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웨어러블 업계가 걸음 수·칼로리 소모를 넘어 ‘질병 예측’이라는 고부가가치 시장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SleepFM’ 연구처럼 단 한 번의 수면 데이터로 130개 질환 위험을 예측하는 AI 모델이 등장하면서, 글로벌 빅테크와 웨어러블 스타트업들이 앞다퉈 수십억 달러를 베팅하는 모양새다. 동시에, 규제 공백과 알고리즘 편향, 개인정보 침해 우려라는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Oura, WHOOP, 삼성, 애플, 구글 등의 기업들이 하루 종일 착용하는 반지·시계·밴드에서 수집한 생체 데이터를 활용해 심장마비, 뇌졸중, 치매 등의 건강 이상을 예측할 수 있는 AI 모델 개발에 앞다퉈 나서고 있는 현황을 조명했다.
수면 1박으로 치매·심근경색까지 본다는 AI
2026년 1월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에 실린 스탠퍼드대 ‘SleepFM’ 연구는 예측 의료의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연구진은 약 6만5,000명에게서 수집한 58만5,000~60만 시간 분량 수면다원검사(PSG) 데이터를 학습해, 1,000여 질환 가운데 지수(C-Index) 0.75 이상 예측력이 입증된 130개 질환을 추려냈다.
이 모델은 전체 사망률(C-Index 0.84), 치매(0.85), 고혈압성 심장질환(0.84), 심근경색(0.81), 심부전(0.80), 뇌졸중(0.78) 등에서 기존 모델을 상회하는 예측력을 보였고, 파킨슨병·전립선암·유방암 등에서는 0.87~0.90 수준까지 올라섰다. 연구진은 “뇌졸중, 치매, 심부전 및 전체 사망률을 포함한 다수 질환이 수면 데이터만으로 높은 예측 가능성을 보였다”고 강조하며, 수면이 장기 건강의 강력한 바이오마커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시장도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글로벌마켓인사이츠(GMI)에 따르면 웨어러블 AI 시장은 2024년 397억 달러(약 54조원) 규모에서 2025~2034년 연평균 27.7% 성장해 2034년에는 4배 이상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도 삼정KPMG는 ‘데이터로 여는 미래, 예측 의료의 시대’ 보고서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매출이 2023~2029년 연평균 3.9%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며, 이 가운데 유전체·생활습관·의무기록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질병을 사전에 예측하는 ‘예측형 헬스케어’가 핵심 동력이라고 진단했다.
빅테크·스타트업, 예측형 웨어러블에 수십억 달러 베팅
블룸버그와 CNBC 보도에 따르면, Oura·WHOOP·애플·구글·삼성 등은 하루 24시간 축적되는 심박수, 심박 변이도(HRV), 수면 패턴, 활동량 데이터를 딥러닝 모델에 연결해 심혈관질환·치매·우울증 등 각종 질환의 조기 신호를 잡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핀란드 스마트링 업체 오우라(Oura)는 2025년 10월 시리즈 E에서 9억 달러 이상을 조달하며 기업가치 110억 달러를 인정받은 뒤, 2026년 2월 여성 건강 특화 AI 모델을 선보이며 예측형 기능을 본격 상용화하고 있다. 구글은 2026년 5월 자사 생성형 AI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한 ‘AI 건강 코치’를 공개해 새 구글 헬스 앱에서 다양한 웨어러블 데이터를 통합 분석·조언하는 플랫폼 전략을 띄웠다.
기기 수준의 임상 연구도 잇따른다. 삼성전자는 유럽심장학회지 《European Heart Journal Digital Health》에 갤럭시 워치 심박 변이도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실신(실신성 실혈류 감소) 위험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국내에서는 KAIST·미시간대 연구팀이 스마트워치의 활동량·심박 데이터를 활용해 수면 장애와 우울감, 식욕부진, 집중력 저하 등의 증상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 우울증 조기 진단 가능성을 제시했다.
