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국내 증시가 삼성전자 파업 우려를 계기로 또 한 번 ‘메모리 랠리’에 불이 붙고 있다. 세계 최대 D램·HBM 생산자인 삼성전자의 18일간 전면 파업 가능성이 제기되자, 이미 공급이 바닥을 드러낸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공급 쇼크’ 공포가 주가를 밀어 올리는 역설적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코스피 사상 최고, 메모리 3강 동반 랠리
5월 11일 월요일, 한국 증시에서 메모리 대표주가 일제히 급등했다. SK하이닉스는 장중 약 12% 급등하며 사상 최고가를 새로 썼고, 삼성전자도 6% 넘게 오르며 지수를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이 흐름을 타고 코스피는 7,822.24에 마감, 5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점에서 단순 이벤트가 아닌 ‘구조적 랠리 위에 겹친 파업 쇼크’로 해석된다.
미국 시장에서도 풍향계는 비슷하다. 미국 메모리 3강 중 하나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Micron Technology)는 직전 금요일 한 세션에 15% 이상 급등했고, 2026년 들어 주가가 이미 두 배 이상 오른 상태에서 추가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3대 메모리 업체(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시가총액이 동시에 커지며, ‘메모리 슈퍼사이클 정점이 아니라 초입’이라는 시각에 힘을 싣고 있다.
“21일, 18일간 총파업” 선언… 손실 최대 11.7억달러 추산
이번 랠리의 직접적인 기폭제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의 총파업 예고다. 전삼노는 약 3만6,000명을 대표해 임금·성과급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5월 21일~6월 7일, 최대 18일간 전면 파업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노조 요구안은 기본급 7% 인상, 성과급 상한 50% 폐지,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의 15% 이익배분이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기본급 6.2% 인상, 이익배분 10%를 제시했지만 노조는 이미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생산 차질은 숫자로 입증되고 있다. 4월 23일 진행된 하루 시위만으로 당시 교대 시간대 파운드리 생산량이 58% 급감한 것으로 전했다. JP모건은 ‘최대 18일 전면 파업’ 시 삼성전자 분기 이익이 최대 12%까지 깎일 수 있다고 추산했고, 성균관대 권석준 교수는 직접 손실만 69억~117억달러 수준으로 제시했다. IT 전문매체 Wccftech는 ‘삼성발 블랙아웃’ 시나리오를 상정할 경우 글로벌 경제적 손실이 200억달러(약 30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삼성전자는 파업을 저지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해둔 상태이며, 5월 21일 이전에 1차 판단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 증권가에 공유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역시 경기지청장을 중심으로 노조와의 면담 일정을 잡으며 중재에 나선 상황이다.
이미 ‘역대 최저’ 공급… 파업은 기름 붓는 격
문제는 이번 파업 리스크가 ‘정상 시점의 노사분규’가 아니라는 점이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김재준 부사장은 5월 초 “수요 충족률이 역대 최저 수준”이라며 “고객사들이 2027년 물량까지 앞당겨 주문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삼성·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3대 업체가 전체 메모리 생산능력의 약 70%를 HBM 등 AI 서버용 제품으로 돌리면서 PC·노트북용 DDR4·DDR5 공급은 ‘절벽’ 상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PC 제조사 에이수스(ASUS)는 최근 보고서에서 “AI 서버향 메모리가 생산 가용 용량을 대부분 흡수하면서 일반 PC용 DRAM 공급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일부 주력 제품의 소비자가가 올 1분기에만 100% 넘게 급등한 사례가 있다고 공개했다. CNBC는 시놉시스(Synopsys) 사신 가지 CEO 발언을 인용해 “메모리 부족과 가격 상승이 2027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와중에 파업이 발생하면 충격은 배가된다. KB증권은 보고서에서 “삼성전자 노조 파업은 이미 불붙은 메모리 시장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며, 삼성의 글로벌 점유율(D램 36%, 낸드 32%)과 평택·화성 생산 비중을 감안할 때 전면 파업 시 글로벌 공급 차질 규모를 D램 3~4%, 낸드 2~3%로 추정했다. 시장에서 이 정도 공급 차질은 ‘가격 스파이크’를 촉발할 충분조건이다.
“삼성이 멈추면, 하이닉스·마이크론이 웃는다”
수급 불일치가 심해질수록 협상력은 공급자 쪽으로 쏠린다. 마이크론은 이미 자사 HBM 공급이 고객 수요의 50~66% 수준에 그친다고 공개했으며, SK하이닉스 역시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의 주문에 맞추기에도 빠듯한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삼성의 일시적 스톱’은 경쟁사들에겐 물량·가격·장기계약(LTA) 3박자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호재로 읽힌다.
실제 증권가의 포지셔닝도 바뀌고 있다. 씨티그룹은 파업에 따른 성과급 비용 반영과 불확실성을 이유로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소폭 하향조정한 반면, SK하이닉스 목표가는 상향 조정했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국내 리서치센터들도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삼성 실적에 부담이겠지만, 글로벌 메모리 가격 상승과 동종업계 반사이익을 감안하면 섹터 전체 EPS에는 중립 내지 플러스 요인”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수출 데이터도 수급 불균형을 뒷받침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집계에 따르면 5월 첫 열흘간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50% 급증해 85억4,000만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덕에 ‘비싸도 사야 하는’ 구조가 고착된 셈이다.
AI 7,000억달러 투자, 파업이 바꾸는 ‘지형도’
이번 파업 우려는 AI 인프라 투자가 이끄는 ‘초대형 IT 사이클’ 위에 덮쳐온 변수라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주요 클라우드 빅테크들의 올해 합산 설비투자(CAPEX)는 7,000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인데, 이 중 상당 부분이 GPU·HBM·고성능 DRAM 등 메모리 중심의 AI 인프라로 흘러간다.
시장은 이미 ‘메모리 공급 부족이 2027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가이던스를 가격에 상당 부분 반영해왔다. 여기에 삼성 파업 리스크가 겹치면서, 단기적으로는 메모리 가격 급등과 동종업계 실적 개선, 중장기적으로는 설비 투자 확대와 지역·업체 다변화라는 두 갈래 변곡점이 동시에 열리고 있다는 평가다.
노사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더라도 풀리지 않는 숙제가 하나 있다. 이미 역대급 타이트함에 접어든 글로벌 메모리 공급망은, 삼성의 ‘파업 리스크’가 제거되더라도 AI 중심 수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최소 2년 이상 공급 부족과 가격 변동성을 반복할 것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삼성 리스크’를 경험한 고객사들이 물량과 기술을 SK하이닉스·마이크론·중국 CXMT 등으로 더 폭넓게 분산하려 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번 파업 분쟁이 글로벌 메모리 지형도를 재편하는 분기점으로 남을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