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수천 마일에 달하는 장거리 이동으로 유명한 알바트로스조차도 장거리 비행에 이상적인 형태의 날개를 갖추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된 브리스톨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조류 종은 자신의 비행 방식에 공기역학적으로 최적화된 날개가 아닌, 그저 '그럭저럭 쓸 만한' 날개 형태로 진화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브리스톨대학교 연구진이 1,139종의 현생 조류 날개를 정량 분석한 이번 연구는 조류 비행을 둘러싼 적응주의적 통념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며, 향후 박쥐·익룡 연구와 항공기 설계 논의까지 흔들 잠재력을 지닌다.
1,139종 날개를 ‘형태 공간’ 위에 올려보니
creation, journal.kpfi, DBpia, birdlife.tistory에 따르면, 브리스톨 지구과학부 벤턴 월터스 연구팀은 ‘이론적 형태 공간(theoretical morphospace)’이라는 기법을 동원해 조류 날개를 정량 비교했다. 연구진은 실제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극단적 형태까지 포함해 가능한 날개 모양들을 격자 형태의 가상 공간에 배치한 뒤, 각 형상에 대해 공기역학적 성능을 계산해 일종의 ‘성능 지형도’를 구축했다.
이 지도에서 높은 봉우리는 특정 비행 방식(장거리 활공, 빠른 기동, 제자리 비행 등)에 최적인 날개 형상을, 낮은 골짜기는 비효율적 형상을 뜻한다. 이후 연구팀은 1,139종의 실제 조류 날개 계측 데이터를 이 지형도 위에 일일이 매핑해 각 종이 자신이 수행하는 비행 방식에 얼마나 근접한 설계를 택하고 있는지 수치로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패턴은 직관과 상당히 어긋난다. 장거리 활공·고속 비행·기동성 등 비행 기능별로 이론적으로 도출되는 ‘최적의 날개’와 실제 현생 조류의 날개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했으며, 대부분 종은 지형도의 중간·하위 구간에 분포했다. 연구진은 “조류 날개가 특정 비행 기능에 대해 이론적 최대 효율을 추구하기보다, 계통 진화·생태적 제약·다기능 요구 등 다양한 요인 사이에서 타협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펭귄·벌새는 ‘톱 티어’, 알바트로스는 의외의 중위권
이번 연구에서 예외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그룹은 벌새와 펭귄이다. 벌새는 초당 수십 회에 달하는 빠른 날개짓과 3차원 방향 전환을 통해 제자리 비행과 후진 비행까지 수행하는데, 연구진이 구축한 성능 지형도에서 벌새 날개는 ‘호버링(hovering) 최적점’에 매우 근접한 위치에 놓였다. 이는 벌새의 날개가 제자리 비행이라는 특수한 비행 모드에 맞게 공기역학적으로 극도로 정밀하게 다듬어진 결과라는 점을 정량적으로 뒷받침한다.
더 흥미로운 사례는 펭귄이다. 펭귄은 지상에서는 사실상 비행 능력을 상실했지만, 날개 형상 자체는 ‘동력 비행’에 최적화된 구조로 나타났다. 연구에 따르면 펭귄 날개는 공기 대신 물을 매질로 삼아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수중 비행체’로서, 이론적 성능 지형도의 상위 봉우리 부근에 위치했다. 다시 말해 펭귄은 공중 비행을 포기하는 대신, 최적화된 ‘비행 날개’를 물속 추진에 재활용한 셈이다.
반대로 다수의 조류는 성능 지형도에서 중간 이하에 몰렸다. 특히 전 세계 조류 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참새목(passerines)은 비행 효율 관점에서 보면 ‘평범한’ 날개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월터스는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대부분의 새들은 비행에서 ‘최고’일 필요가 없고, 진화는 그들에게 충분히 괜찮은 수준의 날개를 제공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비행의 제왕’ 알바트로스도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연구의 가장 상징적인 메시지는 알바트로스와 북극제비갈매기(Arctic tern)에 관한 결과다. 이들은 각각 1만 km 이상을 끊임없이 활공하며 해양을 가로지르는 대양성 장거리 비행의 아이콘이자, 매년 북극과 남극을 왕복하는 극한 이동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브리스톨 팀이 이들의 날개를 이론적 최적값과 비교한 결과, 두 종 모두 자신들의 비행 방식에 대해 ‘최적점’에서 상당히 떨어진 중상위 수준에 머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장 인상적인 장거리 이동을 수행하는 새가 가장 공기역학적으로 완벽해야 한다”는 통념이 오해에 가깝다는 점을 보여준다. 알바트로스는 실제로는 상승기류와 해상 바람을 극도로 잘 활용하는 ‘다이내믹 소어링(dynamic soaring)’ 전략을 통해, 날개 형상이 다소 비최적이라도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비행 패턴을 확보해 왔다.