수요 측면에서도 신호는 분명하다. 국내 의료전문 매체 「메디칼타임즈」가 2026년 5월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AI 기능 중 가장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6%가 ‘심뇌혈관 질환 등 급성 질환 발생 전 경고 기능’을 꼽았다. 스마트워치로 부정맥을 감지하고, AI가 식습관을 분석해 만성질환을 사전에 관리하는 서비스에 대한 기대도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규제는 아직 ‘웰니스 vs 의료기기’ 경계전
문제는 법·제도가 기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Oura 톰 헤일 CEO는 2025년 12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일반 웰니스 기기와 의료기기 사이에 ‘디지털 헬스 스크리너’라는 새로운 FDA 분류를 신설해, 잠재적 질병 위험을 경고하는 수준의 기능은 보다 완화된 규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2026년 1월 일반 웰니스 가이던스를 개정해 저위험 기기 정의를 확대하며 부분적으로 화답했지만, 그 직전인 2025년 WHOOP의 혈압 측정 기능에 대해서는 “승인받지 않은 의료기기 기능”이라며 경고장을 발송한 바 있다. 규제 당국 입장에서는 ‘예측’과 ‘진단’의 경계를 어떻게 그릴지, 또 의료 현장에서의 책임소재를 어디까지 제조사에 물을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25년 보고서에서 AI 기반 건강위험 예측 도구의 윤리적 쟁점으로 알고리즘 불투명성, 오류 시 책임소재, 데이터 활용 동의 범위 등을 지적하며 사회적 합의와 법제 정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복지부·식약처는 디지털 치료기기 가이드라인과 ‘디지털 건강관리 서비스’ 제도화를 추진 중이지만, 웨어러블 예측 기능을 어디까지 의료행위로 볼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상시 모니터링 피로’와 알고리즘 편향의 그늘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적 비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신경학회(AAN)는 2026년 3월 보고서에서 웨어러블 기기가 부정확한 수치를 제공하거나 오경보를 반복할 경우, 사용자의 불안과 건강 강박을 키우고 의료기관 방문을 과잉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네소타대 사라 베니시 교수 역시 “상시 모니터링이 불안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증폭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알고리즘 편향도 구조적 리스크다. SleepFM 연구만 해도 수면 클리닉에 접근 가능한 비교적 소득·의료 접근성이 높은 집단의 데이터가 중심이어서, 저소득층이나 비서구권 인구는 과소대표될 수 있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대표성 낮은 데이터로 학습된 모델이 특정 인종·연령·성별 집단의 위험을 과대·과소평가할 경우, 예측형 헬스케어가 건강격차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개인정보 보호 역시 뜨거운 논쟁거리다. 예측형 헬스케어 서비스는 유전체·라이프로그·의무기록·보험금 청구 데이터까지 통합하는 경우가 많지만, 글로벌 조사에서 상당수 이용자가 “데이터가 어디까지 공유되고 어떻게 수익화되는지 모른다”고 답했다는 보고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이를 두고 “예측 건강 데이터라는 ‘잡기 어려운 유니콘’이, 동시에 가장 사적인 위험을 동반한 자산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예측 의료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신뢰 인프라’가 승부 가른다”
전문가들은 예측형 웨어러블의 부작용을 인정하면서도, 거시적으로는 ‘예방 중심 의료’ 전환을 견인할 기술로 평가한다. KPMG는 AI 헬스케어 보고서에서 예방·진단·치료·관리 전 주기에서 AI가 의료비 절감과 효율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며, 특히 만성질환 조기 발견과 재입원 감소 효과를 강조했다.
국내 연구 역시 라이프로그·의무기록을 통합한 개인 맞춤형 질병 예측 모델이 향후 헬스케어 플랫폼의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관건은 속도가 아니라 신뢰다. 데이터 대표성을 높여 알고리즘 편향을 줄이고, 투명한 설명 가능성과 명확한 규제 가이드라인, 개인정보 보호 장치를 함께 구축하는 기업과 국가만이 ‘예측 의료’의 과실을 수확할 수 있다는 경고가 동시에 나온다. 예측형 웨어러블이 진정한 ‘개인 주치의’로 자리잡을지, 또 다른 디지털 격차와 건강 불안을 키우는 도구가 될지는 지금의 규제 설계와 산업 전략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