 역시 이스라엘 방산기업 라파엘(Rafael)과 미사일 방어체계(아이언돔 등)용 부품 생산을 논의하고 있으며, 독일 오스나브뤼크 공장을 미사일 방어 부품 제조 시설로 전환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방산 전문 매체 브레이킹 디펜스 분석에 따르면, 대다수 완성차 업체는 전차·자주포와 같은 완전 무기 체계를 직접 생산하기보다는, 차량 플랫폼·차체, 전력·배선 시스템, 전자부품 등 “덜 핵심적인 부품” 공급자로 참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기존 자동차 생산에서 축적한 고급 제조기술과 복잡한 공급망 관리, 대량생산 노하우를 군수 생산으로 ‘수평 이전’하는 전략이라는 평가다.

 

독일 국방비 30%대 증액, EU ‘ReArm Europe’도 가세


유럽 자동차 산업의 방산 전환을 견인하는 가장 강력한 동인은 급격히 늘어나는 유럽의 국방비다. 독일 연방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2% 목표를 맞추기 위해 국방 예산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과 한경 등 복수 매체에 따르면, 독일은 2026년 예산안에서 국방비를 전년 대비 32% 늘린 827억~837억 유로(약 132조원) 수준으로 편성했으며, 이후 지침에서는 2027년 국방 예산을 약 28% 추가 확대해 1000억 유로를 넘기는 계획도 제시했다. 이는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약 3.1%에 해당하는 규모로, 전후 독일 안보정책 변화의 상징적 숫자로 평가된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ReArm Europe’ 등 이름으로 수백억~수천억 유로 규모의 방산·군수 생산 역량 강화 패키지를 추진하고 있다. 독일 정부가 올해 초 시행한 ‘연방군 계획 및 조달 가속화법(BwPBBG)’은 민간 제조업체의 상용품(COTS)과 검증된 민간 기술을 군수조달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문턱을 낮췄다. 그 결과 자동차·기계·전기·전자 기업이 방산 공급망에 진입하기 쉬운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완전한 방산 업체 되진 않을 것”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완성차 업체들이 전통적인 의미의 ‘방산업체’로 탈바꿈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슬로바키아 싱크탱크 글로브섹(Globsec)의 주자나 펠라코바 이사는 “자동차와 방산은 모두 고급 제조기술과 복잡한 공급망, 엔지니어링 능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역량 전환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면서도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완전한 방산기업으로 변신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신 기존 자동차 사업을 유지하면서, 특정 플랫폼·부품·시스템 영역에서 방산 수요에 ‘플러그인’하는 형태로 수익원을 다각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브레이킹 디펜스에 인용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업기반센터 제리 맥긴 소장도 “자동차 업체들은 수익성이 현실적이고 투자 타당성이 확보되는 한 방산 부문의 이점을 평가해 나갈 것”이라며 “정부 자금이 계속 흐르는 동안 이들의 관심도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칼레니우스 역시 인터뷰 말미에서 “결국은 ‘봐야 안다(So, we’ll see)’”는 표현으로 신중한 거리를 유지했다.

 

한국 기업에 열리는 전장·부품 기회


독일·유럽 자동차 산업의 방산 전환은 한국 기업에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무역관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정부와 산업계는 자동차 산업이 보유한 대량 생산 체제와 엄격한 품질관리 시스템을 방위산업에 접목하는 과정에서 해외 공급망 파트너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특히 드론, 전자부품, 반도체, 전략 원자재 등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안정적 공급망이 주목받고 있다는 평가다. 이미 삼성·LG 등 한국 전장·배터리 업체는 메르세데스-벤츠와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전장 부품 협력 관계를 구축해 왔으며, 향후 방산용 전력·센서·통신 모듈로 영역이 확장될 여지도 있다.

 

다만 유럽 자동차 업계의 방산 진출은 단기간 호황을 노리는 ‘테마 플레이’가 아니라, 전기차 전환과 글로벌 경쟁 환경 변화 속에서 기존 생산·고용·공장 자산을 어떻게 재배치할지를 둘러싼 구조적 재편의 일부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메르세데스-벤츠가 방산을 “성장하는 틈새 시장”으로 언급하며 규모를 과도하게 키우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것도, 브랜드 이미지와 정치적 리스크, 장기 수익성에 대한 냉정한 계산의 결과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흐름은 한국 완성차·부품 업계에도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안보 대전환’ 시대, 자동차 산업이 축적해온 제조 역량은 어디까지 확장 가능한가,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부터는 “자동차 외엔 무엇이든”이라는 유럽의 전략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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