월터스는 “북극제비갈매기가 매년 지구를 종단하는 놀라운 이동을 수행한다고 해서, 그들의 날개가 물리적으로 ‘완벽한’ 형태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이 결과는 과거 조류 진화 연구에서 이미 제기된 “날개 모양은 비행 방식보다 계통(혈연)에 더 강하게 묶여 있다”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미국 텍사스대 연구진은 2015년 왕립학회보 B에 발표한 논문에서, 신천옹·펭귄·아비(loon)처럼 비행 방식이 크게 다른 종들조차 같은 분지군(Aequornithes)에 속하면 유사한 날개 구조를 공유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보고한 바 있다.
즉, 한 번 형성된 기본 날개 설계를 완전히 갈아엎기보다는, 그 범위 안에서 ‘타협적 최적화’를 반복하는 쪽이 진화적으로 더 흔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적응주의’에 제동…진화·공학 연구에 던지는 메시지
이번 브리스톨 연구가 던지는 핵심 함의는, 자연선택이 항상 최고 성능의 형상을 만들어낸다는 ‘적응주의적 사고(adaptationist thinking)’에 직접적인 반례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일부 비행 양식에서는 벌새·펭귄처럼 이론적 최적에 수렴한 사례도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조류 날개 형상은 계통제약(phylogenetic constraint), 먹이·포식자 회피, 번식·구애 행동, 체온 조절, 착지·이륙 편의성, 깃털 유지 에너지 등 수많은 요인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다목적 설계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 기능에 대한 공기역학적 최적값에서 멀어지는 것이 오히려 전체 생존·번식 적합도 측면에서는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분석 프레임을 박쥐와 익룡(멸종한 비행 파충류)으로 확장해, 서로 독립적으로 진화한 세 비행 계통(조류·포유류·파충류)의 날개 설계가 어떤 제약과 타협의 패턴을 공유하는지 비교할 계획이다. 이는 “비행이라는 기능을 수행하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구조적 조건이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최근 국내 연구에서는 ‘날 수 있는 새’들이 공통적으로 비대칭 주깃털을 9~11개 보유한다는 통계적 규칙성을 보고해, 비행 가능 여부를 가르는 구조적 임계값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결과는 항공공학에도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생체모방(biomimicry) 연구에서 새 날개는 글라이더 효율·소음 저감·난류 제어 등 다양한 분야의 영감 원천으로 활용돼 왔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는 까치 날개의 부속 구조(alula)를 모사해 고받음각에서 양항비를 9~14% 개선한 풍동 실험 결과가 보고됐고, 올빼미 날개 끝단의 빗살·톱니 구조를 적용해 항공기 공력 소음을 저감하는 한·독 공동연구도 진행 중이다.
월터스는 조류 날개를 항공기에 적용할 때 “어떤 동물을 모델로 삼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성능의 방향이 달라지며, 반드시 자연계 최상위 비행 사례만이 공학적 최적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즉, 알바트로스의 장거리 활공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지만, 에너지 효율·기동성·소음·제조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항공기 설계에서는 벌새·펭귄·올빼미·참새 등 서로 다른 종에서 추출한 부분 최적 요소들을 조합하는 편이 오히려 합리적일 수 있다는 메시지다. ‘자연계 최고 비행 선수 = 공학적 최적 모델’이라는 단선적 모티프에 대한 경고이자, 진화의 산물로서의 날개를 보다 입체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요구다.
이번 연구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왜 완벽하게 날 수 있는 날개가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은 날개가 훨씬 더 많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따라가다 보면, 조류 비행뿐 아니라 인간의 설계와 전략, ‘최적화’라는 단어에 대한 우리의 믿음 자체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